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N이면 넌 나의 S 되어줘

"나의 MBTI를 맞춰보세요."

by 박루민
나는 종종 이런 상상을 한다. 사회적으로 성공하여 큰 돈을 벌되 단순히 부를 쌓는 데 그치지 않고 세상을 이롭게 하고 싶다. 그래서 명예도 중요했고, 언젠가는 노벨상도 받고 싶었다. 성공한 뒤에는 아프리카에 학교를 세워, 가난해서 밥조차 제대로 먹지 못하지만 머리가 좋고 성실한 아이들을 모아 시험을 통해 선발하고, 성적순으로 가족 전체에게 식사와 주거를 제공한다. 그들을 고등학교에서 대학교까지 장학금으로 뒷받침하며, 졸업 후에는 10년간 우리 회사에서 일하게 하고, 그 사이 번 돈의 5퍼센트를 후배 양성에 반드시 쓰도록 한다. 그렇게 몇 기수만 내가 직접 지원하면, 이후에는 졸업생들이 낸 장학금으로 시스템이 굴러가고, 똑똑하고 성실한 이들이 다시 회사를 키워 더 큰 부를 만들고, 나는 그 부로 더 많은 학교를 세운다. 선순환은 계속 확장되어, 언젠가는 공부하지 않는 주변 이웃들에게도 밥과 주거를 제공하며 삶을 따뜻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정답은 ENFJ다.

위에 있는 사진은 내가 직접 그린 자화상이다. 정장을 입고 무표정하게 코딩하는 모습은 내가 꿈꾸는 ‘성공한 나’를 상징한다. 시크하고, 직업적으로 성취하며, 흔들림 없는 모습. 그러나 그 앞에 앉아 있는 골든 리트리버 강아지는 내 마음의 진짜 얼굴을 보여준다. 사람을 좋아하고, 칭찬과 사랑에 약하며, 누군가를 돕고 싶어 몸이 먼저 반응하는 나. 겉으로는 차갑고 단단해 보이지만, 따뜻한 속마음을 숨기지 못하는 것이다. ENFJ는 흔히 골든 리트리버에 비유된다. 따뜻하고 충직하며, 상대가 웃을 때 덩달아 행복해지는 성향. 나도 그렇다. 누군가를 돕고, 함께 성장하는 순간에서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 하지만 골든 리트리버가 늘 관심과 사랑을 필요로 하듯, ENFJ 역시 타인의 인정과 애정에 민감하다. 혼자 있는 시간에는 공허하거나 쉽게 지칠 수 있다. 그러니 이 성향의 장점과 단점은 언제나 붙어 다닌다.


내 MBTI는 ENFJ지만, 사실 E와 I, F와 T, J와 P는 거의 반반씩 나온다. 어떤 날은 내향적이고, 또 어떤 날은 논리적이다. 그러나 단 하나, 절대 변하지 않는 게 있다. 바로 N. 직관형. 내 N 성향은 늘 하늘을 찌른다. 검사 결과를 보면 늘 N 막대가 종이를 뚫고 올라간 것처럼 솟아 있다. 나는 늘 눈앞의 사실보다 ‘앞으로 어떻게 될까?’에 먼저 반응한다. 무슨 일이 생기면 “지금 내 기분은 어때?”보다는 “이 일이 내 삶에 어떤 파장을 남길까?”부터 계산해버린다.


그래서 요즘은 이렇게 묻는다. “만약 내가 S였다면 어땠을까?” S는 지금 이 순간에 강하다. 작은 디테일을 놓치지 않고, 현재의 사실을 근거로 삼고, 루틴에서 안정감을 얻는다. 추상적인 가능성보다 당장 손에 잡히는 현실을 더 중시한다. 별생각 없는 듯 무심하게 보이지만, 사실은 ‘여기’에 발 딛는 힘이 있는 것이다. 나는 그 무심함이 부럽다.


NF 친구들과 대화하면 편하다. 서로 감정을 잘 읽고 공감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나는 ST 친구들에게 더 끌린다. 그들은 내 말에 크게 흔들리지 않고, 담담하게 “음, 그래?” 하고 넘어간다. 그런데 그 앞에서는 내가 오히려 더 솔직해진다. 불필요한 해석을 거두고,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게 되니까. 아마도 내가 찾고 있는 ‘here and now’가 그들의 태도 속에 숨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요즘 ‘here and now’를 연습하려 한다. 미래의 파장을 계산하기보다, 지금 내 감각에 집중하는 것. 손끝이 차가운지, 심장이 빠른지, 눈앞 풍경이 어떤 색인지 알아차려 보는 것. 그렇게 하면 불필요한 상상에 낭비되던 에너지가 줄어드는 걸 느낀다.


그리고 여기에 꼭 붙이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바로 스트레스와 회복탄력성이다. 우리는 흔히 스트레스를 피해야 할 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 스트레스는 우리 몸이 “지금 중요한 일 앞에 있어!”라고 알려주는 신호다. 스탠포드의 켈리 멕고니걸은 “의미 있는 삶은 스트레스를 받는 삶”이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 내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면, 그만큼 의미 있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는 뜻일 수 있다.


시험을 앞둔 긴장, 중요한 관계의 갈등, 큰 프로젝트의 압박 — 모두 내가 그만큼 애쓰고 있다는 증거다. 문제는 스트레스를 피하려고 할 때 오히려 더 지친다는 것이다. 왜 내가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지, 그것이 내 가치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떠올리면, 스트레스는 단순한 압박이 아니라 내 삶의 우선순위를 알려주는 나침반이 된다. 물론 고통 자체를 피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고통이 곧 괴로움이 될 필요는 없다. 억지로 바꾸려 하기보다 “그럴 수도 있지”라고 받아들이는 순간, 신경계는 확장된다. 피할 수 없는 고통 앞에서도 마음은 훨씬 가벼워질 수 있다.


결국 중요한 건, 의미와 현재를 동시에 붙드는 힘이다. 실존주의가 말하듯 삶은 본래 불합리하고 무의미하다. 그러나 우리가 그 무의미 속에서 의미를 만들어낼 수 있다. 동시에 ‘힘 빼기’가 가르쳐주듯, 그 의미를 만들 때 과하게 긴장하지 않고, 소모되지 않는 법을 배워야 한다. 스트레스는 의미 있는 삶의 그림자이고, 예민함은 그 삶을 더 깊이 감각할 수 있는 선물이다. 내가 할 일은 그 선물을 괴로움이 아니라 회복으로 바꾸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본질적으로 N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조금은 S처럼 발을 땅에 붙일 수 있다면? 그렇다면 스트레스는 더 이상 나를 위협하는 적이 아니라, 나를 성장시키는 든든한 동반자가 되지 않을까? 나는 오늘도 조금은 더 S가 되기를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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