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국립수목원
시간이 빠르게 흐르고, 계절도 시간을 따라 빠르게 바뀌어간다. 코로나로 인해 역대급으로 게으르고 안락한 한 해를 보내는 와중에도 계절은 지나가서, 올해 찍고 싶었던 것들 대부분이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가고 싶었던 곳들 중 몇몇은 한동안 가기 꺼려지거나 언제 다시 갈 수 있을지 모를 정도의 상태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어차피 촬영하는 동안엔 타인과 밀접 접촉할 일 자체가 없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 않을까 싶다.
이날은 평일에 시간을 내어 조금 멀고 굉장히 넓은 곳으로 향했다.
마치 사회적 거리두기를 계속하라는 듯 가을이 순식간에 지나가버린 자리엔 이전 계절의 흔적만이 간신히 남아있었다. 그래도 가을 모습을 어느 정도 건질 수 있어서 너무 늦진 않았구나 싶다.
아직 겨울이라기엔 따뜻하지만, 주변에선 겨울빛으로 물들어가는 것들이 흔하게 보이고 있었다.
적당히 서쪽으로 넘어가는 햇빛이 옅지도 짙지도 않게 깔린 미세먼지에 부서지며, 올해 마지막 가을을 비추고 있었다. 비록 올해는 담고 싶었던 것의 일부만 보고 가을을 넘겨버렸지만, 내년 가을도 올해와 같이 예쁘길 기대해야겠다.
코로나가 무서워서 사람을 최대한 피하기 위해 평일에 시간을 내어 갔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모두가 각자의 카메라와 폰으로 다 끝나버린 가을과 옆에 있는 서로를 열심히 담고 있었다. 대부분은 카메라를 챙기기보다 단지 폰만 들고 사진을 찍고 있었다. 잠시 활동기록용으로 나도 몇 번 폰카를 꺼내 찍다 보니 이제는 나처럼 카메라라는 거추장스럽게 무겁고 시커먼 물건을 들고 다니는 것 자체가 시대에 뒤쳐져 보이게 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폰카가 하도 좋아지다 보니, 이제는 모두가 스트릿 사진작가처럼 항상 손에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시대가 된 지 오래라 더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지금 이곳은 어린이정원이 공사 중이고, 오래전 생긴 주차장 게이트 및 정산기에 이어 QR코드 스캐너가 달린 게이트가 생겼다. 예전에 국립백두대간수목원에서 개장 준비 중이던 게이트를 봤는데 이제 여기도 이런 게 들어오나 보다. 계절이 빠르게 바뀌는 만큼, 정원도 조금씩 속도를 내며 바뀌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Sony A7R2
Zeiss Loxia 2/50 (Planar T* 50mm F2)
LumaFonto Fotografio
빛나는 샘, 빛샘의 정원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