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 있던 모든 엄마
“엄마아-”
딸기 한 바구니를 사러 가던 길이었다. 도로 한켠에 차를 세운 뒤 복작거리는 과일 가게로 향하기 전 발길을 멈춘 까닭은 아이의 구슬픈 울음소리 때문이었다.
엄마아, 엄마.
오가는 차가 많아 시끄럽고 위험한 곳에서 아이와 나는 맞닥뜨렸다. 겨우 내 허리춤에 오는 아이의 통통한 뺨이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눈매와 입매를 몽땅 일그러뜨린 채 도로와 인도의 경계턱 사이에 서 있었다. 목청도 좋은 그 애는 나와 다른 사람 하나를 자기 앞에 붙들어놨다.
아이의 옆으로 세 걸음 남짓에서 신호를 받은 차들이 무심히 질주하고 있었다. 일단 아이의 손을 잡아 인도로 끌어 올린 후 눈높이를 맞추었다. 엄마를 잃어버렸느냐는 질문에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갓 초등학교를 입학하거나 아직은 미취학일 듯한 앳된 얼굴이 잔뜩 겁에 질렸다. 그러나 어른 두 명이 자신을 돌봐주는 것에 안심이 되는 모양인지 고함 지르듯 울던 소리를 서서히 낮추었다.
아이의 입안에서 웅얼웅얼 맴돌고 있는 단어의 퍼즐의 맞춰 보니 엄마가 잠시 볼일을 보러 차에서 내린 사이, 아이 또한 엄마를 찾아 도로로 뛰어든 것이었다. 처음의 용감함은 이내 아는 얼굴 한 명 없는 낯선 길과 소음 속에서 꽁무니를 뺏으리라.
이름이 무엇이냐 물으니, 선우라 대답한다.
진이 빠지도록 울고 긴장한 탓에 열이 오른 아이의 머리를 토닥이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여러 상호가 번쩍번쩍 광을 내며 나열해있다. 선우를 다른 어른이 돌보는 사이 나는 그중 가까운 과일 가게로 들어갔다. 고심하는 표정으로 과일을 고르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여기 선우 어머님이 있느냐 큰 소리로 물었다.
“선우.”
그 이름에 마치 불티가 살갗에 튄 듯 화들짝 머리를 쳐든 여자 한 명이 있었다.
때마침 뒤따라온 선우가 자신의 손을 잡은 어른의 손을 놓고 냉큼 엄마에게 뛰어가 안겼다. 그녀는 자신의 품으로 돌진한 작은 돌멩이 같은 아이를 끌어안고 연신 미안하다 달래주었다. 엄마와 재회한 선우는 내가 딸기를 고르는 내내 주변을 활개 치고 다녔다.
언제 무서워했고 또 언제 울었냐는 듯 발랄한 태도를 떠올리던 그날 밤. 베게에 머리를 괸 채 잠들지 못했다. 오래전 내게 벌어졌던 선우와도 같은 일을 회상하며.
‘가위, 바위, 보!’
진 사람은 계단. 이긴 사람은 엘리베이터.
내가 선우만한 나이였을 때의 일이다. 가위바위보에서 이긴 내가 엘리베이터에 올라타자마자 사촌 언니는 재빨리 계단 아래로 달려갔다.
아파트로 이사를 온 사촌 언니와 함께 놀던 중 누가 먼저 1층에 도착하느냐로 내기를 벌인 날이었다. 언니의 옷자락이 사라진 찰나 엘리베이터 문도 닫혔다. 그래도 계단보다는 엘리베이터가 빠를거라 자신만만하던 것도 잠시, 나는 곧 엉뚱한 층에 내린 채 얼빠진 눈으로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복도식 아파트 너머로 구름 한 점 없이 새파란 하늘이 보였다. 마치 깊이를 모를 바다 한가운데 같던 하늘을 아찔한 마음으로 바라보던 나는 아는 얼굴 한 명 없는 낯선 곳에 멈추어 서서 씩씩 숨을 골랐다. 바지춤을 붙잡은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손아귀는 온통 땀투성이였다. 몸 안에선 열이 솟구치는데 머리 위로 차가운 물벼락을 맞은 듯 온몸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뻣뻣하게 굳은 몸 중 유일하게 일그러진 입술 밖으로 울음이 새어나갔다.
엄마아- 엄마아!
그때였다.
아무도 없는 복도에 줄지어 난 현관문이 하나둘 열리기 시작했다. 모르는 얼굴의 여자들이 한달음에 다가와 내 주변을 둘러쌌다. 그녀들은 능숙하게 나를 달래주고 이름을 물어봐 주고 두서없이 흘러나간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었다. 내 손을 잡거나 혹은 앞이나 뒤를 보초 서듯 따르는 이들과 함께 1층 밖으로 나서자, 나를 잃어버린 죄로 가족들에게 꾸지람을 듣고 있는 사촌 언니의 모습이 보였다. 창백해진 언니의 얼굴이 나를 발견한 순간 혈색을 되찾았다. 저쪽 어른과 이쪽 어른들이 마주 모여 간단한 대화를 나누는 사이, 나는 왠지 뾰로통한 기색의 사촌 언니 눈치를 살피면서도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는 안도감에 근심 없이 웃었다.
“엄마!” 하고 우는 아이 소리에 아파트의 모든 엄마가 총출동했던 그날은 그 뒤 오랜 시간 동안 어른에 실망하고 분노하고 체념하면서도 그들에 대한 마음이 영 차가워지지 못하게 만들어준 기억의 한 조각이다.
내 안에 무수한 어른이란 조각 중 모서리가 가장 둥근 그 기억이, 살아가며 만나온 우는 아이들에게 기꺼이 다가섰던 동력이다.
무사히 엄마를 찾은 선우도 언젠가 어른이 되면 생각지 못한 곳에서 우는 아이와 마주칠 날이 있을지 모른다. 그럼 다가가 이름을 물어보고 괜찮다며 다독이고 오랫동안 마음 한켠에서 빛바래어 본 적 없던 호의를 사탕 한 알처럼 건네주는 것이다. 둥글고 달콤한 마음으로 아이를 달래다 이내 발랄해진 아이의 얼굴에서 과거 어느 날의 자신을 비추어보겠지. 그리고는 집으로 돌아간 한참 뒤까지 어른들에 의해 지켜져 왔던 순간을 복기하다 그간 잊고 있던 온기 한 자락을 이불 삼아 잠들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