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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라 Jun 07. 2021

다시, 이팝나무 꽃이 필 때까지

#3. 내일 아침이면


예전에 서랍에 넣어 둔 글이었다

이때로라도 돌아가고싶다.


그래도, 이때는 내게 아빠가  있었다.

나에게도, 아빠가 있었던 작년.



#3. 내일 아침이면,


가을이 말을 거는 것 처럼, 선선한 바람이 아침을 깨웠다.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할 지 막막한 기분이 들었다.


오늘 밤에 아빠는 2번째 씨티를 찍기로 되어 있었다. 정작 아빠는 아무것도 겁나지 않는 사람처럼 보인다.


암이라는 것은, 주변 장기를 침윤하듯 삶을 잠식하는 질병같다.


하루에도 수십번 암을 생각한다. 아니지, 아빠를 생각한다. 아침에 빨래를 세탁기에 집어 넣으면서는 아빠에게 기적이 일어나서 완전관해( 암이 모두 없어졌다는 의사의 진단을 받는것)에 이를 수 있을 거라는 근거없는 확신이 들다가도, 점심 무렵에 잠깐 시간이 날 때 쯤이면 의사의 기대여명이 대충은 맞았다는 사람들의 말이 머리를 맴돈다. 답이 없는 문제 앞에서 수십번씩 후회를 한다. 시간을 돌리고 싶다. 딱 1년 전으로만이라도.


아빠가 아프기전 내 핸드폰에는 아들 사진, 고양이 사진, 내 셀카 사진, 여행 사진이 가득했다. 엄마 아빠 사진이랑 동영상을 찍으려 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이제 아빠 사진이 너무 많다. 그런데 내가 기억하는 아빠의 모습과는 너무나도 다르다. 억지로 웃어 주고 있는 야윈 아빠의 모습. 야윈 얼굴과 하얗고 드문 드문 짧은 머리카락.


저번 1차 씨티를 찍을 때는, 주치의가 있어서 씨티 판독전에 미리 결과를 귀뜸해 주었다. 물론, 그 결과가 판독과는 다소 달랐지만. 그런데 이번에는 회진때 교수님께 직접 물어보아도 알려주시지 않았다.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고 했고, 외래 때 보자고만 하셨다.


그렇게 남은 2주의 시간 동안, 매 분 매 초, 기적이 일어날 것 같았다가도 혹 항암제가 더 이상 듣지 않게 되었으면 어쩌나 하는 번민으로 보내게 될 것이다. 아빠는 어떤 마음일까. 지난 4개월여간의 치료기간 동안 아빠는 1주일을 제외하고는 약한 모습을 한 번도 보이지 않았다. 아빠의 지난 삶과도 너무 닮아 있었다. 호중구가 475까치 내려갔던 그때 항암을 마치고 나서 그 주에는 아빠는 모든 것을 포기한 사람처럼 먹지도 않고 말도 하지 않고 누워만 있었다. 이러다 큰일 나는 것 아닌가 하는 공포심으로 1주일을 보냈었다. 그런데 나머지 시간의 아빠는 지나치게 씩씩하다. 아프다고 가족에게 짜증한번 내지 않고, 완치에의 확신을 보이고 있다. 도리어 딸들과 엄마를 도닥이며 "아빠는 완치 판정 받을거야. 걱정하지마."라고 웃으며 말한다.


기다림의 2주, 오늘로 1주가 지났다. 다음 주 화요일이다. 기적이 일어나서 전이된 것들이라도 다 없어지면 얼마나 좋을까.


인생에서 행운이 필요한 때는 많지만 기적이 필요한 순간은 별로 없다. 인생을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지혜가 필요하고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성찰이 필요하긴 하지만, 그런 루틴한 일상에서의 자잘한 고통에 대해서는 굳이 신을 의지할 필요는 없다. 어떤 일은 충분히 아파하다보면 고통이 계절이 지나가듯 지워지기도 하고, 어떨때는 마음을 다잡아 의지를 가지고 이겨나가면 되기도 한다. 엄청난 우울이 엄습할때면 몇 가지 약물이 도움이 되기도 한다. 그렇게 삶은 어쩌면 이겨낼 수 있는 작은 고통들로 점철되어 있다.


담당 교수는 저번 입원에서 아빠가 통증이 심하다고 하자 " 앞으로 더 심해질 겁니다. 주저하지 말고 꼭 말하세요. 통증은 그냥 두시면 안됩니다." 앞으로 더 심해질 거라도 한다. 그것은 항암의 부작용이 심해질거라는 뉘앙스가 아니었다. 아빠가 말기암 환자니까. 음식도 가리지 말고 먹고 싶은 것은 아무거나 다 먹으라고 한다. 하지만 그런 말은 정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동생은 매일 식혜를 좋아하는 아빠의 당조절을 위해서 당이 없는 식혜를 직접 만든다. 매일 닭발곰탕을 우려 낸 것으로 국을 끓이고 암에 좋은 식단으로 아빠에게 죽과 반찬을 만들어준다. 마치 신생아를 돌보듯이, 그렇게 아빠를 간호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아빠를 살리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모든 노력들은 아무런 성과가 없을 수도 있다.


그래서 지금 마흔 한 살의 나에게는 기적이 필요하다. 췌장에서 시작되어 간과 위와 비장과 복막에 잔뜩 퍼져있는 암덩어리들을 생각하면 그 어떤 인간의 방법으로도 도무지 해결되지 않을 것 같다. 우리 딸들은 거의 늘 암과 관련한 정보를 검색하고, 암을 키우는 것들을 아빠에게서 없애고, 암을 없애는 것을 아빠에게 주고, 암을 없애는 것을 도와주는 것과 암을 없애는 치료의 부작용을 줄이는 것들을 찾아 헤매서 아빠를 어떻게든 낫게 하려고 발버둥을 친다. 그것이 인간의 일이다. 그러다가 놀이터에 아이들을 놀게 하고 동생과 이야기를 했다. "정말 나을 수 있을까. 우리 아빠가. 아빠가 너무 불쌍해."


오랜만에, 정말 오랜만에 진심으로 신에게 기도하고 있다. 아빠의 암덩어리가 나의 모든 죄에서 기인하기라도 한 것 같은 죄책감이 나를 짓누른다. 아빠가 나를 위해서 해주었던 고생이 뼈아프고 아빠가 나를 위해 써야 했던 시간들이 아깝고, 아빠가 나로인해 마음아파했던 일들에 억장이 무너지게 후회가 밀려온다. 아빠는 선한 사람이니까, 아빠는 세상에 대해 자신에 대해 신에 대해 잘못한 것이 없으니까. 아무래도 신이 있다면 그래도 이런 일이 생긴거라면 나의 죄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매일 밤 진심으로 기도하게 되었다.


"살려주세요. 제발" 그것 밖에는 다른 기도가 나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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