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을 건너지 못한 나무

4부 - 우울: 낮은 곳에서 피는 그림자

by 엘리킴


어느 언덕에
계절을 건너지 못한 나무가 있다.


겨울이 갔지만
그 나무는 잎을 틔우지 않았다.

봄이 왔지만
그는 꽃을 피우지 않았다.


그 나무는
한 계절에 멈춰 있었다.


아무도 그 나무를 탓하지 않았다.
하지만 누구도
오래 바라보지 않았다.


나는 그 나무 앞에 서서
한참을 멈췄다.
이름도, 열매도, 향기도 없지만
그의 침묵 속에
무언가 내 마음과 닮은 것을 느꼈다.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자라지 못한 마음이 있다.
이미 끝났다는 걸 알면서도
떠나지 못한 감정이 있다.
나는 그걸
계절을 건너지 못한
내 안의 나무라고 불렀다.


봄은 다정했고,
햇살은 부드러웠고,
사람들은 말랐다가도 다시 피어났지만
나만은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잊지 않기 위해
움직이지 않았던 나날들.
놓지 않기 위해
버티기만 했던 나날들.


하지만
시간은 정직하게 자란다.
비켜 있던 마음에도
어느 순간
햇살이 조금씩 스며들기 시작했다.


나는 그 나무를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
그 아래 앉아
조용히 말했다.


“이제는
다음 계절로 가보자.”


그 말은

계절을 향한 게 아니라
나 자신을 향한 말이었다.


어쩌면
그 나무는 나를 비추기 위해
한 계절에 머물렀는지도 모른다.
나를 기다리기 위해
움직이지 않았던 존재.


그렇게 생각하자
그 나무는
비로소
다음 계절로 뻗어나가는 것 같았다.






고백: “나는 아직도, 한 계절에 멈춘 나를 이해하고 품어주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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