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장.
다정함은 원래 따뜻한 말이다. 누군가를 함부로 대하지 않으려는 마음, 내 감정만 앞세우지 않고 상대의 자리를 함께 생각해보려는 태도, 삶이 거칠어질수록 더 놓치고 싶지 않은 인간적인 결. 다정함은 사랑을 설명할 때 가장 자주 떠올리는 얼굴 중 하나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다정하고 싶다는 마음은 자연스럽고, 어쩌면 사랑의 가장 기본적인 표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나 역시 오래도록 다정함을 사랑의 중요한 형태라고 생각해왔다. 힘든 순간에도 너무 차갑게 굳어버리지 않는 사람, 상대를 쉽게 상처 입히지 않으려는 사람, 자기 사정이 어렵더라도 인간적인 마음까지 닫아버리지는 않는 사람으로 남고 싶었다. 그런 바람은 나를 지탱해주는 기준이 되기도 했다. 삶이 흔들려도 적어도 어떤 마음만큼은 잃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정함은 어느 순간부터 아주 다른 얼굴을 갖기도 한다. 처음에는 자발적인 태도였던 것이, 점점 스스로에게 들이대는 기준이 된다. 나는 이럴 때도 다정해야 한다고, 힘들다고 해서 거칠어지면 안 된다고, 상처받았더라도 함부로 닫히면 안 된다고, 언제나 상대를 먼저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믿게 된다. 그때 다정함은 더 이상 살아 있는 마음이 아니라, 무너지는 자신을 향해 계속 요구를 멈추지 않는 문장이 된다.
다정함이 태도에서 의무로 바뀌는 순간은 생각보다 조용하다. 그것은 대개 누군가를 더 잘 사랑하고 싶다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나는 쉽게 차가워지고 싶지 않고, 내 감정 때문에 관계를 망치고 싶지 않고, 힘든 날의 나 때문에 상대가 상처받지 않았으면 한다. 이 마음은 진실할 수 있다. 문제는 그 진실이 점점 자기검열과 결합하기 시작할 때다. 나는 피곤해도 괜찮아야 하고, 서운해도 부드럽게 말해야 하고, 무너져도 품위 있게 무너져야 하며, 상처받아도 상대를 먼저 이해할 수 있어야 하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믿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다정함은 더 이상 관계를 살리는 힘이 아니라, 나 자신을 조용히 몰아붙이는 규율이 된다. 나는 지금 지쳐 있는데도, 지친 티를 내면 안 될 것 같고. 나는 지금 마음이 거칠어졌는데도, 그런 모습을 보이면 사랑이 부족한 사람처럼 느껴지고. 나는 사실 잠시 나 자신만 돌보고 싶은데, 그러면 너무 이기적인 사람처럼 보일 것 같다. 그 순간 다정함은 상대를 향한 태도이기보다, 내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를 감시하는 시선이 된다. 사랑은 더 이상 자연스러운 흐름이 아니라, 끊임없이 스스로를 관리해야 하는 과제가 되어버린다.
나는 이 변화가 위험한 이유가, 겉으로 보기에는 너무 아름답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끝까지 다정하고 싶은 마음, 힘들어도 사랑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태도, 자기 감정보다 관계를 먼저 생각하려는 노력은 모두 좋은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도 어느 정도는 귀한 마음이다. 그래서 사람은 그것이 언제 자신을 해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쉽게 알아차리지 못한다. 스스로를 지치게 하고 있으면서도, 그저 더 성숙한 사랑을 배우고 있는 것이라고 착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랑이 나를 더 인간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나 자신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든다면 그때는 무엇인가 다시 살펴보아야 한다.
다정함이 의무가 되면, 사람은 점점 자기 마음의 진실과 멀어진다. 사실은 서운한데 괜찮은 척하게 되고, 사실은 거리를 두고 싶은데 끝까지 부드럽게 있으려 하고, 사실은 지금 상대를 이해할 힘이 없는데도 이해하는 사람처럼 행동하려 한다. 그 과정에서 관계는 겉으로는 평온해 보일지 몰라도, 안쪽에서는 진실이 조금씩 지워진다. 다정함은 남아 있는데 생기가 없고, 배려는 있는데 자발성이 없고, 관계는 이어지는데 내 마음은 점점 소진된다. 결국 그런 다정함은 상대를 위한 것도, 나를 위한 것도 되지 못한다.
