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한테는 아무 문제가 없어"
나는 폐소공포증을 가지고 있다. 심각한 수준은 아니지만, ‘언제든 찾아올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또 다른 불안으로 이어진다. 실제로 발작처럼 증상을 느끼는 일은 거의 없지만, 무언가를 시작할 때면 늘 머릿속 한쪽에서 “혹시 폐소공포증이 찾아오면 어떻게 하지?”라는 질문이 맴돈다. 더 특별한 점은, 내 폐소공포증이 단순히 공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처리가 막혀 답답할 때나, 인간관계에서 숨이 막히는 순간에도 그 그림자가 찾아온다. 그래서 나는 늘 도망치듯 새로운 방법을 찾고, 어떻게든 벗어나려 애쓰며 살아왔다. 돌아보면, 그런 몸부림들이 지금의 나를 만든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달라졌다. 예전처럼 피하기만 하기보다, 공포증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이제는 그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내가 언제 처음 폐소공포증을 느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흐릿하게 남아 있는 가장 어린 기억은 유치원 시절이다. 부모님과 함께 TV를 보던 중, 연예인들이 군대에 가는 모습을 담은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 나오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이유도 모른 채, 절대 군대에 가고 싶지 않다며 크게 울음을 터뜨렸다. 부모님은 “애가 벌써부터 그런 걱정을 하냐”며 놀라워하셨지만, 내겐 그것이 공포의 첫 기억으로 남았다. 그때부터 나는 어떻게 하면 군대를 가지 않을 수 있을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알게 되었다. 공대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으면 군 복무를 대체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 순간부터 나의 꿈은 ‘공대 박사’가 되었다. 의사나 변호사 같은 전문직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중요하지 않았다. 어린 나는 단지 생존을 위해, 공포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박사가 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돌이켜보면, 지금 내가 공대 대학원을 졸업하고 삼성전자에서 메모리 반도체를 설계하고 있는 것도 이 공포증이 만든 길 같다. 군대를 피하기 위해 세운 목표는 나를 공부로 몰아넣었고, 덕분에 수학과 과학을 좋아하게 되었으며, 사춘기의 방황 속에서도 궤도를 벗어나지 않게 붙잡아주었다. 공포증은 나를 괴롭히고 아프게도 했지만, 동시에 내가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묘한 방향타가 되어주었다.
폐소공포증은 나를 좋은 사람으로도 만들었다. 웃기게 들릴지 모르지만, 나는 군대만큼이나 감옥에 가는 것도 두려웠다. 그래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남들을 이기며 살아가는 길은 애초에 선택할 수 없었다. 나는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정정당당하게 싸우고 싶었고, 합법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믿었다. 그렇게 살다 보니 나도 모르게 남들에게 베풀고 사는 즐거움을 알게 되었고, 또 스스로가 나를 힘들게 하는 경험이 많다 보니, 적어도 다른 사람을 힘들게 하지는 말아야겠다는 마음도 자연스럽게 배웠다. 잘하지는 못하지만 언제나 다른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려 애썼고, 그 사람 자체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방법을 조금씩 익혀왔다. 덕분에 나는 예민한 사람이 되었지만, 지금은 그 예민함과도 조금은 친해지고 있다. 다행인 건, 많은 사람들이 나를 좋은 사람이라고 말해준다는 사실이다. 물론 가끔은 나의 선의를 이용하려 하거나,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들도 만난다. 그럴 때면 잠시 힘들지만, 결국 나는 나와 함께 선의를 나누며 살아가는 사람들 속으로 다시 돌아가곤 한다. 미워 죽겠는 폐소공포증이지만, 돌아보면 나를 공부하게 만들었고, 인성을 키워준 고마운 친구이기도 하다.
나는 폐소공포증을 이겨내기 위해 여러 노력을 해왔다. 하지만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여전히 알 수 없다. 앞서 말했듯, 내 기억이 시작되기도 전부터 있었던 일이기에, 왜 이런 감각이 나를 지배하게 되었는지 설명할 길이 없다. 다만 공포증이 발현될 때의 느낌은 분명하다. 온몸의 근육이 제멋대로 긴장하며 불편한 신호를 보내고, 마치 몸 전체가 간지러운 것처럼 괴롭거나, 숨이 막혀 들어오지 않을 것 같은 답답함이 엄습한다.
그 불편함을 어떻게든 견뎌내기 힘들어 정신과 상담을 찾아간 적도 있었다. 나는 선생님에게 물었다.
“아무 이유도 없이 가슴이 답답해지고, 갑자기 몸이 불편해져요. 저는 왜 이렇게 이상할까요?”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상한 게 아니라, 분명 이유가 있을 거예요. 그 이유를 찾아야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몇 가지 약을 처방해 주었다.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SSRI)였다.
나는 그때 처음 깨달았다. 내가 느끼는 고통이 단지 ‘내가 이상해서’ 생긴 것이 아니라, 내 몸의 호르몬과 신경계가 작동하는 방식에서 비롯된 결과라는 것을. “많이 힘들죠?”, “괜찮아요?” 같은 말들은 도무지 나를 위로해주지 못했는데, “호르몬 때문일 수 있다”는 설명은 이상하리만큼 나를 편안하게 만들었다. 그것은 내 잘못이 아니라, 뇌의 화학적 작용이 만들어낸 결과라는 사실. 그 순간이, 내가 뇌과학을 처음으로 진지하게 바라보게 된 출발점이었다.
