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치게 사적인 고백
얼마 전에 몸이 크게 아팠다. 문득 고통의 아레테에 대한 생각을 했다. 한강의 <희랍어 시간>이라는 소설에서 주인공 남자의 친구였던 요아힘은, 불치병으로 시한부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남자에게, 죽음에 항상 맞서고 있는 본인이야말로 죽음에 대한 최상의 아레테를 가진 사람이 아니냐고 웃으며 말한다. 아레테는 고대 그리스어로, 지고한 능력을 의미한다. 오래도록 잔잔하게 어딘가가 아파왔던 내게도, 어쩌면 고통에 대한 최적의 아레테가 있는지 모른다는 생각을 할 무렵이었다. 그때 그 사람이 했던 말이, 아마도 나를 처음으로 덜컹거리게 했다.
사실 몸이 아플 때 마음도 같이 연해지는 게 맞는지 모른다. 혹은, 그 전부터도 이미 나는 그에게 덜컹거리고 있었는지도. 언제부터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가 한 말은 별것이 아니었다. 너무 생각을 많이, 깊이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아니, 정말은 언제나, 그가 내게 하는 말은 별것이 없다. 내가 울고 있으면, 울어도 괜찮다던가. 나도 가끔 운다던가. 그럴 수 있다거나. 아마 그가 내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은, '괜찮아. 그럴 수 있어.'인 것 같다. 내가 뭘 해도, 무슨 말을 해도, 그저 괜찮아. 뜻없이 베푸신 다정에 제 마음이 덜컹거려요. 응, 얼마든지 그럴 수 있어.
사람에게 거절 당하는 데에 심한 포비아가 있다. 때로는 그게 사람에게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렇게 혼자 섬이 된다. 내게 언제나 포용적이던 그 사람은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마음이야 얼마든지 덜컹거릴 수 있지만, 적당한 거리두기가 필요하다는 말이었다. 칼집 속에 든 칼 같았다. 항상 짤막한 카톡 대화에서도 인스타그램 디엠에서도, 그 사람은 일말의 여지를 내어주지 않았다. 마음이 쓰렸는데, 이상하게도 불쾌하진 않았다. 재미(?)있는 건, 내게 거리두기를 하자면서도 여전히 다정한 태도였다. 날 동정하는 건가. 정말 재미있는 건, 그래도 좋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자존감은 없어도 자존심이나 고집은 센 편인데, 이상하게 그 사람에게는 동정받는 것조차 좋았다.
그건 아마, 내가 다 짐작하지 못하는 그 사람의 아픔 때문이다. 그 사람은 언젠가 내게, 자신이 어떤 상황에서도 담담할 수 있는 것이 무수한 아픔의 기억과 경험 때문이라고 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믿음이 저버려지고 얼마나 많은 사건으로 상처를 입었을지, 그 짧은 말과 담백한 어투가 이상하게 마음에 와 박혔다. 상처 입은 곳을 쓸어보고 싶게 만드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 무렵, 혼자 그 사람이 사는 지역으로 훌쩍 여행을 떠났다. 꼭 그 사람이 보고싶어서만은 아니었고, 원래도 좋아하는 여행지였던 데다,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쳐 어딘가에서 푹 쉬고 싶었다. 그 사람은 고맙게도 내가 머무는 기간 내내, 여행의 충실한 가이드이자 메이트 역할을 해주었다.
그 사람 덕분에 그 지역이, 넘실거리는 넓은 바다만 있는 곳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수많은 마을을 둘러싼 낮고 높은 산들이 겨울날 어깨에 둘러지는 이불처럼 느껴졌다. 어느 때는 낮아졌다 어느 때는 높아지며 부드럽게 이어지는 능선들 같은 사투리 억양, 웃음 소리, 그런 것들. 수도권에서보다 한결 따뜻하게 느껴지는 바람, 그럼에도 희게 얼어붙은 바닷가 포말들, 무지갯빛 윤슬과 먹빛 금모래, 그런 것들. 무엇보다, 그 사람이 늘 옆에, 앞에, 뒤에 있었다. 내가 신이 나서 숲길을 달릴 때나, 차창 밖으로 펼쳐진 바다 풍경을 보다 갑자기 울먹일 때나. 말도 안 되는 감정의 격랑들 속에서 2박 내내 불면의 밤을 보냈지만, 이상하게 기뻤다. 기쁜데 자꾸만 눈물이 났다. 시도 때도 없이. 서울로 돌아오는 열차 안에서, 집에 와 침대에 누워서, 일하다 말고 문득.
