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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Chive Jan 08. 2023

'집사'라는 말이 부담스러운 이유

매일 아침 끄적이기 -15

   내 방에는 행운목과 다육이가 몇 그루 살고있다. 이 녀석들은 전에 살던 분이 놓고 간 식물들이다. 아마도 화분 버리는 것이 까다로워서 유기하고 이사를 한 것이 아닌가 싶다. 보통 주거시설이 아닌 관사라는 점도 한 몫을 했을거다. 오랫동안 집이 비지 않을 거라는 믿음과 자기 다음에 온 사람이 알아서 처분하겠지 싶은 안일함. 처음에는 나도 보자마자 바로 버리려고 했다. 근데, 묘하게 버리려고 보니까 너무 아까웠다. 그때는 이유를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아마도 한창 코로나 시기라 사람들도 못 만나고, 마음이 허해서 그랬나 싶기도 하다. 이런 이유로 키워본 식물이라고는 초등학교 때 숙제로나 키워보던 콩나물밖에 없었던 내가 이 녀석들을 맡게 되었다. 그리고 2년 동안 다행히 관리를 많이 해야하는 식물들이 아니라서 지금도 여전히 잘 살아남아 겨울을 나고 있다.  


   코로나 시대에 외로움에 대한 보상을 받고자, 반려동물/반려식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이에따라 미디어 노출이 늘어나면서 이 '집사'라는 단어가 식물을 키우는 사람들에게도 붙어 '식집사'라는 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나는 집사라는 저 단어가 붙는 것에 거북함을 느낀다. 집사는 주인이나 보호자가 아니라 시중드는 사람이란 의미고, 자발적 책임을 지지 못하고 대상에 종속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또한, 반대로 보살핌 받는 생명의 입장에서는 저 단어로 인해 온전히 자기 앞의 생을 책임지지 못하는 존재로 취급되게 된다. 나는 식물을 기르고 보살피지만 식집사가 되고 싶지는 않다.


   사람들은 무언가를 소유하고 좋아하게 되면 아끼고 살피고 돌보게 된다. 그 행위를 사랑이라고 오해하기도 한다. 소유와 종속 관계를 강화하고, 길들이고 길들다 보면 서로 믿고 친근감을 느끼는 것을 넘어 서로 집착하고 의존하는 관계가 된다. 이게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한 정답처럼 보인다. 나도 아마 이 녀석들을 키우지 않았다면 비슷한 생각을 여전히 가지고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녀석들을 키우면서 조금 생각이 달라졌다. 사랑의 방법은 그 대상에 따라 달라야 한다. 아끼고 살피고 돌보는 것이 때로는 사랑이 아니며, 그것은 오로지 인간의 관점이자 자기만족이지 대상의 입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식물 입장에서 보면 사람의 보살핌과 돌봄의 정도를 최소화하는 것이 오히려 더 사랑에 가깝지 않을까? 그들에게 내가 쏟는 사랑은 나의 기쁨과 나의 만족이지만, 사랑의 궁극적인 목표지점은 나로 인하여 대상이 온전하고 자유로워지는 것이 아닌가? 식물을 화분에 묶어놓고 기른다는 것 자체에서 이미 나는 이 식물에 대한 나의 개입을 최대화하겠다는 의미다. 화분이라는 공간은 내가 관리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공간이지, 식물이 자기 스스로를 돌볼 환경을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어느 책에서 한 말이 생각난다. 사실 사랑이라는 것은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철저히 자기 자신을 위한 행위라고. 나는 어쩌면 식물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식물이 '필요'해서 이용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후에도 식물을 구입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구입을 하게된다면 딱 하나 선택기준을 잡고는 싶다. 이 녀석이 스스로 생존할 수 있는 종일 것. 내 비록 화분이라는 공간에 그를 묶어두지만, 적어도 365일 바깥에서 바람과 햇볕과 바람과 추위를 느끼게 해주고 싶다. 그러려면 그 모든 것을 견디고 생존할 친구가 필요하다. 잘 자라고 못 자라고, 죽고 살고의 문제까지 내가 깊숙하게 관여하는 것을 제한한다. 식물 자신이 얼마만큼은 스스로 책임질 수 있도록 자연조건과 자생력에 맡긴다.  '최소한의 개입으로 나의 책임을 다할 수 있는 것' 그게 내가 제일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생명을 사랑하는 방식이다.  


   사실 무언가를 좋아하게 되면 이 평정심을 유지하기가 생각보다 어렵다. 사랑하기보다 사랑하지 않기가 더 어렵다. 강아지 때부터 내 옆을 지키던 개가 갑자기 아프고, 식물의 아름파운 꽃송이가 지고 갑자기 잎이 시들면, 무심해지기가 쉽지가 않다. 나도 모르게 애지중지하고 한번이라도 더 챙겨주게 된다. 그런데 내 경험상, 동물은 모르겠지만 식물은 그럴수록 빨리 약해지고 빨리 죽는다. 아는 사람들 중에 꽃집을 운영하는 형님이 하나 계시는데, 그 형에게 내가 처음 화분을 키우겠다고 했던 날 나에게 당부했던 말은 화인처럼 찍혀있다. '물을 줄 때는 흙이 마르기를 기다렸다가 한번에 많이 줄 것. 화분 식물은 말라서 죽는 것보다, 과습으로 죽는 경우가 빈번하니 늘 주의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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