우리가 위협을 느낄 때 몸은 자동으로 반응한다. 자율신경계가 ‘교감 신경’과 ‘부교감 신경’이라는 두 갈래로 나뉘어 균형을 잡기 때문이다. 교감 신경은 흔히 “Fight or Flight” 모드라 불리며, 위험 상황에서 심박수를 높이고, 혈압을 올리고, 호흡을 가빠지게 한다. 반대로 부교감 신경은 “Rest and Digest” 모드로, 몸을 안정시키고 소화를 촉진하며 긴장을 풀어준다. 이 둘은 마치 시소처럼 균형을 이루며 작동하는데, 스트레스가 지나가면 교감 신경이 물러나고, 부교감 신경이 몸을 회복 모드로 돌려놓는다. 문제는 이 균형이 무너질 때다. 교감 신경이 지나치게 활성화된 채 제동이 걸리지 않으면, 불안은 끝없이 증폭된다. 내가 폐소공포증 속에서 느낀 숨 막힘과 근육의 불편함은 바로 이런 과도한 교감 신경 반응과 연결되어 있었다.
이 과정에서 몸은 “싸우거나 도망가기” 위해 운동량이 많아질 것을 대비한다. 산소를 더 많이 확보하려고 호흡이 가빠지고, 혈액 속 산소 농도는 급격히 올라간다. 그러나 실제 공황 상황에서는 몸이 크게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산소가 쓰이지 않고 쌓이기만 한다. 산소가 지나치게 많아지면, 오히려 보호 시스템이 작동한다. 특정 부위로 과도한 산소 공급을 막기 위해 혈관이 수축하는데, 이때 뇌로 가는 산소량이 줄어들어 현기증, 질식감, 눈앞이 캄캄해지는 증상이 나타난다. 또 산소를 실어 나르는 헤모글로빈의 결합력이 지나치게 커져 필요한 세포에 산소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다. 그래서 몸 전체는 산소가 많아도, 정작 세포는 산소 부족 상태에 빠지게 된다. 그 결과 손발이 저리거나 차가워지는 말초 증상이 나타난다.
혈액 공급의 우선순위도 바뀐다. 생존과 직접적 관련이 없는 소화 기능이나 생식 기능은 혈류 공급이 줄어들고, 대신 투쟁과 도피에 필요한 큰 근육과 호흡 근육으로 혈액이 집중된다. 큰 근육에 혈액이 몰리면 몸은 단단해지고 긴장하지만, 동시에 쉽게 피로해지고 통증과 불쾌감을 유발한다. 호흡 근육은 과도하게 움직이면서 오히려 숨이 막히는 듯한 답답함을 더 키운다. 결국 공황 발작에서 경험하는 숨 가쁨, 현기증, 근육 긴장, 소화 불량, 말초 냉증 같은 불편한 증상들은 모두 교감 신경이 폭주할 때 나타나는 일종의 “생존 시스템의 부작용”인 셈이다.
여기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세로토닌이다. 세로토닌은 기분, 수면, 식욕, 불안 조절에 관여하는 신경전달물질로, 교감과 부교감 신경의 균형을 간접적으로 조율한다. 세로토닌이 충분하면 교감 신경의 반응이 과하지 않게 억제되고, 부교감 신경이 제 역할을 하며 몸을 회복시킨다. 반대로 세로토닌이 부족하면 교감 신경의 브레이크가 풀려버린 듯 불안, 불면, 긴장이 쉽게 고조된다. 내가 복용했던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는 이 세로토닌의 농도를 높여주는 약이었다. 시냅스에서 재흡수되는 세로토닌을 막아 신호가 오래 머물게 함으로써, 불필요한 과흥분을 완화하고, 부교감 신경이 다시 작동할 여지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단순히 ‘호르몬 때문일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안도시킨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공포가 곧 나의 결함이 아니라, 뇌의 화학적 균형이 만들어낸 결과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비로소 그 공포와 조금은 친해질 수 있었다.
결국 ‘힘을 뺀다’는 것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뇌과학적으로도 실재하는 과정이다. 교감 신경이 과도하게 치달을 때, 우리는 몸과 마음의 모든 에너지를 불필요하게 긴장에 쏟아붓는다. 반대로 부교감 신경이 개입할 여유를 주면, 몸은 비로소 회복과 안정을 되찾는다. 나는 답답할 때 폐소공포증처럼 신체 일부가 불편해지곤 했는데, 이제는 그게 단순히 내 모세혈관들이 힘들어하면서 “산소가 필요하다”고 신호를 보내는 것뿐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크게 호흡을 하며 내 몸을 여유롭게 하는 시간을 주면, 웬만한 문제는 자연스럽게 사라진다는 것도 깨달았다. 뇌과학과 신체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고 나니, 예전처럼 그것을 거대한 공포증으로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내 모세혈관들이 산소 달라고 보채고 있구나” 정도로 여겨질 뿐이다.
나는 한때 내 폐소공포증의 원인을 찾으려고 집요하게 노력했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기억이 닿지 않는 영역에 있는 일이었다. 이제는 굳이 과거의 원인을 찾으려 애쓰지 않는다. 중요한 건 원인이 아니라 지금의 나다. 내가 공포를 잘 다루고, 이겨낼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작은 승리의 경험을 하나씩 더 쌓아갈 것이다. 그렇게 공포증을 두려움이 아닌 훈련의 파트너로 삼으며, 조금씩 극복해 나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