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샤넬 코코크러쉬의 레이어드의 온도

감정을 정리하는 방식에 대하여

by 루미 lumie


레이어드는 쌓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겹쳐지는 감정들을 천천히 정돈해 가는 행위,

지금의 나를 비추는 방식일지도.


예전엔 쌓는 주얼리를 좋아하지 않았다.

겹치는 것들은 늘 복잡했고,

어디서부터가 나인지 알 수 없게 만들곤 했다.

반지는 손끝에서 나를 말하는 물건이기에,

너무 많은 건 내 속마음을 가려버리는 일처럼 느껴졌다.


그러다 처음, 샤넬의 코코크러쉬를 겹쳐보았을 때

그 반짝임은 조용히 리듬을 만들었다.

티 나지 않게, 정돈된 선율처럼

감정을 가지런히 정리하는 결이 느껴졌다.


그날, 매장에서 여러 반지를 껴보다

조금은 망설이며 베이지골드 링을 손에 올렸다.

색이 내 톤과 어울릴지 자신도 없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미묘한 온기가

손 위에 머무는 감정을 부드럽게 눌러주는 느낌이었다.


화이트골드는 내 안을 선명하게 비춘다.

차가운 듯 단단한 표면이

오늘의 마음을,

생각의 결을 조금 더 또렷하게 보여준다.


반면 베이지골드는

어쩐지 조금 더 감정을 눌러주고,

낮은 톤으로 나를 감싸 안는 느낌이다.

그건 마치 내 안의 여백에

조용히 머무는 음악 같은 온기.


나는 요즘, 주얼리를 고를 때

이게 나를 반짝이게 하는지보다

지금의 나를 그대로 두는지를 먼저 본다.

많이 빛나지 않아도 좋다.


과하지 않고, 조용한 반짝임이면 충분하다.

레이어드는 어쩌면

다른 나를 덧입히는 게 아니라

덜어낸 나를 조용히 감싸주는 방식일지도.


샤넬의 코코크러쉬는

그렇게 내 감정의 온도에 따라

다르게 겹쳐지고, 다른 리듬을 만든다.

두 개의 링.

하나는 미니, 다른 하나는 스몰.

하나는 베이지골드, 다른 하나는 화이트골드.

그 조합이 매일 같지는 않지만,

손끝에서 만들어지는 리듬은 언제나 같다.


정돈되고, 나를 닮은 결.


오늘의 나는 이 조합이 마음에 든다.

베이지골드는 중심에 있고,

화이트골드는 약간 떨어져 있는 날.

어쩌면 이것이 지금의 내 마음의 거리인지도.


빛나서 고른 것이 아니다.

덜어내고, 남은 감정이

자연스럽게 골드로 이어진 것뿐이다.


레이어드는 손끝에서만 끝나지 않는다.

어느 날은 손목 위의 골드가

링보다 더 많은 말을 건넬 때도 있다.


코코 크러쉬의 브레이슬릿은

정제된 곡선 안에 단단한 결이 흐른다.

움직일 때마다 아주 조용히 부딪히고,

그 마찰에서 오늘의 감정이 흘러나온다.



나는 브레이슬릿을 여러 개 겹쳐 끼우는 대신

하나씩, 온도를 달리하며 겹쳐본다.


화이트골드가 중심일 땐

그 차가운 명료함이 내 생각을 정리해 주고,

옐로골드를 더하면

감정이 한 톤 부드러워진다.


베이지골드는,

어쩌면 내 안의 말하지 않은 것들을 대신 감싸주는 톤이다.

말없이 감정을 배치해 주는, 조율의 골드.


손끝의 링이 오늘의 생각을 붙들고 있다면,

손목 위의 브레이슬릿은

그 생각의 박자를 조율하는 리듬감 같은 것.


레이어드는 그래서 아름답다.

겹친다는 건, 감정을 누적하는 게 아니라

비워가며 나를 다듬는 일.


손끝과 손목,

그 사이의 거리를 따라

오늘의 감정이 고요하게 흘러간다.





#샤넬코코크러쉬

#레이어드의온도

#화이트골드와베이지골드

#브레이슬릿레이어드

#샤넬

#감정의기록

#루미로그

#덜어내는선택

#조용한취향



keyword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