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ía 17 Vino blanco de viernes

금요일, 화이트와인을 마시며

by 여행하는 루나씨



2025년 7월 18일 금요일



1. 자유로운 마음으로


금요일이라서 아침 댓바람부터 맨살이 많이 보이는 원피스를 입고 나왔다. 아무리 유럽이라 해도 저녁 식사 자리는 크게 상관없다고 느꼈는데 아침 일찍부터 앞섶이 잔뜩 파인 원피스를 입고 나가려니 내 안에 깊숙하게 숨겨져 있던 유교걸이 튀어나와 해가 중천에 떠 있는데 무슨 일이요, 하며 발목을 잡았다. 하지만 버스 타러 나온 정류장에는 루나씨보다 헐벗은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았다. 여름이다, 휴가 기간이다. 내가 원하는 건 뭐든지 남 눈치 보지 않고 입을 수 있다. 마음이 자유로운 해외생활이다.




2. 일희일비가 특기


내일 알리칸테 최고기온이 37도라는데 영화 예고편이 나오는 것처럼 이미 너무 덥다. 파스타를 만들어 먹었을 뿐인데 땀투성이가 되어 도서관으로 피신했다. 스페인어 공부를 하고 다이어리를 쓰고 SNS를 뒤적이며 다른 사람들의 여행 이야기를 본다. 당당하게 세계여행 중이면서 남들 여행하는 게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이 여행은 일탈이 아니구나. 직장이 있을 때 여행은 야무지게 계획해서 최대한 짧은 시간에 많은 경험을 하겠다는 다짐 같은 게 담겨있었던 것 같다. 반면 그저 한국에서 하고 싶은 게 없어서 떠나온 여행은 절반 정도 일상에 가깝다. 아마도 덜 놀아서 그런가 봐. 스페인어 공부를 하고 춤을 배우고 주 3회 운동을 하고, 문득 너무 빡빡하게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먹고 마시는 다른 이들의 여행이 부러워!


어쩌면 지금의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일 텐데, 인간의 마음이라는 게 이렇게나 간사하다. 한달살이가 끝나면 다시 먹고 마시는 여행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크게 기대되지 않는 건 이걸 꼭 지금 해야 한다는 간절함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꽤 상대적인 개념이겠지만, 시간도 무한하고 돈도 무한한 느낌이다. 지금 여기에서 꼭 해야 할 건 없다. 너무나 자유롭게 흘러가는 시공간 안에서 무엇을 붙잡을 것인가, 고민하게 되는 날이다. 뭐, 일희일비가 특기라서 잠시 후에는 샤샤삭 얼굴을 바꾼 후 무턱대고 희망이 넘치는 문장을 쓰고 있겠지.




3. 금요일의 와인바


금요일이니까 와인을 마시기로 했다. 검색해 본 와인바 중 메뉴에 글라스와인 종류가 가장 많은 곳을 선택했다. 영어 메뉴도 있고 영어를 잘하는 직원도 있었다.



인간을 싫어하는 편이다. 인간이 필요하고 인간을 원하지만 호불호가 너무 분명하다. 누군가와 함께 하는 걸 좋아하는 외향형이지만 애써 시간을 내달라고 요청하는 건 싫다. 완벽주의와 강박의 결과인데 바뀌지 않을 예정이고 바꿀 생각이나 의지도 없다. 따라서 금요일 밤, 모두가 가족, 친구, 애인과 함께 와인과 음식을 즐기는 장소에서 혼자 삼체를 읽고 있다. 와인을 세 잔 정도 마셨고, 솔직히 말하자면 굉장히 행복하다.


나이가 들면서 가장 많이 생각하는 건 스스로 인생을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심심하니까, 외로우니까, 또는 이상해 보이니까(?) 누군가와 함께 하는 건 질색이다. ‘아무나’ 옆에 두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배고프면 아무거나 먹어도 되는 사람의 유형이 있는 반면에 (제발 이런 유형의 사람이 되고 싶다. 유연하게, 융통성 있게) 굶어 죽어도 아닌 건 아닌 사람의 유형이 있다. 아닌 건 아닌 사람이 인간은 이래야 한다는 완벽주의와 누구도 방해하고 싶지 않다는 강박을 들고 살면 혼자가 가장 편안한 상태가 된다. 행복은 어디 있을까? 나 혼자, 와인을 마시며, 좋아하는 소설을 읽고 있는 지금, 행복이 아주 조금 더 가까이 있다고 생각한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