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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옛 동네를 걸었다

신베이시 종허구 의안로 171호

by 디어





대만에 처음 온 한국인, 특히 중국어를 배우러 온 사람이라면 대부분 학교에서 가까운 곳에 집을 구하게 된다. 내가 다녔던 사범대학교를 기준으로 구팅이나 사대야시장(혹은 台電大樓역), 동먼 등이 그렇다. 늦잠을 자도 10분 내로 학교에 도착하고 밥 먹자고 불러내면 1분 만에 만날 수 있는 친구들이 지천에 널렸다는 것은 학교 근처 자취의 엄청난 장점들이다. 나 역시도 지금 학교 근처에 살며 이점을 한껏 누리고 있지만 내가 처음부터 다안구의 햇살 예쁜 집에 살았던 것은 아니다.


'수신자불명'에서 잠시 언급했듯이 내 첫 자취방은 신베이 시에 있었다. 신베이 시는 우리로 치면 경기도 격의 행정지구로 타이페이로 출퇴근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이다. 그래 봐야 내가 살던 곳은 강 하나 건너 지하철 역 두 개만 지나면 타이페이니 분당보다도 가까운 수준이었지만 처음 대만에 도착한 외국인이 타이페이에 산다고 하는 것과 신베이에 산다고 하는 것은 꽤 다른 느낌을 주었나 보다. 몇몇 대만 친구들은 내게 어떻게 처음 와서 신베이에 살 생각을 했냐고 물어보곤 했다. 글쎄, 다안구 집값이 미쳐서?



好久不見 (오랜만이야)


오늘 수업이 끝나고 오랜만에 옛 동네를 찾았다. 신베이에 살던 때 자주 쓰던 향수를 뿌리고 자주 입었던 가디건을 입고 9개월 전과 똑같은 음악을 들으며 그때처럼 구팅역에서 노란선을 탔다. 마침 날씨도 모처럼 비가 그치고 신베이 생활 당시 대부분의 날들이 그랬던 것처럼 흐렸다. 한국에 돌아갈 날이 점점 다가오니 처연하게 궁상떨고 싶었다. 행복으로 가득한 대만 생활에서 힘들었던 시기 전부를 포함하고 있는 그곳에 가고 싶었다.


대만에 처음 도착했을 당시 나는 장기간의 휴학 투쟁(?)을 비롯한 여러 사정 때문에 굉장히 지쳐있었고 대만은 자주 썼던 것처럼 3주 내내 비가 오는 우울한 날씨였다. 아직도 처음 집을 보러 용안시장(永安市場)역에 도착했을 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신베이는 아무래도 타이페이에 비해 늦게 개발되기 시작했기 때문에 건물들이 대부분 크고 높은데 지친 마음과 우울한 날씨에 힘입어 한없이 우중충하게만 보였다. 오토바이는 왜 이리 또 많은지. 온통 도시가 흑백 처리된 것만 같은 기분과 처음 와보는 동네의 묘한 긴장감. 내 용안시장에 대한 첫인상은 그랬다.


발행하고 있는 매거진의 이름 '의안로 171호'는 내가 처음 살았던 용안시장의 자취방 주소다. 솔직히 말하면 이 자취방의 첫인상도 좋지만은 않았다. (마지막 인상도 그다지 사랑스럽지는 않았다. 하필 이사 전 날 밖에서 들어온 듯한 웬 거대한 바선생이 방문하시는 바람에.) 대만 원룸답게 주방도 없었고 생각지도 않았던 복층이었고 하얀 타일 바닥 인테리어라 방이 따스해 보이지도 않았던, 여러모로 내가 꿈꿔왔던 자취방과는 너무 다른 이미지였다. 거기다 바로 옆 건물과 붙어 있어서 채광도 좋지 않았다.


그럼에도 일주일 내내 불발된 방 계약에 대한 불안감과 3중 보안, 24시간 경비원 상주 등 여러 가지 점을 고려해 결국 그 방을 계약했다. 원래 사시던 분의 계약을 이어받아 일단 3개월을 살고 나서 연장을 할지 말 지 결정하기로 한 건 운이 좋은 일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계약이 끝나는 순간 바로 이사할 거라고 확신했다.


이사 당시는 아직 학기 시작 전이었고 중국어도 거의 못하는 거나 다름없는 수준이었다. 타이페이면 몰라도 신베이 시, 그것도 주거지구에서 영어 메뉴판을 기대하는 건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도와줄 사람은 없고 밥은 먹어야겠고 혼자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검색, 사전, 때로는 영어를 동원해가며 삼시 세 끼를 해결했다. 와중에 대충 아는 걸 시키는 게 아니라 먹고 싶은 걸 먹겠다는 대식가로서의 타협 불가 기준 때문에 정말 다양한 단어들을 검색해가며 공부했다. 어떨 때는 한자를 읽어도 이게 무슨 요리인지 도통 알 수 없을 때도 있었다. 그럴 때는 몰라서 이렇게 주문하는 것도 지금밖에 못하는 경험이라며 로또 뽑는 기분으로 주문하곤 했다. 다행히 크게 실패한 적은 없었다.


한 번은 라멘을 먹으러 갔다가 중국어 메뉴밖에 없길래 (대만은 메뉴판에 바로 표시해서 주는 식으로 주문하는 가게가 많다.) 그 날 따라 왜 그랬는지는 몰라도 혹시 사진이 있는 메뉴는 없냐고 물어봤다. 아직 그것조차 중국어로 할 줄 모르던 때라 영어로 물어봤는데 순간 직원들이 일동 당황하더니 '중국어'로 기다려보라고 하곤 주방에서 서로 네가 가라며 떠미는 것이었다. 결국 끌려 나온 직원의 설명도 '이거 차슈라멘이고 이것도 차슈라멘인데 차슈라멘이고 차슈라멘이야...' 정도여서 그냥 끌리는 걸 주문했더랬다. 그 날의 최대 반전은 난 한국어는 한 마디도 안 했는데 다 먹고 계산하고 나갈 때 '감사합니다' 하는 인사를 들은 거였지만 여하튼 용안에서 이런 식의 에피소드는 셀 수조차 없었다.



