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길을 나선 건, 손에 꼽을 정도였다.
세비야에 온 뒤로 6년이 넘도록,
나는 늘 남편과 함께 움직였다.
사실 나도 처음엔 의식하지 못했다.
남편이 나를 어린아이처럼 다룬다는 것.
무언가를 혼자 해보려고 하면,
“말 안 통하는 데서 낭패 보면 어쩌려고 그래”라는 걱정 섞인 말로
자연스럽게 멈추게 만들었다.
그럴 만도 했다.
세비야에 막 도착했을 무렵,
혼자 버스를 타고 나섰다가 돌아오는 길을 잘못 잡아
30분 넘게 걸어 돌아온 적이 있었으니까.
그날 이후로 나는
센트로(구시가지) 안에서만 주로 생활했고,
남편이 늘 데려다주고, 데리러 왔다.
불편함은 없었다.
그저, 익숙했을 뿐이다.
그러다 2년 전, 시내의 번잡함을 피해 외곽으로 이사했다.
차로는 20분 거리. 행정구역상 여전히 세비야지만,
버스는 한 시간에 한 대.
정류장이 아닌 버스터미널에서만 탈 수 있다.
어릴 적 엄마 손잡고 갔던 시골의 기억처럼 느슨한 시간대,
당연히 우버도, 일반 택시도 없다.
월요일. 식당은 휴무고, 남편은 오전 일 때문에 시내로 나갔다.
나는 잠깐 동행했다가,
두 시간쯤 후 혼자 집에 돌아가야 했다.
택시를 탈까, 고민하던 찰나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 6년 넘게 산 여자야.
이젠 혼자서도 버스쯤은 타고 다닐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 결심 하나로,
휴대폰을 꺼내 버스를 검색했다.
30분 후, Plaza de Armas 터미널에서
집 방향으로 향하는 버스가 있다는 안내.
‘좋아. 오늘은 내가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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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비야 외곽에서 시내 이동할 때 TIP
(실제 경험자가 추천하는 실용 정보)
• 광역버스(Consorcio)
: Plaza de Armas 터미널에서 출발, 보통 1시간에 1대
• 요금
: 구간별 약 1~3유로, 교통카드 사용 시 환승 할인 가능
• 주의사항
: 외곽 지역엔 택시·우버 거의 없음 하차 후 도보 시간 확인 필수
• 앱 추천
: AppTUSSAM 또는 Consorcio 앱으로 실시간 버스 정보 확인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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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미널에 도착해 두리번거리다
다행히 Information 창구를 찾았다.
“4번 라인에서 12시에 버스 있어요.”
알아듣기 쉬운 속도와 단어.
그게 참 고맙게 느껴졌다.
10분쯤 기다리자 버스가 도착했고,
운임은 1유로 80센트.
처음 타보는 광역버스,
설명도 안내도 없었지만, 나는 버스에 올랐다.
출발하면서도 긴장은 가시지 않았다.
창밖으로 익숙한 거리 풍경이 하나둘 지나갈 때
그제야 조금 안도할 수 있었다.
지도를 계속 확인하며, 어디쯤 내려야 할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50분 만에 동네 이정표가 보였다.
구글맵이 알려준 정류장에서 내렸는데,
익숙한 길이 아니다.
다시 집 주소를 입력해보니,
도보 50분.
햇볕은 강하고,
그늘 하나 없는 길.
세비야 외곽에는 택시도, 우버도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걷는 것뿐이었다.
선택지가 없다는 건 간단하다.
나는 걷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구글맵을 계속 들여다보았다.
처음 방향을 잡을 때,
계속 ‘경로를 이탈했습니다’라는 알림이 떴다.
한 자리를 맴돌다,
제대로 방향을 잡았을 때
약간의 희열 같은 게 느껴졌다.
이제 절반은 도착한 것 같은 기분.
손에서 휴대폰을 놓지 못하고
땀을 닦으며 걷던 그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인생도 이랬으면 좋겠다.
이 길인지 저 길인지 헤매다
잘못 들었다면,
누군가 구글맵처럼
“경로를 이탈했습니다”라고 알려주고,
바로 다시 돌아설 수 있다면.
하지만 인생에는
그런 알림이 없다.
잘못 들어선 줄도 모른 채
끝까지 가봐야 알게 된다.
그리고,
“되돌아가는 발걸음엔, 시간이 길게 덧칠된다.”
이제는 더 신중해야 하는 시간이다.
갈림길 앞에 멈춰서더라도
섣불리 나아가선 안 된다.
더는 돌아갈 시간이,
많지 않으니까.
그리고 나는,
혼자서,
묵묵히 걸어서
집에 도착했다.
그 길 위에
조금은 지쳤지만
조금 더 단단해진 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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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 이야기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공감하셨다면, ‘라이킷’으로 마음을 나눠 주세요.
그 마음을 기억하며,
다음 회차에서 이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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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안내
Luna Han 윤영의 연재는 다음 일정으로 이어집니다:
《이혼해도 괜찮아》 ‧ 매주 월요일 · 수요일 · 금요일
말 한마디 하지 못한 채 끝난 결혼,
이제는 나를 위해 입을 여는 이야기.
《루나의 세비야》 ‧ 매주 화요일 · 토요일 · 일요일
저의 두 번째 삶이 시작된 도시, 세비야.
그곳에서의 일상과 감정을 담은 기록입니다.
《진실, 유죄》 ‧ 매주 목요일
진실을 말했다는 이유로 죄가 되는 시대.
그럼에도, 말해야만 회복되는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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