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가물어 걱정이라 했다. 하루빨리 제대로 된 비가 내려야 올해 농사가 편하다는 노인들의 근심에 응답하듯, 온종일 비가 내린 어느 봄날의 일이다.
시골로 들어서는 초입부터 마을 어느 길에나 피어있던 벚꽃이 하루 사이 시들어 떨어져 있었다. 작년보다 조금 일찍 만개하더니 떨어지는 때도 저번보다 이르다. 아쉬움이 가시질 않던 그날 오후, 나는 매일 우리 식당을 찾는 한 노인의 눈이 퉁퉁 부어 있는 걸 발견했다.
평소 괄괄한 성격으로 내가 아주 어릴 적부터 수십 년이 흐른 지금까지 노인들 대장 노릇을 하던 할머니였다. 전날과 다르게 풀이 죽은 게 감기라도 걸렸나 싶었는데 그녀의 증손주인 소희가 전날 이사를 나간 참이라 했다. 소희는 캄보디아에서 온 손주며느리가 낳은 그 집안의 유일한 아기였다. 아기 아빠는 남부 끝자락에 가까운 여기서 족히 몇백 킬로미터는 떨어진 타지에서 가족의 생계를 위해 고군분투 중이었다. 타국에서 온 아내는 결혼 이후 처음으로 남편과 살림을 합치기 위해 자신의 첫아기를 꼭 끌어안고 또다시 멀고 낯선 타지로 떠났다. 아기가 떠난 텅 빈 방이 서글퍼 노인은 울었다 했다.
"아기가 보고 싶지.“
자글자글한 눈가를 휘어뜨린 그녀가 핸드폰 속 사진을 연신 손으로 쓸어내렸다. 두껍고 갈라진 손끝 아래 고깔모자를 쓴 아기가 뚱한 표정으로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었다. 소희와 길가에서 한 번 마주친 적이 있는 나도 그 애가 떠난 소식에 아쉬운데, 소희가 태어난 이후 매일 집에서 함께 지내왔던 노인의 마음이야 오죽할까.
아기가 귀한 마을에서 소희는 노인들 사이 최대 관심사였다. 집집마다 수십 년째 같은 얼굴을 보고 사는 시골 마을에서 그 애는 노인 둘 이상이 모인 곳에서라면 매번 입에 오르내렸다. 아기가 많이 울고 약해 집 안을 떠나는 일이 드물어 노인들 중 누구도 소희의 얼굴을 오래 들여다보거나 얼싸안아 본 일은 없지만, 그래도 그들은 가물었던 날 끝에 단비를 대하듯 아기 웃음소리가 없는 마을에서 태어난 유일한 아기인 소희를 좋아했다.
증손주를 떠나보낸 노인의 서운한 얼굴을 떠올리며 마을 한 바퀴를 산책 삼아 걸을 때였다. 나는 매번 무심코 지나쳤던 건물 앞에 잠시 멈춰 섰다. 굳게 잠긴 철문 너머로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방치된 건물과 수풀이 무성하게 자란 들판. 기둥의 한 축이 무너진 축구 골대가 작년 즈음 철거되어 마을에 처음 온 외지인은 그곳이 어떤 곳이었다는 걸 단번에 알아차리긴 어렵겠지만, 철문 오른편에 들판을 바라보는 방향으로 올곧은 위인 동상을 발견한다면 과거 이곳이 어린아이들을 가르쳤던 학교였음을 어렴풋이라도 짐작해 보리라.
90년대 초반 폐교된 학교는 그래도 나 어릴 적까지는 마을 여기저기 흩어져있던 아이들에게 기꺼이 놀이터가 되어주던 공간이었다. 실컷 놀다 다음날 전날과 비슷한 시간대에 거기 모여서 숨바꼭질이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공놀이, 고무줄 놀이 등을 하며, 그래도 그때까진 어린애들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던 곳이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그때 그 아이들은 자신이 종종 아이였다는 걸 잊어버리고 마는 어른이 되었다. 아이들이 떠난 운동장은 이름도 모를 풀과 꽃이 제멋대로 자랐다 시들고 다시 자라나는 야생 정원이 되어갔다. 곤충이나 작은 소동물에겐 평화로운 공간일지라도 그곳을 지나다니는 마을 사람들에겐 비슷한 수심을 불러일으켰다.
수십 년 더 먼저 찾아왔던 시골 마을 학교의 폐교가 이젠 수도권 한복판에서도 똑같이 벌어지고 있다. 사람이 많이 살거나 적게 사는 지역에 상관없이 어느 곳에서건 아이들의 부재를 실감하는 순간이 잦다. 텅 빈 교정을 화면에 비추며 걱정 어린 목소리로 미래를 논하는 뉴스와 쏟아지는 저출생 대비 정책에도 사람들의 마음이 동하지 않는 까닭은 외쳐대는 목소리마다 온기가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가 있어도 없는 듯이 굴면서 아이를 내놓으라 닦달하는 모습이 모순적이다. 기껏 기른 아이마저 울리고 죽이고 방관하는 사회에서 아이들을 그저 쪽수나 채워 줄 도구 보듯 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한 존재를 귀하게 여기는 마음 없이 그저 거기 있으라 요구하는 목소리는 그 공허의 넓이만큼 무섭다.
"어이 보자. 네가 누 집 애냐?"
"저기 식당 집 손주요."
"어야. 네가 걔구나. 잘 살지?"
"네, 조심히 가세요.“
잡동사니로 가득 찬 유아차를 보행보조기처럼 끌며 걷는 노인은 늘 살가운 얼굴을 하고 있다. 서른이 훌쩍 넘은 이를 기꺼이 ‘애’라 부르며 넋두리하듯 몇 마디 더 내뱉고는 환한 안색으로 갈 길을 갔다. 서로 엇갈리는 길에, 나는 전에 봤을 때보다 걸음이 느려지고 키가 작아진 뒷모습을 눈으로 따른다.
아이가 귀한 마을에 흔한 건 매일 중력과 씨름하는 노인들이었다. 언젠가 아이들과 다른 방식으로 마을을 떠나갈 이들의 모습에서 나는 내가 나이 들어가고 있음을 깨닫는다.
소희와 처음으로 마주쳤던 때의 나도 마치 유아차를 끌며 걷는 노인처럼 그 어린애가 반가워 성큼 다가갔었다. 손수건 그늘 속에 얌전하던 자그만 얼굴. 소희를 끌어안은 채 살며시 손수건을 들추어 아이의 얼굴을 보여주던 여자의 눈이 수줍게 휘어졌었다. 연둣빛 새순과 만개한 꽃이 있는 곳에서 꼭 그것들처럼 살랑이던 두 얼굴과 몸이 가장 봄다운 날을 되돌아볼 때 꺼내어 볼 풍경 중 하나다.
가물었던 날 끝에 내린 단비 덕에 무럭무럭 자라는 땅의 모든 존재처럼. 간혹 비에 젖은 꽃이 힘없이 떨어진대도 빈 나뭇가지에 무성히 움터 오르는 싱그러운 잎사귀처럼. 나는 그 애가 잘 자라길 바란다. 그저 여기 존재함으로 존재의 소중함을 일깨웠던 작은 몸에게 세상은 마냥 따스했으면 좋겠다. 울고 슬프고 무서운 일이 적었으면 좋겠다. 한가로이 안겨 손수건 속에서 봄볕을 피하던 모습 그대로, 근심 없는 얼굴과 조금 더 커진 몸을 하고선 언제고 자신을 귀애한 이들이 있던 고향 마을에 놀러 와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