어쩌면 다정함이 태도로 남기 위해서는, 그것이 언제나 가능하지는 않다는 사실부터 인정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사람은 늘 다정할 수 없다. 늘 여유롭지도 않고, 늘 부드럽지도 않고, 늘 상대를 먼저 헤아릴 만큼 단단하지도 않다. 어떤 날은 내 마음 하나 감당하기도 어렵고, 어떤 날은 설명할 수 없이 예민하고, 어떤 날은 세상에 마음을 닫고 싶어진다. 그런 순간이 있다는 사실은 사랑의 실패가 아니라 인간의 조건에 가깝다. 중요한 것은 그런 순간이 오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을 어떻게 대하느냐다.
나는 성숙한 사랑이란 끝까지 다정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다정할 수 없는 날의 자신까지 정직하게 아는 일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지금 나는 너무 지쳐 있어서 부드럽게 말할 힘이 없구나. 지금 나는 상대를 이해하기보다 나를 지키고 싶은 마음이 더 크구나. 지금 나는 잠시 멈춰야 하는 상태구나. 이런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다정함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다정함을 거짓으로 만들지 않는 방식일 수 있다. 자기 상태를 모른 척한 채 계속 좋은 사람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보다, 지금의 한계를 알고 관계를 더 조심스럽게 대하는 편이 오히려 더 진실한 사랑일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다정함과 의무를 구분하는 기준이, 아마 자유로움과 진실성에 있다고 느낀다. 다정함이 태도일 때 사람은 그 마음 안에서 여전히 살아 있다. 상대를 향한 마음이 자발적으로 흐르고, 나 자신의 상태도 함께 느껴진다. 하지만 다정함이 의무가 되면 사람은 점점 굳어진다. 상대를 배려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자기 자신을 억누르고 있고, 관계를 지키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무너지는 자신을 계속 밀어붙이고 있다. 겉모습은 비슷해 보여도, 안쪽의 움직임은 전혀 다르다.
사랑은 사람을 더 넓게 만들 수 있지만, 더 무겁게 만들기만 해서는 안 된다. 사랑 때문에 내 감정을 전부 부정해야 하고, 사랑 때문에 내 한계를 끝없이 무시해야 하고, 사랑 때문에 언제나 더 나은 사람처럼 행동해야 한다면, 그 사랑은 점점 삶을 살리는 힘보다 버텨야 하는 윤리처럼 변해간다. 나는 사랑이 그런 방식으로 사람을 고단하게 만드는 것을 경계하고 싶다. 사랑은 나를 더 좋은 사람처럼 보이게 만드는 도덕적 장식이 아니라, 나와 타인을 함께 살게 하는 관계여야 하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진짜 다정함은 완벽함보다 정직함에 더 가깝다. 내가 지금 줄 수 있는 마음의 크기를 아는 것, 내 한계를 인정하는 것, 무리해서 좋은 얼굴만 남기지 않는 것, 그리고 그럼에도 관계를 함부로 파괴하지 않으려는 것. 다정함은 언제나 부드럽고 원만한 상태가 아니다. 때로는 “지금은 내가 너무 지쳐 있다”고 말하는 용기일 수도 있고, 잠시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태도일 수도 있다. 그런 정직함이 있을 때 다정함은 비로소 관계를 위한 진짜 힘이 된다.
나는 다정함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이제는 그 다정함이 나를 몰아세우는 의무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힘든 날에도 인간적인 마음을 잃지 않고 싶지만, 그렇다고 해서 언제나 무너지지 않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믿고 싶지는 않다. 사랑은 내가 얼마나 끝까지 다정할 수 있는지를 증명하는 자리가 아니라, 나와 타인의 연약함을 함께 견디는 자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다정함이 태도에서 의무로 바뀌는 순간, 사랑은 생기를 잃는다. 반대로 다정함이 다시 살아 있는 태도로 돌아오는 순간, 사랑은 조금 더 숨을 쉰다. 나는 아마 그 차이를 오래 배우게 될 것 같다. 언제 다정함이 나를 살리고 있는지, 언제 다정함이라는 이름으로 나를 지우고 있는지. 그리고 사랑이란 결국 그 둘을 구분해가며, 더 진실한 쪽으로 조금씩 걸어가는 일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