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봄, 멈춰버린 시간 속에 사라진 별

Ep.4.그 첫눈은 아직 내 안에 쌓여 있다.

by luna Han 윤영

“첫눈은 금세 녹아 사라지는 줄 알았다.

그러나 스무 살, 나의 첫눈은 소복이 쌓여

오래도록 내 마음을 덮고,

가장 진실했던 순간으로 아직도 남아 있다.”


그 하얀 빛이 덮어주던 자리에는,

아직도 떨리던 나의 스무 살이 남아 있다.


그 시절, 약속은 지금처럼 휴대폰으로 쉽게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설렘과 기다림이 뒤섞인 채, 마음은 늘 전화기 앞에 다가가 있었다.


그러던 12월의 어느 날, 전화가 울렸다.

나는 그 길로 대학로, 학림다방으로 향했다.


동아리방에서는 서로의 눈을 온전히 마주치기 어려웠다.

시선을 들킬까, 바쁘게 드나드는 발길이 늘 방해했기 때문이다.


학림의 창가 자리에 앉으니

차가운 몸을 데워주는 커피향이 먼저 퍼졌다.

창밖으로는 첫눈이 펑펑 쏟아져,

도시 전체가 하얗게 덮여가고 있었다.

그가 들어서자마자, 안경알은 금세 하얗게 김이 서려 앞이 보이지 않았다.

잠시 안경을 벗었을 때,

나는 처음으로 그의 눈동자를 온전히 바라볼 수 있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그의 눈 속에 내가 들어 있다는 것을.


놀라움에 웃으며, 나는 조심스레 말했다.

“저… 제가 눈동자 안에 들어 있어요.”


그는 내 눈동자에서 자기도 보인다며 웃었고,

내 심장은 두근거렸다.


그 두근거림은 설렘이었고, 동시에 두려움이었다.

그토록 바라던 순간이 왔지만,

막상 마주하니 어디까지 다가가도 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더 머뭇거렸고,

그 머뭇거림에 시간이 더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첫눈처럼, 그 순간은 금세 스쳐 지나갔다.


그날의 눈은 단순한 하루의 풍경이 아니었다.

내 안에 ‘처음’이라는 감정을 소복이 쌓아놓은 날이었다.


그걸 몰랐던 스무 살의 나는 지나갔지만,

그날의 눈은 아직도 내 안에서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내리고 있다.




오늘도 제 글에 머물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마음 덕분에, 계속 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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