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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라 Jan 03. 2021

다시, 이팝나무 잎이 필때까지

아빠, 사랑해요 

아빠에게 봄을 선물하고 싶었던 2020년 이었습니다. 

아빠에게 암이라는 나쁜 놈이 찾아 온것이 지난 봄 이었으니, 새봄을 선물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뭐가 그리 급했는지 결국 이렇게 추운 날 아빠는

새해를 맞지도 못하고 그렇게 떠나버렸습니다.


영결

영원한 결별이라고 하지요 

아빠와 저에게는 이제 영원한 결별이라는 선언이 남아 있습니다.

아빠의 마지막 며칠은 지독한 고통뿐이었음을 잘 알기에

그 고통의 시간이 길어진다 한들 아빠에게는 무의미한 고통의 시간일뿐이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암환자 같지 않게 말갛고 이쁜 아빠의 얼굴을 수없이 어루만지며

하루만 더, 일주일만 더, 한달만 더, 일년만 더, 아니 십년만 더

하면서 아빠를 붙잡고 싶었어요

다시는 보지 못한다는 것의 

그 영원한 결별의 무거움을 너무나 잘 알기에 

도저히 아빠를 보내고 싶지 않았던, 그 또한 저의 이기심이었습니다. 


짧은 투병동안, 짜증한번, 화 한번 내지 않았고 

깊은 절망의 통고를 받았던 무수한 순간 중에도 

단 한번도 실망하거나 좌절하거나 낙심하거나 분노하지 않았던 아빠이기에

그 절망과 분노가 아마도 저에게 오롯이 왔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상의 모든 아버지가 세상의 모든 딸들에게 각별하고 애틋하겠지만

저와 아빠는, 저희 세 딸과 저의 아빠는

세상의 모든 딸들과 아빠 사이를 넘어선 애틋함을 가지고 있었다고 감히 말해봅니다 

그 누구보다 다감하고, 그 누구보다 현명했던 그 누구보다 넘치는 사랑을 주었던 우리 아빠

아빠를 위해서라면 제 삶의 많은 시간을 아빠에게 주고, 아빠없는   10년을 살기보다는 아빠와 함께 1년을 살고 싶었던 것이 세 딸의 같은 마음이었다면 설명이 될까요 


아직, 아빠의 이름을 부르기도, 아빠의 사진을 보기도 겁이 납니다 

아직도 아빠 집에 가면 소파 그 자리에, 아파트 흔들그네 그 자리에 아빠 침대 그 자리에

아빠가 있을 것 같습니다 

노래를 잘했던, 글을 잘 쓰셨던, 책을 좋아하셨던, 공부를 즐겨하셨던, 

세상의 그 어떤 욕망에도 흔들리지 않으셨던, 우리 아빠 

아빠의 통통했던 배를 떠올립니다 

그리고 다시 아빠의 마지막, 뼈 밖에 남지 않았던 그 모습이 떠오릅니다 

아빠에게 이제 더 이상 고통은 없겠지만


아빠를 사랑했던 우리 모두에게 

사랑한 만큼의 눈물을 남기고 아빠는 떠나셨어요 


암이라는 것은, 참 무서운 것 같습니다 

아무것도 계획대로 되어지는 것이 없고, 기적이 없으면 결국 암에게 지고 마는 것이 

인간의 나약한 육체라는 것만이

제가 암과 사투를 하고 내린 결론입니다 


아빠는 이제 좋은 곳에 모셨습니다 

햇살이 비춰올거고, 또 봄이 오겠지요 

아카시아 꽃이 지고 이팝나무가 흐드러질 그 때쯤이 되면 더 이상 울지 않게 될 수 있을지 사실 그것조차 자신이 없습니다 


짧고 또 길었던

짧았지만 또 충만했던

멋있는 내 아빠



이제, 아빠를 고통없는 세상에 보내드리고, 

저는 영원한 결별의 고통에의 길에 한 걸음 떼었을 뿐입니다.


세상의 모든 작별을 안다고 생각했었는데 

그 어떤 이별과도 견줄 수 없는 심연의 아픔이 저를 잠식하네요 


부디, 모든 암환우들에게 작은 기적이라도 있기를

또 어떤 이들에게는 기적이 삶으로 이어지기를

기도해봅니다 


아빠, 사랑해요 

보고싶어요

다시 태어나도 나는, 주저함 없이 아빠딸.

그렇게 되면 또다시 당신의 삶이 나로 인해 분주해 질지라도. 

다시 태어나도 아빠 딸. 


잘자요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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