언젠가부터, 언제나 어디서나 모든 것이 괜찮은 사람, 누구에게나 그럴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의 어깨에, 잠깐 기대어보고 싶어졌다. 살면서 얼마나 많은 거절을 당했는지 모른다. 앞으로도 수없이 거절당할 것이다. 누군가에게, 또는 무엇인가에. 그가 모든 것에 끝내 담담해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처럼, 얼마나 많은 상처가 나를 밟고 지나갈 것인가. 또 얼마나 많은 믿음이 나를 비웃고 돌아설 것인가. 언제든지 그럴 수 있었다. 그게 생이니까. 그렇다면, 내가 웃든 울든 절대 당황하지 않는 사람에게 조금 기대어보는 것쯤은, 기대어 한숨 돌리는 정도는, 잠깐 해봐도 괜찮지 않을까. 이렇게 유독하고 피로한 세상에서.
그러다 얼마 전 우연히 그 사람의 생일을 알게 되었다. 설산을 좋아한다더니, 그래서 설산을 겨우나마 볼 수 있는 마지막 계절의 끄트머리에 태어났던가보다 했다. 같이 했던 몇주 전의 산행에서, 낡아진 아이젠을 신고 유난히 고생하던 게 생각나, 내가 평소 쓰던 브랜드의 아이젠을, 한 치수 더 큰 것으로 한개 더 샀다. 그리고 짤막한 메시지를 붙여 무심히 건넸다. 정말 웃긴 건, 그 사람은 그 아이젠을 개봉하자마자 다른 사람에게 빌려줬다. 그날 함께 산행했던 동료 대다수가 아이젠을 가져오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겨울산행을 할 때 자신이 쓸 아이젠 외에도 여분의 아이젠을 챙기는데, 자신이 쓸 것과 여분을 털고서도 모자라서, 심지어 내가 선물한 것조차 다른 사람에게 빌려줬다. 덕분인지 어찌어찌 다들 무사히 산행을 마치긴 했다.
그날 그 사람에게 처음으로 짜증을 냈다. 맨 처음엔 내 성의를 무시한 것 같은 그의 태도가 싫었고, 나중엔 그가 아이젠도 없이 얼음이 낀 산길에서 혼자 넘어지는 걸 보고 마음이 아려서 혼났다. 당신은 뭐가 그렇게 다 괜찮고 좋은지 모르겠지만 나는 아냐. 나는 무엇보다 당신이 아프거나 다치는 것이 싫다. 너댓 시간의 산행 내내, 그 생각만 했다. 당신이 내게 아무런 여지를 주지 않아도 괜찮다고, 칼집 속 칼처럼 굴어도 괜찮다고, 어떤 것도 바라지 않겠다고. 당신이 내내 건강하고 아프지 않고 다치지 않는 것, 그것 외에는. 아무 잘못도 하지 않은 그 사람에게 짜증이나 냈던 스스로가 잠깐 저열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그건 정말 잠깐이었다. 가장 크게 먹은 마음은, 산을 좋아하는, 그래서 산을 닮아진 그 사람이,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산처럼, 무탈하고 여전하게 잘 살아있기를 바라는 것이었다.
지금도 그 마음은 여전하다. 그 사람이 내게 마음문을 얼마나 열었는지에 대해서는, 사실 크게 관심이 없다. 나는 그에게 여전히 멋대로 군다. 칭얼거리다, 짜증을 내다, 어느 때는 돼먹잖은 애교를 부리다, 문득 마음을 쓰다듬어주고 싶어진다. 그는 여전히 내게 모든 것이 괜찮다고,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참지 않겠다고 했다. 싫으면 싫다고 말해요. 나는 좋으니까 좋다고 말할 거고, 참지 않을 거예요. 이상한 일이다. 이렇게나 나이를 먹고, 그렇게나 지치고 어딘지 낡아진 남자에게, 불현듯 당돌해지는 것이. 꼭 아주 어리고 철없는 소녀가 된 것처럼. 내가 울어도 웃어도 쉽게 당황하지 않는 그 사람이, 나를 그렇게 만든다.
그리고 그게, 나는 여전히 좋다. 언제까지 이럴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이 이야기를 그 사람이 언젠가 읽을 수 있을까. 읽을 수 있든, 읽지 못하든, 아무래도 괜찮다. 지나치게 사소하고 시시콜콜하고 유치한 고백이어서, 읽히지 않는 편이 차라리 나을지도 모르겠다. 다만, 이 이야기 너머로 전하고 싶은 나의 마음만은. 그러니까, 당신이 언제나 어디서나, 문득 아프고 지치고 외롭다고 느낄 때, 당신을 걱정하고 당신의 건강과 안녕과 무탈을 바라는 어떤 사람이, 차마 다 헤아릴 수 없는 당신의 지난 상처들을 어루만지고 싶어하는 사람이, 어딘가에 반드시 있다는 것은, 조금 짐작해주었으면. 그러면 아프고 지치고 외로울지 모르는 어느 날에 당신이 조금은, 위로받을 수 있지 않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