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 사람을 사랑하나, 사랑하는 나를 사랑하나

8장.

by 경영 컨설턴트 Tim

사랑 안에서 사람은 때때로 아주 낯선 질문 앞에 서게 된다. 나는 지금 정말 이 사람을 사랑하고 있는가. 아니면 이 사람을 사랑하는 나 자신의 모습에 더 깊이 매혹되어 있는가. 이 질문은 차갑고 냉소적인 의심처럼 들릴 수도 있다. 마치 사랑의 진심을 훼손하고, 마음의 온도를 지나치게 분석하는 일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이 질문이 사랑을 무너뜨리는 질문이 아니라, 사랑을 더 진실하게 바라보게 만드는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사랑은 생각보다 쉽게 자기 자신을 향해 되돌아오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아끼고, 이해하려 애쓰고, 끝내 다정하고 싶어 하는 마음은 분명 타인을 향해 시작될 수 있다. 그러나 그 마음이 오래 지속될수록, 사람은 그 안에서 자기 자신의 어떤 모습을 함께 보게 된다. 나는 쉽게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나는 끝까지 마음을 놓지 않는 사람이라고, 나는 누군가를 깊이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믿고 싶어진다. 그리고 때로는 바로 그 믿음이 관계를 붙들게 하는 더 큰 이유가 되기도 한다.


이 질문이 어려운 이유는 두 마음이 너무 자주 섞여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랑하는 마음과, 사랑하는 자신을 좋아하는 마음은 완전히 분리되어 있지 않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대하는 동안 스스로를 더 괜찮은 사람처럼 느끼는 일은 자연스럽다. 사랑은 사람 안의 다정함과 인내심, 책임감과 같은 얼굴을 끌어올리기도 하니까. 그래서 사랑하는 나 자신이 낯설게 좋게 느껴지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문제는 어느 순간부터 상대보다 내가 더 또렷해질 때다. 사랑의 중심에 있어야 할 사람이 아니라, 사랑하고 있는 내 마음과 내 태도와 내 진심이 더 선명해질 때, 질문은 비로소 진짜 무게를 갖기 시작한다.


나는 이 사람을 사랑하나, 사랑하는 나를 사랑하나. 이 질문은 결국 “지금 관계의 중심에는 누가 있는가”를 묻는 말과 다르지 않다. 내가 정말 이 사람의 실제 모습을 만나고 있는가, 아니면 이 관계를 통해 내가 어떤 사람인지 확인하고 싶은가. 내가 붙들고 있는 것은 이 사람의 삶과 마음인가, 아니면 이 사람을 향해 애쓰는 나 자신의 서사인가. 겉으로 보기에는 비슷해 보여도, 이 둘은 관계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끈다.


상대를 사랑할 때 사람은 그 사람의 실제 앞에 오래 머물게 된다. 내 기대와 다른 모습도 보게 되고, 불편한 면도 견디게 되고, 나의 해석으로는 다 담기지 않는 낯선 부분도 받아들이게 된다. 사랑은 그 사람을 이해 가능한 존재로만 두지 않고, 내 서사 바깥의 한 사람으로 대하게 만든다. 그래서 상대를 사랑한다는 것은, 결국 그 사람이 내 기대를 얼마나 채워주느냐보다 그 사람 자체를 얼마나 보게 되느냐의 문제에 더 가깝다.


반대로 사랑하는 나 자신을 사랑할 때, 관계는 조금 다른 모양을 띤다. 나는 여전히 진심일 수 있다. 여전히 상처받을 수도 있고, 여전히 애쓸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모든 마음의 중심에서 내가 가장 놓치고 싶지 않은 것은 상대가 아니라 나 자신일 수 있다. 이런 사랑을 하는 사람인 나, 쉽게 마음을 접지 않는 나, 끝까지 상대를 품으려는 나, 상처를 견디면서도 다정함을 잃지 않으려는 나. 그때 상대는 독립적인 한 사람이기보다, 그런 나를 가능하게 하는 장면이 된다. 관계는 만남이라기보다 자기 확인의 자리가 된다.


