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웨딩 밴드 이야기
웨딩밴드를 고르던 시절,
남편과 수없이 많은 반지를 손끝에 올려보았다.
부쉐론, 까르띠에, 그라프, 쇼메….
예뻤지만,
왠지 모르게 마음을 울리는 순간은 오지 않았다.
조금 서운했다.
손에 딱 맞으면서도 이거다, 싶은
심장이 뛰는 만남을 기대했었으니까.
나에게는 신데렐라의 구두와도 같은.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와 함께 떠난 오사카.
좋은 커피 디저트, 맛있는 식사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일정이었다.
특별한 기대도 없이 걷다가,
조용히 들어간 Harry Winston 부티크.
다이아로는 세계적으로 유명하지만
한국에는 들어와 있지 않은 브랜드라,
미국이나 일본에서 주로 만날 수 있다.
아이보리 빛이 전혀 담기지 않은,
시리도록 투명한 빛을 내는
D~F등급 다이아까지만을 다룬다.
부티크는 많이 크지 않았다.
작은 쇼케이스 안,
담백하면서도 아름다운 반지들 사이에,
부드러운 매듭과 곡선을 품은 반지가
빛을 머금은 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러 반지가 있었지만 망설임은 없었다.
손가락에 올려본 순간,
빠른 스타카토의 속도로 작은 빛들이 튀었다.
작은 숨이 새어 나왔다.
“아, 이거구나.”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그런 확신.
Harry Winston에서는 보통,
손에 꼭 맞는 링을 새로 제작하고
기다리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하지만 그날,
오사카 부티크 한편에는 마치 운명처럼,
내 손가락에 꼭 맞는 리본 모양의 링이
기다리고 있었다.
빛을 담은 반짝임.
리본 곡선 위에 앉은 다이아몬드들의 빛이
점프하듯이 휘광 리듬을 빚어냈다.
흔치 않은 우연.
아니, 작은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릴 적은 로맨틱한 프로포즈를 꿈꿨던 나였다.
영화처럼, 레스토랑 한가운데에서
서프라이즈로 반지를 내미는 장면.
아니면, 《섹스 앤 더 시티》처럼
“Because you’re the one.”
따스한 조명 아래 속삭이는 장면.
하지만 내 현실은,
오사카의 따뜻한 햇살 아래,
작은 부티크 근처서 남편과 나눈 짧은 통화.
“여기에서만 살 수 있는,
내 손가락에 딱 맞는 반지가 있어.”
“그래, 자기가 하고 싶은 거, 해야지.”
그 담백한 말 한마디가,
화려한 이벤트보다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그건 마치 연애 시절 내내 성실했던
남편과의 성격과도 닮았다.
Harry Winston.
시간을 품은 이름.
1932년 뉴욕에서 시작되어,
‘영원’을 상징하는 빛을 담아 온 브랜드.
일본에서는 ‘프로포즈 링’의 대명사처럼 불린다.
매우 얇은 프롱이 빚은 섬세한 세팅으로,
다이아 크기와 상관없이 발산되는 빛의 리듬,
투명한 맑은 광채.
그리고, 변치 않는 약속.
시간이 흘러도,
그날의 설렘은 희미해지지 않았다.
리본처럼 부드럽고 단단한 매듭이
우리의 시간을 조용히 이어주고 있다.
내 손가락 위,
곡선을 따라 리드미컬한 작은 반짝임.
일상에서 한 번씩 바라볼 때마다
따뜻함이 차오르는,
평생 시간을 새기어 나가는 나의 반지.
그 안에 담긴 모든 약속, 모든 마음이
여전히, 처음 만난 그날처럼 나를 감싸 안는다.
이제부터는,
이 반지와 함께 지나온
계절의 조각들을 꺼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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