사소한 것들이 특별해질 때


신베이 생활을 하는 동안 대부분의 일들은 스스로 해결해야 했고 사실 딱히 중국어를 못한다고 친구들이나 선생님께 사사건건 도움을 청하고 싶지도 않았다. 뭐든 안 되는 중국어로 점원들이며 경비 할아버지를 귀찮게 해 해결했고 그러면서 또 많이 늘기도 했던 것 같다. 이사 전 날 집에 안 올라가고 1층에 앉아 경비 할아버지와 밤늦도록 수다를 떨었다. 그때는 중국어도 잘 못 하는 데다 할아버지 발음이 또렷해 알아듣기 좋았던 것도 아닌데 어떻게 그랬는지 모르겠다. 이사 가면 보고 싶어서 어떻게 하니, 하시던 할아버지께서는 근무 스케줄을 두 번 세 번 일러주시며 꼭 자주 놀러 오라고 점심 먹자고 인자하게 웃으셨다.


비록 첫인상과 마지막 인상은 좋지 않았지만 나는 의안로의 자취방을 점점 좋아하게 됐고 그 집은 그 자체로 내게 수많은 기억을 선물해주었다. (다른 글에서 자세히 얘기하겠지만) 인생 처음으로 집에서 바퀴벌레를 봤고 잠이 잘 오지 않을 때면 노트북만 챙겨 1층의 24시간 카페에 내려가 몇 시간이고 유튜브를 방황했고 내 방이 꼭대기층이었던 덕에 비가 오는 날이면 지붕을 두드리는 빗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들곤 했다. 택배로 받았던 아끼는 미니어처 향수를 깨 먹은 것도 아침에 자다가 지진 때문에 깨서 12층에서 어떻게 탈출하지, 하는 고민을 잠시나마 심각하게 했던 것도 다 그 집에서 있었던 일이었다.



용안시장은 사랑스러운 동네다. 주방이 없다 한들 주변에 널린 게 식당이고 맛집이나 예쁜 카페들도 많다. 걸어서 10분 거리에 슈퍼마켓도 여러 개 있고 도서관도 있고 운동할 만한 큰 공원도 있다. 주거지구다 보니 퇴근 시간 이후에 약간 소란스러워지곤 하지만 나는 신베이에서만 만날 수 있는 일상의 풍경들을 좋아했다. 10분 거리에 사는 친구가 없었기 때문에 학교가 끝나 지하철을 탈 때면 구팅에서 딩시로 오는 해저터널에서 내 어떤 스위치를 끄고 오롯이 혼자가 됐다. 용안에서의 시간은 늘 스스로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길 바랐다.


9개월 전 그랬던 것처럼 지하철 역을 나와 집 쪽으로 천천히 걸었다. 주머니에 짤랑거리는 열쇠는 이제 종허구의 것이 아니라 다안구의 열쇠지만 기분이라도 낼까 싶어서. 지나쳐 가는 모든 것에 추억이 묻어 있었다. 저 세탁소 아주머니께서 중국어 못한다고 귀엽다고 하셨는데 이젠 안 귀여워하실까, 이 가게는 새로 생겼네, 저 까르푸에서 아빠 생각나서 녹차 하겐다즈 샀었는데. 신베이 주민 셋이 - 우리끼리는 신베이 가족이라고 불렀다. 구성원은 아빠에 딸 둘. - 야식으로 찾던 11시의 르어차오까지 처음에는 타인의 일상이었던 모든 것들이 내 기억의 한 조각이 되어 있었다.



집 앞을 지나 늘 걷던 길로 공원에 들어섰다. 함께 태극권을 연습하는 사람들, 옹기종기 모여 장기를 두시는 할아버지들, 주인을 따라 산책 나온 강아지들, 정말 우울하고 힘들었던 날 한참을 멍하니 앉아 울었던 자리에 똑같이 앉아 있었다. 그때 무슨 음악을 들었더라. 이사 가고 나면 제일 그리워질 것 같았던 공원은 어제도 산책했던 것처럼 포근했고 익숙했다. 그리고 나는 그곳에서 9개월 전의 나를 만났다. 마치 태연 - I의 뮤직비디오 마지막 장면처럼 유난히 좋아했던 산책로 끝에 지쳐있던 그때의 내가 서있었다. 눈물만 많아져선 괜히 울 것 같아 이어폰 볼륨을 높이고 부지런히 걸었다. 대낮에 공원 걷다 말고 울면 이상하잖아.



한국에 돌아가고 나면 다안의 햇살만큼이나 종허의 흐림이 그리워질 게 분명하다. 혼자서 핸드폰에 이어폰만 챙겨 30분이고 한 시간이고 걸어 다니던 종허구의 모든 곳들이 나를 다시 이곳으로 부를 것만 같다. 이제 나는 종종 가던 쯔주찬(自助餐) 집에 가서 저녁을 먹을 거고 이제는 구 자취방이 된 곳의 카페에 가서 종종 그랬던 것처럼 유튜브를 보고 오늘 배운 걸 복습해야겠다. 그리고 9개월 전까지와는 반대 노선의 버스를 타고 집에 가겠지. 같은 장소에서 다른 시간의 기억을 만든다는 것, 우울한 건 우울한 대로 예쁜 건 예쁜 대로 간직할 수 있기에 오늘 용안은 하루 종일 맑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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