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업아빠>의 등장
아이의 첫 학부모 수업이 있는 날이었다.
서하는 회의가 있었다.
그는 대신 갔다.
강재는 아이 손을 잡고 정문을 들어섰다.
아이들은 교실로,
부모는 복도로.
엄마들 사이, 아빠 하나.
그의 목에는 노란 배지가 달려 있었다.
조금의 정적.
그 다음엔 짧은 웃음과 속삭임.
“요즘엔 아빠들도 잘하더라.”
“아이가 아빠를 참 좋아하네요.”
그 말은 온화했지만,
그 안에는
‘아빠가 왔다는 것 자체에 대한 놀람’이 여전히 있었다.
서하는 오후에 같은 반 친구 엄마로부터 이야기를 들었다.
“아버님이 오셨는데요,
아이랑 진짜 다정하더라고요.”
“요즘은 아빠들이 더 섬세해요.
엄마보다 나은 경우도 많잖아요.”
그 말은 틀리지 않았다.
서하도 웃으며 맞장구쳤다.
하지만 마음속엔
어딘가 어긋난 감각이 남아 있었다.
요즘은,
아빠들이 아이에게 관심을 갖는 것이
더 이상 특별하지 않은 시대다.
아빠가 교실에 들어가는 풍경도
이젠 낯설지 않다.
하지만 강재는
그 ‘조금 다른’ 분류에 들어갔다.
단지 일시적으로 참석한 아빠가 아니라,
늘 교실에 올 수 있는 아빠.
그 점에서
사람들은 다시 한 번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 서하는 깨달았다.
자신도 어쩌면,
그 틈에서 살고 있었다.
서하는 자신을 “전업 워킹맘”이라 부른다.
회사에서는 한 치도 물러설 수 없는 자리를 지켜야 하고,
집에서는 언제나 미안함을 단단히 눌러야 한다.
강재는 “전업 아빠”였다.
낯선 말,
그리고 아직은 많이 불려지지 않는 단어.
그 구조는
완전히 틀리지 않았고,
조금은 어색했고,
서하와 강재는 그 사이 어딘가에 서 있다.
집에 돌아온 서하는
가방 안에서 아이의 그림을 꺼냈다.
강재는 크게 웃으며 손을 잡고 서있고
서하는 옆에 서있다.
손은 잡고 있지 않지만
미소 짓고 있다.
그림을 바라보며 서하는 생각했다.
아이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은
지금 그 아이를 가장 많이 안고 있는 사람이다.
그것이면,
지금은 그걸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