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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넬, 시간을 짓는 리듬

버지니 비아르에서 마티유 블라지까지

by 루미 lumie


샤넬은 시간을 짓는 브랜드다.




트위드 한 올,

브랜드의 정신이 아로새겨진 단추 하나,

런웨이에서 보이는 특유의 리듬까지.


그 모든 건 단지 여성의 옷이 아닌,

시간의 태도였다.


처음 샤넬 트위드를 만났을 때,

그건 단순한 유명 브랜드의 옷이 아니었다.

따뜻한 아이보리색 직조 트위드에

몸을 감싸 안았을 때,

새로운 삶을 대하는 방식처럼 느껴졌다.


가볍지 않은 직물과 선의 리듬.

서두르지 않는 변주.

시간을 견뎌내는 아름다움.



버지니 비아르, 샤넬의 부드러운 전환


샤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던

버지니 비아르는 샤넬을 조용히 돌려세웠다.


보다 가벼워진 트위드,

여성스럽고 경쾌한 실루엣, 살롱 무드의 쇼.


화려함보다 섬세함을 택한 그녀의 방향성은

주얼리에서도 드러났다.

코코 크러쉬는 더 이상 과시가 아닌,

연령을 초월한 일상의 리듬으로 자리매김했다.



언젠가부터 조금씩, 어긋난 리듬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균열이 생겼다.


경영진이 비용 효율을 추구하면서

가방 가죽의 텐션은 점차 줄었고,

자꾸만 장난감미가 느껴졌다.

스티치와 하드웨어는 더 가벼워졌다.


트위드는 점차 직물에서 가벼움이 느껴졌다.

가격은 치솟았지만, 설득력은 따라오지 못했다.


2023년이 되자

클래식 플랩백은 1,400만원 대를 넘어섰고

트위드 자켓은 1,300만원 가격대가 되었다.


샤넬은 말한다.

‘가장 여성적이지만,

누구나 쉽게 다가올 수 없는 브랜드‘


그러나 가격의 심리적 저항이

철학을 이기기 시작하면,

브랜드의 긴장선은 서서히 풀린다.


2023년 FW, 사실상 버지니의 마지막 무대



까멜리아가 피어난 조용한 런웨이.

버지니는 코코샤넬이 가장 사랑하는 꽃으로

그녀의 클래식한 헌사를 바쳤다.

시들지 않는 꽃처럼,

샤넬의 본질을 담은 아름다움을 남기고.


버지니는 오랫동안

칼 라거펠트의 그림자 아래 일했다.

샤넬의 본질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점점 샤넬 경영진과

버지니의 방향성이 어긋났다.


- 경영진은 ‘새로운 세대를 끌어들이는

비용 효율적 샤넬‘를 원했고,

- 버지니는 ‘더 부드럽고,

여성적인 개인적인 샤넬‘을 꿈꿨다.


작은 균열은 결국,

하우스 전체의 리듬을 흐트러뜨렸다.


버지니는 샤넬을 사랑했지만,

팬들과 샤넬은 이제 다른 길을 원했다.


23년 FW 이후는 버지니도 스스로의 리듬을 잃고,

인스타그램에서 빠르게 휘발될 수 있는

톡톡 튀는 시즌들을 선보였다.


그리고 올드 팬층은 새로운 디자이너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새로운 리듬, 마티유 블라지


2024년.

샤넬은 장고 끝에 새로운 선택을 했다.

마티유 블라지(Mathieu Blazy).


전 보테가 베네타 수석 디자이너.

조용한 럭셔리, 장인정신,

소재 본질을 믿는 디자이너.


마티유는 티 내지 않는 고급스러움을 추구한다.

섬세하고, 가까이 다가가야 보이는 진정성.



그러나 그가 원하는 고급스러움의 지향점은,

또 다른 가격 상승을 동반할 수 있다.


샤넬은 이제, 본질을 다시 찾을 수 있을까.



My Little Black Tweed Jacket


2023년 가을.

나는 샤넬 23FW 컬렉션에서

마음 안에 덜컹,하고 들어오는

블랙 트위드 자켓을 구입했다.


런웨이의 까멜리아가 단추 속에

폭 잠긴,

가느다란 선의 깔끔한 디자인.


손에 쥐었을 때, 정통파 트위드보다는

살짝 가벼운 무게감.

그러나 여전히 살아 있는 트위드의 탄성과 결.


울 트위드지만

실키하게 몸에 감기며 선이 똑 떨어지는 자켓을 입자

여전히 샤넬의 시간을 느낄 수 있었다.


샤넬 특유의 로고가 도드라지지도 않으면서,

내가 오랜 시간 찾았던 블랙 자켓이었다.


“예전보다 조금 변했어도, 여전히 좋다.

이 리듬을, 앞으로 내 시간 안에 묶어두고 싶다.”




시간을 믿는다는 것


모든 아름다움은 시간이 흐르며 변한다.

샤넬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진짜 럭셔리는,

변화 속에서도 본질을 지켜내는 것.


버지니 시대에

마지막으로 구매했던 트위드 자켓은

가장 일상에서 편안하게 함께하는

‘My little black jacket’이 되었다.


다가올 샤넬.

마티유 블라지의 리듬 아래,

다시 시간을 짓는 브랜드가 될 수 있을까.



그렇다면,

나 역시 그 시간 속에서

조용히, 천천히 걷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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