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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라는 이름으로 기억되는 감정들

까르띠에는 짝사랑, 샤넬은 옛사랑, 반클리프는 현사랑

by 루미 lumie

가끔 드레스룸을 정리하다가,

오래된 브랜드 쇼핑백을 발견하게 된다.


까르띠에.

샤넬.

반클리프 앤 아펠.


예전엔 이 이름들이 브랜드로만 보였는데

요즘은 이 셋이 전부, 관계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까르띠에는 짝사랑.

샤넬은 옛사랑.

반클리프는 현사랑.




1. 까르띠에 — 짝사랑의 구조


까르띠에는 항상 너무 멋있다.

단단하고, 선명하고, 말없이 우아하다.

사람으로 치면 늘 잘 차려입고, 무게감 있고,

가벼운 말 한마디조차 잘 안 던지는 그런 사람.


그런데도 한 번쯤은 꼭 마음을 주게 되는 존재.

러브든, 팬더든.

모두 감정보다 ‘구조’로 먼저 다가오는 브랜드였다.


나는 몇 번이나 까르띠에를 좋아했지만

한 번도 깊이 빠져든 적은 없다.


아름다움은 항상 거기 있었지만

내 감정이 오래 머물지는 못했다.


그건 정말 짝사랑 같은 감정이었다.

알고 있었지만, 끝까지 가지는 못한 마음.




2. 샤넬 — 옛사랑이라는 이름의 계절


샤넬은 나를 만들어준 브랜드다.

처음 내가 직접 월급을 받아 가방을 샀을 때,

처음 화려한 단추와 체인에 반했을 때.


샤넬은 내 감정의 첫 집이었다.


코코핸들, 클래식 플랩, 트위드 자켓.

샤넬은 모든 것이 감정의 정점이었다.


그런데 그 사랑은 어느 순간부터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올라가는 가격,

무거운 로고, 그리고 조금씩 늘어나는 피로감.


이제는 그 시절의 감정이 남아 있을 뿐

그때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없다.


좋았지만 이름만 들어도 마음이 한 번쯤은 출렁이지만

다시 꺼내 들게 되진 않는 감정.


그게 지금 내게 샤넬이다.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되돌아가진 않을 옛사랑.




3. 반클리프 앤 아펠 — 지금, 나에게 감기는 사람


요즘 나의 마음을 채우는 건 반클리프다.


알함브라의 조용한 곡선,

뻬를리의 말 없는 반짝임.


말하지 않아도, 설명하지 않아도

그냥 조용히 하루 위에 얹을 수 있는 주얼리.


특별한 날에만 꺼내는 것도 아니고,

모든 날에 다 어울리는 것도 아닌,

‘오늘이 조금 더 부드럽기를 바라는 날’에 닿는 구조.


반클리프는 나에게 감정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 오래 남는다.


지금 내 손목에 감기고,

내 감정에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랑이 있다면

그건 바로 이 사람이다.


내가 지금 사랑하는 브랜드.




감정을 입는다는 것


브랜드를 좋아하는 사람은 많다.

하지만 브랜드로 감정을 정리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나는 내가 좋아했던 브랜드를 생각할 때마다,

그때의 계절, 그때의 기분,

그리고 그때 내가 가지고 싶었던 삶을 함께 떠올리게 된다.


까르띠에 워치를 처음 손목 위에 올려봤던 날

샤넬 첫 트위드를 입어보았던 날,

반클리프 브레이슬릿을 일 년을 마무리하며 스스로 선물했던 날.


그때마다 나는 브랜드를 산 게 아니라

감정을 감은 거였다.




그리고 지금


지금 나는 다시 까르띠에를 바라보고,

샤넬을 간혹 떠올리고,

반클리프를 자주 손에 얹는다.


하나의 브랜드는,

한 사람의 관계처럼

나의 시간과 감정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그리고 그 감정의 궤적을 따라가 보면

내가 어떤 사람으로 살아왔는지도 조금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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