이 차이는 대개 아주 사소한 장면에서 드러난다. 상대가 내 기대와 다른 방식으로 반응할 때, 나는 그 사람의 현실을 먼저 보려 하는가, 아니면 내가 얼마나 서운한지를 먼저 붙드는가. 상대가 거리를 두고 싶어 할 때, 나는 그 거리의 이유를 이해하려 하는가, 아니면 내가 밀려난 듯한 감각에만 매달리는가. 내가 힘든 순간, 관계는 둘 사이의 현실로 남아 있는가, 아니면 온통 내 마음의 상태를 확인하는 공간으로 변해버리는가. 사랑은 거대한 선언보다 이런 순간들 속에서 더 정확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어쩌면 사람은 이 질문을 통해 자신의 사랑이 거짓인지 참인지를 판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사랑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우리는 늘 어느 정도는 자기 자신도 함께 사랑한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동안 내가 더 나아진 듯 느끼고, 조금 더 깊어진 듯 느끼고, 내가 믿고 싶은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은 감각을 경험한다. 그것은 인간적인 일이다. 완전히 비워진 사랑, 전혀 자기 자신을 의식하지 않는 사랑 같은 것은 현실에 존재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그런 섞임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일이다. 그래야만 우리는 사랑의 방향이 조금씩 나에게로만 굽고 있을 때 그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


나는 오히려 이 질문을 자주 품을 수 있는 사람이 더 성숙하게 사랑할 수 있다고 믿는다. 나는 지금 이 사람을 정말 만나고 있는가. 아니면 이 관계 속에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가. 내 진심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이런 물음은 사랑을 불신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기 환상을 조금씩 걷어내게 만든다. 사랑은 진심만으로 충분하지 않을 때가 있다. 진심은 있을 수 있지만, 그 진심이 나 자신에게만 맴돌고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더 큰 감정이 아니라 더 정직한 시선일지 모른다.


이 질문 앞에서 사람은 조금 겸손해진다. 내가 느끼는 사랑이 언제나 순수하다고 단정하지 않게 되고, 내 다정함이 언제나 상대를 위한 것이라고 믿지 않게 되고, 내 희생이 언제나 관계를 위한 것이라고 쉽게 미화하지 않게 된다. 그리고 바로 그 겸손함이 사랑을 다시 상대에게로 데려간다. 사랑은 내가 얼마나 진심인지 보여주는 감정이 아니라, 내 진심이 정말 누구를 향하고 있는지 끊임없이 물어야 하는 관계라는 사실을 알게 한다.


결국 이 질문은 사랑을 부정하기 위한 질문이 아니다. 오히려 사랑이 자기 도취로 굳어지지 않게 하기 위한 질문이다. 내가 사랑을 통해 나 자신을 아름답게 느끼는 순간이 있더라도, 그 감정에만 머물지 않도록 붙들어주는 질문이다. 내가 정말 만나야 할 것은 사랑하는 나 자신이 아니라, 내 바깥에 있는 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게 하는 질문이다.


그러니 나는 이 질문을 쉽게 끝내고 싶지 않다. 나는 이 사람을 사랑하나, 사랑하는 나를 사랑하나. 아마 이 질문에 완전히 깨끗한 답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사랑이 더 사랑답기 위해서는 늘 이 질문을 통과해야 한다는 점이다. 내 마음이 어디를 중심에 두고 있는지, 내 다정함이 누구를 향해 있는지, 내가 붙들고 있는 것이 관계인지 서사인지 자꾸만 살펴보아야 한다는 점이다.


어쩌면 사랑은 결국 이런 질문을 견디는 힘인지도 모른다. 나의 진심을 바로 믿어버리지 않고, 그 진심의 방향을 다시 묻는 일. 사랑하는 나 자신의 모습에 머물지 않고, 끝내 한 사람의 실제 앞에 서려는 일. 나는 사랑이 그런 정직함을 잃지 않을 때 비로소 조금 더 깊어질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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