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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창을 바꾸다

그림책 레터 <머리는 이렇게 부스스해도>

by 여울빛


"새로운 계획을 세웠어.

지금까지의 계획은 전부 실패했지만,

무엇과도 비할 수 없는 멋진 추억이 있어.

함께였던 그 사람은 이제 없지만"


살다 보면 마음이 너무 아파서 ‘괜찮다’는 말조차 쉽게 나오지 않을 때가 있어요. 그럴 때면 억지로 괜찮다고 말하는 대신 다시 바라보는 연습을 합니다. 지금의 상황을 다른 시선으로 재해석해 마음의 방향을 바꾸는 것. 그것은 어쩌면 실패를 ‘무가치함’이 아니라 ‘배움의 축적’으로 바라보는 것. 상실을 ‘끝’이 아닌 ‘변화의 시작’으로 느끼는 것. 그것이 저 만의 방법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저 무작정 긍정적으로 덮기보다 감정을 억누르지 않으면서 그 감정이 제 자신에게 주는 ‘의미’를 바꿔보려는 노력일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가끔은 자괴감이 들면서 “왜 나는 아직도 이러지?”, “왜 이렇게 약하지?” 몰아붙이기도 해요. 하지만 시간이 조금 흐르면 한 발짝 뒤로 서서 객관적으로 저를 바라보게 됩니다.


그때 자기 연민(self-compassion)이라는 렌즈를 꺼내봅니다. 이런 생각을 해도 괜찮다고, 그럴 만하다고,지금의 나는 그럴 수밖에 없다고. 그럴 때 조금씩 마음의 공간이 생기면서 불완전한 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도 하고 말이죠.


"가게에 진열되어 있던 귀여운 구두가 생각났어.

세상만사는 어이없는 일 투성이라

될 대로 대라 싶어 졌지만."


저는 평소 이런 피드백을 많이 들었어요. “넌 뭐가 그렇게 늘 너무 좋아?, 넌 사람에 대한 편견이 다른 또래들에 비해 없는 편인 것 같아서 편안하게 느껴져." 등등의 말들...그러다 얼마 전, “선생님은 대화 중에 너무 좋아 를 참 자주 해요. 그 '너무'를 빼는 거 어때요? 너무가 정말 '너~무' 여서 상처받는 일이 생기는 것 같아요.

그런데 그게 참 부럽기도 해요. 난 살면서 '너~무 좋다'를 몇 번이나 했었나 싶네" 저는 제가 ‘너무’라는 표현을 많이 쓰는지 인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도, 일에도, 모든 것에 ‘너무’를 많이 붙이는구나. 그 말은 즉, 진심이기 때문일 거예요.


그림책 내용처럼 세상만사 어이없는 일 투성이고, 그럴 땐 저도 될 대로 대라 싶어질 때도 많지만 그렇기에 그만큼 뒤따라 오는 상처도 아프고 클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곧 다시 일어나 ‘다시 한번 진심을 다 해 살아봐야지’ 라며 먼지를 털어버리곤 합니다. 시간이 오래 걸려도 말이에요. 무엇이 되었든 진심을 다한 삶은 결국, 어딘가에 닿게 되어 있다는 걸 믿으니까요.


"머리는 이렇게 부스스해도

나에게는 꿈이 있어.

언젠가 가수가 될 거라는 멋진 꿈이."


마흔의 중반, 여전히 서툴러 아플 때도 있지만 그 노무 '진심' 덕분에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것이니 그림책 주인공 머리처럼 부스스한 마음 끝에서 다시 반짝이는 꿈을 꿔봅니다. 좋은 이들의 곁에서 말이죠. :)


"슬그머니 그리고 있는 게 있어.

아직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았지만."


저도 다시 슬그머니 그리고 있는 게 있어요. 아직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았지만 말이죠. 지금 제가 다시 그리고 있는 것들을 ‘이미 지나간 것들’과 ‘아직 오지 않은 것들’ 사이에서 아슬아슬 줄타기를 하며 잘 지켜내며 준비한 뒤, 짠! 하고 곧 소식을 전해야겠습니다.앞으로의 의미 있는 날을 설렘으로 기다리며 성큼 다가온 6월! 활짝 두 팔 벌려 환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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