brunch

시야확보

새우는 껍질 깐 것을 사 먹자

by 파리누나


연휴를 맞아 오래간만에 시댁에 다녀오기로 했다. 부산에서 두 시간 남짓 걸리는 남해에 도착하니 어둑어둑한 밤이다. 잘 시간을 넘겨 차에서 곤히 잠들었던 아기를 안아 들고 집에 들어서니 깨서 울기 시작했다. 할머니집이 낯설어서 그런지 울음을 그치지 않아 한참을 나는 밖에서 아이를 안고 서성거렸다.

이튿날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기운도 좋게 여기저기 헤집고 다니며 아이는 신이 났다. 시어머니는 오전부터 싱싱한 장어를 서너 마리나 구우셨고, 저녁에는 마블링이 돋보이는 한우를 구우셨다. 중간중간 과일과 찐 단호박, 옥수수 같은 간식도 계속해서 등장했다. 부산으로 돌아오기 전에는, 팔팔하게 헤엄치는 왕새우를 일 킬로 주문하셨다. 나는 잘 구워진 새우 껍질을 까다가 덥다 싶어 잠깐 고개를 들었다. 남편 앞에 있는 접시에는 어머니가 껍질을 예쁘게 깐 새우들이 쌓여있었다. 나는 짐짓 못 본 척 다시 내 앞에 있는 접시의 새우를 들어 잔껍질이라도 남았는지 확인한다.

돌아오는 차에서 다시 떠올려보니 조금의 서운함이 드려고 했지만, 이내 그마저 사라졌다. 나도 내 아이가 먹을 새우를 까느라 남편도 어머니도 챙길 겨를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우리 아기 먹이는 모습을 보고 어머니는 본인의 아들을 챙기시려는 마음이 드셨을지 모른다. 내가 나중에 어머니와 똑같이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아이를 향한 사랑이란 전에 느껴본 적 없는 용 솟는 무엇인데, 그것은 너무나 밝아서 때때로 주변의 것들을 잘 안 보이게 만든다. 그리고 아이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나 자신은 더더욱 보이지 않는다.


휴게소에 잠시 들렀을 때 우리처럼 쉬러 들어온 가족들을 보았다. 내 아이보다 더 작은 아이, 더 큰 아이, 그 뒤의 어른들. 한숨 돌리고 보면 조금 보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아이 태어나고 일 년, 엄마가 아기의 온 세계라지만 오히려 나의 모든 세계가 내 아이뿐이었다.

그리고 며칠 후 친정 엄마와 통화를 하는데, 시어머니와 통화하셨다고 하신다.

“애들 와서 맛있는 거 잔뜩 해먹이셨다던데요, 사돈. 고생하셨겠어요. 했더니 ‘며느리는 원체 입이 짧아서 그런가 많이 먹지도 못하던데요, 뭘.‘ 하시더라. “

어머니는 연륜이 있으셔서인가, 아들만 눈에 보이시진 않았나 보다. 워낙 말이 없으신 분이라 때때로 나는 나에게는 큰 관심이 없으신가 싶은데, 말이 없으시다고 눈여겨보지 않는 건 아니었다. 다시 한번, 내가 눈여겨보지 않았을 뿐.

keyword
작가의 이전글육아의 대조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