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레터 <첫눈>
저는 쏴~! 시원하게 쏟아지는 비도 좋아하지만
고요히 내려 그친 뒤에나 알게 되는
하얀 눈도 좋아합니다.
지난 주말, 한파 주의보와 함께
새벽부터 눈이 내렸고
내리는 눈을 보며
눈 꽃송이가 봄의 목련처럼 툭툭! 터져
땅에 내려앉아 뒤덮었으면 좋겠다는
상상도 해보았지요.
그래서 오늘 소개해 드릴 책은 < 첫눈 >
글 엘함 아사디 / 그림 실비에 벨로 / 책비
이 책은 고대 페르시아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옛이야기를 바탕으로
봄을 시작하는 첫날이자 새해인
‘노루즈 ’라는 명절과 관련된 사랑 이야기입니다.
크고 길쭉한 판형과 함께
정말 눈이 내리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모노타이프 판화 기법의 아름다운 책이지요 :)
“모든 것에는 처음이 있어요.
처음은 언제나 특별하게 기억되지요.
내게도 잊지 못할 처음이 있어요.
그날은 첫눈이 내렸어요. ”
할머니가 들려주는 옛이야기로 시작되는 첫 구절이
마음에 남습니다.
눈 다운 눈이 내린 지난 토요일,
겨울다운 칼바람이 뺨을 매섭게 스쳤습니다.
저는 눈이 오면 떠오르는 장면이 있어요.
장난으로 시작한 눈싸움이 점점 격해져
어느 순간 있는 힘을 다해 눈덩이를 굴려 던지던
철없던 시절,
커다란 통 창 너머 눈송이가 날리던 날,
미래에 대해 세상 진지하면서도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던 우리.
모든 계절에 대해
모두 각기 다른 이유를 가지고 있기에
기다리는 계절은 사람마다 다를 것입니다.
그렇게 기다림은 곧 설렘이 되는 것.
긴 머리카락이 비단처럼 부드러운 여인 나네 샤르마는
구름보다 더 높은 곳에 살고 있습니다.
그녀는 봄의 따스한 온기를 가지고 내려오는
노루즈라는 남자를 기다리지요.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그렇게 노루즈를 기다리며 청소하다 털어낸 먼지는
눈이 되고,
꽃에 물을 주던 물뿌리개의 물은
비가 되어 세상에 뿌려졌으며
분주히 준비하다 떨어뜨린 진주 목걸이는 우박이 됩니다.
하지만 막상 노루즈가 도착했을 때
그녀는 잠이 들어버렸고
그런 그녀에게 장미꽃을 꽂아두고 노루즈는 떠나지요.
나네 사르마가 잠에서 깼을 때는
이미 낙엽이 지고 있는 가을이 되었고..
하지만 나네 샤르마는
아쉬움과 슬픔을 뒤로한 채
다시 기다리기로 결심합니다.
봄의 남자 노루즈를.....
"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단다.
기다리는 행복만으로도 이미 충분하거든. “
이야기를 마친 할머니의 말씀에는
많은 것들이 들어있습니다.
제가 겨울을 기다리는 건
눈에 대한 환상 때문이기도 하지만
봄이 곧 올 것이라는 기대감과
또 한 해를 잘 살아냈다는 안도감 때문.
아마 나네 사르마도
봄의 온기를 지닌 노루즈와의 만남 끝에 있을
설렘과 행복을 기대했던 것 은 아닐까요.
결국 노루즈를 만나지 못한 나네 사르마가
슬픔을 이기고 다시 노루즈를 기다리는
설렘과 행복을 택한 것을 보니
우리 또한 삶의 이야기의 결말을 꿈꾸며
또 다른 삶의 시작을 향해 나갈 수 있을 것 같은
용기가 생깁니다.
다가올 봄을 꿈꾸며 말이지요.
나네 사르마에게 푹 빠져 그림책을 읽고 나니
노루즈와의 만남을 기다리며
오늘을,
이 겨울을,
다가올 봄을
정성껏 준비해야겠다 다짐도 해봅니다.
깊고 온화한 빛을 한껏 내뿜던 가을이
후다닥 지나고 나면
겨울이 오지요.
봄과 여름이 성장의 계절이라면
가을과 겨울은 오랜 기다림의 계절.
그러니 이 기다림의 계절인 겨울을
그저 흘러 보내지 말고
과거와 미래를 잇는 현재라는 찰나를
잘 살아내야겠습니다.
그렇게 살다 보면
기어코
나네 샤르마는 노르주를 만나게 될 것이며,
우리는 기어코
봄이라는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
그래서 오늘은 당신에게 묻습니다.
" 당신을 가슴 설레게 만드는 계절은
어떤 이야기를 가진 계절인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