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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리누나 Oct 01. 2020

열정페이라는 이름으로

인턴 첫째주

 프랑스 음식이 딱히  뭔지 모르겠다는 사람들이 많지만,

어느 나라보다 레스토랑이 많은 곳이 프랑스다.

(프랑스 음식이 뭡니까 하면 누군가는 구운 치킨이라 하고, 누군가는 케밥이라 하며 또 누군가는 바게트에 잠봉이라 한다. )

파리에만 4만 여개가 넘는 식당이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 코로나19 사태를 지나는 중의 오늘에도 인턴 자리를 구하는 게 아주 어렵지는 않다.

항상 일손이 부족한데 인턴이라면 페이는 최소면서 잡일은 다 하니,

일하겠다는 열정 가득한 인턴을 마다할 이유는 크게 없다.

물론 가끔은, 아니 많은 순간에,

시간과 에너지를 인턴 교육 혹은 인턴이 사고친 일을 수습하는데 써야하는 리스크를 감수한다면.


첫 날은 큰 무리없이 지나갔다.

많은 감자와 당근을 까고 자르기는 했지만,  서비스가 시작되면서는 내가 끼어들 틈이 없었다.

좁은 주방에서 오가는 빠른 불어와 뜨거운 팬, 스팀기 등 나는 정신이 없는 와중에 방해되지 않아야 했다.

그렇다고 멍청하게 서 있을 수는 없으니 더 어렵다.


둘째날.

사과잼을 만들기 위한 사과를 많이도 잘랐고,


셋째날,

딱딱한 차슈(양념한 돼지고기)를 작은 큐브 모양으로 한 시간을 썰었더니 네 번째 손가락이 이어지는 손등에 멍이 들었다.


넷째날,

조금 익숙해졌다고 디저트 주문이 들어오자 나 좀 보라는 듯 준비를 마치고 셰프를 불렀다.

술에 잰 자두를 튀기기 위해 기름 온도를 올리던 셰프 안색이 변했다.

"지금 자두 넣지도 않았는데 그거 준비하면 어쩌자는거야, 튀기는데 3분은 더 걸린다고!"

죄송하다고 한 마디 한 뒤 조용히 내려놓고 애먼 곳만 열심히 닦는 시늉을 했다.


그렇게 열심히 닦지 않아도 매주 금요일은 대청소의 날이다.

해본 적 없는 수준의 청소를 해봤고,

그래도 나는 생각보다 힘이 세다는 걸 알았다.

그러나 집에 돌아와 샤워도 못하고 잠들었다.


다섯째 날,

 채칼에 벤 세번 째 손가락에서 피가 줄줄 났다. 요리학교에서도 매번 채칼 쓸 때 주의하라고 들었다. 주의를 안 한 건 아니지만, 빨리 하려다보니 맘처럼 안 되는거다.

실수하는 건 처음이니 그렇다쳐도, 속도는 몇일만에 따라잡을 수 없는 노릇.

본래 나는 느린 사람인데 셰프가 보기에 얼마나 속이 답답할까 싶다.

해서 어떻게든 최고의 속도를 내기 위해 맡겨지는 일마다 애를 쓰지만 그게 셰프 성에 차질 못한다.


내가 새로운 일을 잡아 시작할라치면 수셰프는 3초 지켜보다가 곧바로 다가와 수정하고야 만다.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이라 홀을 지나야 할 때도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홀 매니저, 소믈리에는 나를 붙잡고 이런저런 주의사항을 일러줬다.

레스토랑마다 서비스 때 설거지를 도맡는 사람이 있는데 심지어 이 사람도 나에게 청소 방법을 고쳐주느라, 나는 귀가 열 개쯤 필요하다.


일과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건 어딜 가나 거쳐야하는 과정이니 큰 불만은 하지 않으련다. 육체적 고됨도 비행하던 것과 종류가 다르지 더 힘든 건 아니다. 다만 자존감이 낮아지는 순간들이 하루에도 여러 번 나를 쓸고가면, 지친 몸을 이끌고 돌아가는 퇴근길이 더욱 쓸쓸하다. 더구나 이미 돈독한 직원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기 어려운 분위기에 나는 이방인임을 절실히 느낀다.

  가장 두려웠던 “여기까지 와서 뭘하고 있는거지?”라는 생각을 안 할래야 안 할 수 없는 밤의 연속.


이제 버섯이 제철이란다.

종류도 다양한 버섯 박스들이 켜켜이 쌓여 대기중인 내일의 주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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