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nic attack
그날도 딸과 아내를 배웅한 후, 커피와 간단한 아침을 먹고 내 방으로 들어가 노트북을 켜고 메일을 확인했다. 1월 말부터 3월 초까지 100군데가 넘는 회사에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보냈지만, 회신을 받은 곳은 단 두 곳뿐이었다. 피터 에이전시의 Amex 프로젝트도 2월에 마무리되었고, 이후로는 프리랜서 일도 끊긴 상태였다. 다행히 Amex 프로젝트의 페이먼트가 적지 않아 아직까지 재정 상황은 마이너스가 아니었지만, 은행 잔고가 넉넉하지 않아 한 달만 소득 없이 지나가면 곧바로 마이너스로 돌아설 처지였다.
멍하니 스크린을 바라보며, 만약 정규직 이직이 안 된다면 앞으로 어떻게 삶의 방향을 정해야 할지 고민이 들었다. 아내가 계속 직장을 다니고, 나는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며 프리랜서로 생계를 이어가는 쪽으로 우리 가정의 라이프스타일을 조정해야 할까? (실제 미국에는 이런 조합의 가정이 많다.) 하지만, 만약 아내마저 직장을 잃게 된다면 우리는 뭘 먹고살아야 하나?
그렇게 한 번도 상상해보지 않았던 미래가 머릿속에 그려지기 시작하자, 두려움과 함께 심장이 빠르게 뛰고 숨이 불규칙해졌다. 갑작스러운 공포가 정신과 육체를 동시에 마비시키는 기분이었고, 숨쉬기가 점점 더 어려워졌다. 순간 가슴을 움켜잡고 의자에서 떨어져 바닥에 쓰러졌다. 평생 처음으로 공황 발작(Panic attack)을 경험한 것이다.
한참 눈을 감고 있으니,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내 모습이 카메라 필름이 돌아가듯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유학 시절 학교에서 겪었던 언어 소통의 어려움, 회사에서 느꼈던 인종차별, 이전 회사들의 구조조정, 영주권을 받기까지 마음을 졸였던 순간들... 나름대로 잘 견뎌왔던 것들이 떠오르는데, 그날 나는 무너지고 있었다. 멘털이 심하게 흔들리며, 쌓여 있던 두려움과 서러움, 그리고 무기력함이 한꺼번에 터져 나와 눈물이 쏟아졌다. 한참을 꺼억거리며 울었다.
얼마나 울었을까? 평생 그렇게 울어본 적이 없었던 것처럼 오열하고 나니, 심장 박동이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고 숨쉬기도 평상시처럼 안정되어 있었다. 안심이 되면서 허기가 밀려왔다. 부엌으로 가서 라면을 끓여 먹고 다시 책상으로 돌아와 심호흡을 크게 하고 마음을 다잡았다. LinkedIn에 접속해 혹시나 새로운 Job opening이 있는지 검색하기 시작했다. 기존처럼 내가 원하는 회사 중심으로 찾기보다는 이제는 내 업무와 관련된 모든 Job opening을 찾아보기로 했다. 또한, 정규직만을 고집하지 않고 프리랜싱을 포함한 모든 형태의 Job을 대상으로 검색하기로 했다.
한참을 검색하다가 오늘 올라온 두 개의 Job opening을 발견했다. 하나는 뉴욕에 기반을 둔 중견 에이전시였고, 10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시니어 디자이너를 찾고 있었다. 또 하나는 마찬가지로 뉴욕에 있는 UX 에이전시였고, 팀장급을 모집 중이었다. LinkedIn에 표기된 각 HR 담당자의 이메일로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보냈다. 대기업 인하우스 디자이너로 10년 넘게 일했던 내가 에이전시 업무 환경이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미국의 에이전시도 일이 많지만, 대기업에 비해 처우는 제한적이다. 그렇지만 지금 내 상황은 이것저것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한 달 후면 둘째가 태어나고, 아내는 최소 3-6개월은 휴식을 취해야 하기에 가정의 소득은 현재 월급의 절반으로 줄어들 것이다.
둘째가 태어나기 전에 나는 반드시 취직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