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왜 아빠는 집에 있어?

아이의 말 한마디가

by 루미아


일요일 오후였다.
강재는 거실 바닥에 앉아 색종이를 접고 있었다.
아이는 알록달록한 도형 위에 스티커를 붙이며 웃었다.
TV에서는 소리가 꺼진 채 애니메이션이 흘러가고 있었고,
창문 너머엔 느슨한 햇살이 번지고 있었다.

서하는 부엌에서 냉장고를 열어 남은 찬거리를 정리하고 있었다.
잡채, 단무지, 김치국.
명절 뒤 냉장고는 언제나 정리가 필요했다.

“엄마.”

아이가 불렀다.
“왜?”

“왜 아빠는 회사 안 가고, 맨날 집에 있어?”

서하의 손끝이 잠시 멈췄다.
잡채가 든 그릇 뚜껑을 닫지 못한 채
그 문장을 그대로 삼켰다.

거실 쪽,
강재는 조용히 종이비행기를 접고 있었다.
그도 들었다.
그 말이 방을 가로질러
가슴속 어딘가에 꽂히는 걸 알고 있었다.

아이는 묻고 말았다.
아무 악의 없이,
그저 세상의 구조를 반영하듯
배운 대로 질문한 것이다.

“엄마는 맨날 일하러 가는데…
아빠는 왜 집에 있어?”

서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을 찾을 수 없었다.
무슨 말을 해도 변명 같을 것 같았고,
사실을 그대로 말하자니
자신이 지는 기분이 들 것 같았다.

강재도 대답하지 않았다.
종이비행기를 마저 접어
아이 손에 쥐어주었다.

“그건 말이지…”
한참 뒤, 그가 입을 열었다.
“엄마가 지금 더 중요한 일을 하고 있어서야.
그래서 아빠는… 지금 집에서 기다리는 중이야.”

아이의 눈은 이해하지 못했지만,
더 묻지는 않았다.
비행기를 던지러 거실을 한 바퀴 돌았다.

그날 밤,
서하는 늦게까지 가계부를 들여다보았다.
숫자는 늘 정확했고,
감정은 항상 그 다음이었다.

‘집에 있는 아빠’라는 말이
아무렇지 않게 통용되는 세상이 오기까지
얼마나 더 많은 설명과 침묵이 필요할까.


그 생각을 하다,
잠시 뒤 강재의 등을 보았다.

아이의 질문 하나가
두 사람을 동시에 조용히 흔들어놓은 날이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흔들린 채로
무너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