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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 가지 않았지만, 다녀왔다

핑크가 일렁이는 파도 안으로

by 루미 lumie


햇살이 조금 더 길어지고, 바람이 한결 가벼워졌다.


나는 여름이 다가온다는 걸 그렇게 느낀다.

피부가 아니라, 감촉으로.



어느 날, 아주 보송하고 조용한 천 한 장을 보았다.



빛을 머금고 있지만 번쩍이지 않고,

촉촉하진 않지만 이상하게 시원해 보였다.


그건 수건도, 옷감도 아닌… 여름의 조각 같았다.



그 순간부터 나는 마음속으로 바다를 떠올렸다.

그늘이 드리워진 발코니, 책상 위의 파우치, 햇빛 아래 옅은 분홍색.


멀리 가지 않았는데,

이상하게도 바닷바람 냄새가 났다.



사진 속 누군가는 수영복을 입고 있었고,

누군가는 머리 위로 선글라스를 얹고 있었다.


나는 그 어떤 것도 입지 않았지만,

그 모든 여름의 정서를 함께 누리고 있는 기분이었다.



어떤 계절은, 실제로 겪지 않아도

마음에 먼저 다가온다.


그리고 어떤 물건은, 손끝에 닿기도 전에 기억이 된다.



나는 그 바다에 가지 않았다.

그렇지만 마음은 확실히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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