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비야에서 또 하나의 도전 – 베스트드라이버 루나!

조수석이 아닌, 운전석으로

by luna Han 윤영

여섯 해가 지나도록, 내 자리는 조수석이었다.

‘낯선 도시에서 운전이라니. 난 스페인 면허도 없잖아.’

나는 늘, 창밖을 바라보는 쪽을 택했다.


핸들은 남편의 손에 있었고,

나는 그저 도착하는 곳까지, 옆자리에 앉아

나를 맡긴 채 조용히 따라갔다.


스페인 면허로 바꾸는 일은 늘 ‘또 하나의 기다림’이었다.

기다림이 일상인 이 나라에서, 그것까지 기다리고 싶지 않아

애초에 시작하지 않았다.


사실, 스페인에서 한국 면허증을 스페인 면허증으로 교환하려면,

양국 간의 운전면허 상호 인정 협약에 따라 별도의 시험 없이 교환 가능하다.

다만, 절차가 꽤 까다롭고 서류 준비도 번거롭다.

나는 늘 마음만 먹고 미뤄왔다.



조수석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두려움도 조금씩 자리를 잡았다.

낯선 신호 체계, 좁은 골목, 빽빽한 주차 공간들.

운전은 점점 더 나와 먼 일이 되어갔다.


게다가 이곳의 도로는 한국보다 훨씬 거칠다.

블랙박스는 대부분의 차에 없다.

도난 위험 때문이라는 말도 있고,

타인의 얼굴을 함부로 찍지 않는 문화도 작용한다.


“잠깐 밥 먹고 왔는데, 창문이 깨졌어.”

바르셀로나에서 렌터카를 이용한 한국 지인의 말이다.

우리 차도 한밤 사이 길가에 세워둔 사이

문이 뜯긴 흔적이 남았다.

도난은 면했지만, 뒷문은 지금도 자동으로 열리지 않는다.


이곳에서 ‘차를 가진다’는 건,

단지 이동 수단을 갖는 게 아니라

매일의 불안을 함께 감당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처음 세비야에 도착했을 때,

남편 친구의 차를 타고 마트를 들른 일이 있었다.

나는 습관처럼 뒷좌석에 배낭을 두고 내렸다.

어차피 문은 잠글 테니까.


그 순간, 남편과 친구가 동시에 소리쳤다.

“배낭! 트렁크에 넣어야 해!”


그때는 과민한 반응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이곳에선 작은 소지품 하나도,

누군가의 ‘관심’이 되는 순간, 사라질 수 있다는 걸.



차량 안엔 인테리어 장식 하나 없다.

센트로엔 일반 차량 진입이 제한되고,

일방통행 골목엔 종종 오도가도 못하는 차가 갇혀 있다.


사이드미러를 접고 전진하든, 긁힘을 감수하든,

어쨌든 나아가야 한다.

도로 위 흰 선은 무료 주차, 파란 선은 유료 주차.

범퍼는 말 그대로 보호용일 뿐이다.


한국에서는 작은 스크래치에도 마음이 먼저 찢어졌는데,

이곳에선 긁힘도, 찌그러짐도

그저 하루의 흔적일 뿐이다.



여섯 해 동안 나는 조수석에서 세비야를 익혔다.

도시의 구조도, 운전자의 눈빛도,

주차의 타이밍도, 도로의 리듬도.

운전대만 잡지 않았을 뿐,

나는 이미 이 도시의 길 위를

오랫동안 눈으로 달리고 있었다.


그러니 이제, 나도 이 길 위에 설 자격이 있다고 믿기로 했다.

다음 주, 면허증을 교체하러 간다.

주차 공간을 찾아 골목을 돌더라도,

좁은 길을 돌아 나가더라도.


나는 더 이상 조수석에만 앉아 있고 싶지 않다.

두려움이 아니라, 내가 길을 선택하고 싶다.



그리고 이 도시에서 내가 정말 좋아하는 건,

사람이 차보다 먼저라는 당연한 원칙이

정말로 지켜진다는 점이다.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에서도, 사람은 멈추지 않는다.

차가 오는지를 살필 필요도 없다.

운전자는 당연히 멈춘다.

그게 이 도시의 질서다.


한국에서 함께 길을 걷던 어느 날,

남편은 차가 오든 말든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를 그냥 건너려 했다.

나는 깜짝 놀라 그를 붙잡았다.

“차 지나가고 나서 건너야지! 위험하잖아.”


그는 되물었다.

“어떻게 차가 사람보다 먼저야?”


나는 뭐라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결국,

“그냥… 한국은 그래.”

그렇게밖에 말할 수 없었다.


그는 끝내 그 습관을 고치지 못했고,

한국을 떠날 때까지도

길 위에서 나한테 자주 혼났다.



몇 년이 지나고,

이제는 나도 어느새 고개를 돌려보지 않고

조용히 길을 건넌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차보다 작아지지 않아도 되는 이 거리에서

나도 모르게, 자신감이 자라는 걸 느낀다.



오늘도 제 글에 머물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마음 덕분에, 계속 쓸 수 있습니다.


연재 중인 시리즈


<<엄마, 이제 내가 엄마할게>> - (월·수·금)

기억을 잃어가는 엄마를 끝까지 기억하려는 딸의 기록입니다.


<<루나의 세비야 >> - (화·토·일)

좌충우돌 이방인의 삶, 사랑, 회복, 그리고 자립의 기록.


<< 진실, 유죄>> - (목)

사라진 진실에 대해, 이제는 말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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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naHan윤영의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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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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