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밤 작은 자취방 안에서의 일과
늦은 밤 주말 알바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가방을 던지고 화장실로 향했다. 오랜 시간 서 있느라 종아리가 뻐근했지만 빠르게 화장을 지워내고 세수를 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집에 온 지 10분 안에 화장을 지워낼 수 있는 사람이라면 뭐가 돼도 될 사람이랬으니 이런 사소한 행동으로 스스로에게 칭찬스티커를 줘 본다.
그다음에는 설거지. 며칠 치의 도시락통이 쌓여있었다. 오래돼서 상한 소시지 통을 꺼내기도 했다. 적적함을 물리려고 라디오를 켜고, 10분 안에 끝낸다는 마음으로 아무 생각 없이 수세미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설거지를 마쳤다는 별 거 아닌 일로 쉽게 뿌듯해져서 세탁기에 빨래 다 몰아놓고 예약도 걸어놓고, 방 정리도 어쭙잖게 하고, 가계부도 쓰고, 다이어리를 펴서 할 일을 또 정리하기도 했다.
이 정도면 적당히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 같다. 침대에 드러누워 오랜만에 양키캔들에 불을 붙였다. 라디오, 캔들, 그리고 푹신한 이불. 지금만큼은 누구 하나 부럽지 않은 나만의 사치스러운 밤이다.
자취를 하며 부쩍 느낀다. 내가 살아간다는 것은 나 하나를 부단히 길러내야 하는 일임을. 마냥 노는 게 즐겁고 침대와 집을 무엇보다 사랑하는 나를 그나마 사회생활하게 만들려면 끊임없는 둥기둥기와 격려가 필요했다. 내 생활은 탄성력을 지닌 고무줄이었다. 빳빳한 상태로 열심히 살려면 얼마간의 힘이 작용해야 했고, 그 힘이 없어지자마자 원래의 늘어지는 상태로 돌아오기 일쑤였다. 근 몇 주를 흐물흐물한 상태로 지내다가 다시 나를 이리저리 어르고 달래 가며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이 섰다.
제 때 자고 제 때 일어나기, 해야 할 일을 제 때 하기. 별 것 아닌 이 교과서적인 루틴 끝에는 어떤 내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