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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 이 카페의 공기

밤이 더 사랑스러운 카페 8mm

by 디어


Hello, Stranger.


처음 가보는 곳엔 늘 낯가림이 있다. 구글 지도에 부지런히 찍어둔 별표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곳을 가지 못하는 데는 낯섬에 대한 본능적인 경계심이 큰 몫을 하곤 한다. 고작 새로운 가게일 뿐인데 왜 문 앞에서 발이 떨어지지 않는 건지. 한참을 들어갈까 말까 고민하다가 겨우 문 안으로 발을 들여놓을 때면 이상하리만치 소심해진다. 한 명이냐 묻는 직원에게 그렇다고 대답해주고 자리에 앉아 메뉴판을 받아 들 때까지 긴장감은 지속된다. 막상 주문을 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일인데.


하얀 타일로 마감된 바 자리에 앉아 아직 긴장감이 가시지 않은 손으로 책을 꺼냈다. 약간 어두운 조명에 잘 어울리는 콜드플레이의 노래가 흐르는 카페 巴黎米(8mm)와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됐다.



Cafe 8mm
035.JPG No. 1, Lane 60, Section 3, Xinsheng S Rd, Da’an District, Taipei City, 106


타이페이의 카페 골목이라고 하면 흔히들 용캉제나 푸진지에를 떠올리지만 내가 살고 있는 초록선 타이파워빌딩역부터 공관역까지도 참 예쁜 카페가 많다. 여행지로서 알려진 곳은 아니지만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자주 찾는 개인 카페들이 많이 모여있는 곳이다. 사실 이곳을 걷다 보면 꼭 카페뿐 아니라 골목골목 숨겨진 예쁜 디저트 가게들과 맛집들, 분위기 있는 펍들을 찾는 재미가 쏠쏠하다. 여행 책에 많이 나오는 워딩을 빌리자면 소위 '현지인들이 사랑하는 Hidden gem'인 셈이다.


8mm 역시 그런 개인 카페 중 하나다. 줄기가 되는 골목이 아닌 작은 골목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Hidden gem of hidden gem이라고 해야 할까. 얼핏 보면 지나칠 수 있는 곳에 있는 데다 간판도 실내도 조명도 그리 밝지 않기 때문에 열려있는 가게가 아닌가, 하고 지나치기 쉽다. 그래서인지 아는 사람만 찾아오는 듯 보이며 소란스러울 때가 거의 없다. 어쩌면 카페 치고 살짝 크다 싶은 음악 소리도 워낙 조용한 분위기 탓에 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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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페이는 밤이 조용한 도시다. 10시가 지나면 도시는 어둠으로 걸어 들어가기 시작한다. 대부분의 카페들이 늦어도 10시에는 문을 닫는다. 하물며 집 근처 프랜차이즈 카페는 9시에 이미 마감을 마치고 불을 끈 지 오래다. 8mm는 그런 타이페이에서 홀로 늦게까지 불을 밝힌다. 눈에 탁 띄지는 않더라도 잔잔하게 내려앉은 조명을 걸어 같은 자리를 지킨다. 나는 마감까지 앉아있다 나와 노트북을 껴안고 걷는 조용한 타이페이의 거리를 사랑한다. 집에 갈 시간이 됐다는 듯 어둑해진 조명과 살짝 서늘한 밤공기, 이어폰으로 흘러나오는 음악이 전부인 거리의 침묵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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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가지 이유로 어딜 가든 바 자리에 앉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8mm에서만은 매번 바 자리에 앉는다. 자투리 공간을 활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바 자체가 메인인 것처럼 다른 곳보다 널찍하게 만들어놓은 것도 좋고, 전구를 늘어뜨려 포장용 맥도널드 종이백을 씌워놓은 무심함도 좋다. 딱히 별다른 일을 하지 않아도 음악을 들으며 선반에 무심하게 얹힌 빈 병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누구의 취향인지는 모르겠지만 주로 장엄하다 못해 웅장한 콜드플레이 류의 밴드 음악이나 뉴에이지가 흘러나오고 때로는 라이브 음원을 틀기도 하는데 음악 소리가 작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의 환호 소리마저 거슬리지 않는 것이 신기하다. 개인적으로는 라나 델 레이의 노래를 틀면 잘 어울릴 것 같은데 아쉽게도 한 번도 들어본 적은 없다. 문득 든 생각엔 쏜애플의 '아가미'도 잘 어우러질 것 같다.





KakaoTalk_20161115_205540453.jpg 오레오쉐이크(OREO奶昔) / 음료는 조금 단 편이다


다른 카페들에 비해 음료가 싼 편은 아니다. 양도 많지 않다. 평일에는 150원, 주말에는 160원이란 타이페이스럽지 않은(?) 최소 주문 가격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일주일에 서너 번 이곳을 찾는다. 주로 혼자 조용히 앉아 늦게까지 글을 쓰고 싶을 때나 무언가를 집중해서 해야 할 때 오곤 한다. 보통은 카페에 가서 공부를 하거나 책을 읽는데 이곳에서만큼은 단 한 번도 공부를 한 적이 없다. 약간 나른해지며 스스로에 집중하게 해주는 힘이 있는 카페다. 무엇보다 늦게까지 문을 연다는 점, 그리고 조용하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8mm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이곳을 방문하게 된다면 책 한 권 혹은 노트북만 들고 갈 것을 추천한다. 일기장도 좋다. 마감이 가까워 집에 갈 때면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나른할 정도로 걸었으면 좋겠다. 서울보다 어둡고 노란 타이페이의 가로등 조명 아래 느릿느릿 걷다 보면 한밤의 타이페이를 만날 수 있다. 뭐든지 빠르게 흘러가는 서울을 피해 도망 온 여행자를 무심하지만 따뜻하게 반겨주는 밤의 공기, 수많은 카페 중 8mm가 특별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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