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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음 Oct 22. 2022

서열 1위 조이

조이를 보면 왜 혼자 살아났는지 좀 알 것 같다.

7개월 오빠들이 냥 펀치를 날려도 굴하지 않고 달려든다.

등치가 너무 차이가 나서 무서울 법도 한데, 덤빈다.

놀아달라고 깨물 깨물 하다가, 덜미가 잡히면 냥냥 펀치를 날려본다. 이내 참지 못한 오빠들의 앞발 한방에 쓰러져도 계속해서 덤비는 것이다.

어느 날 회사에 있는데 상가 캣 대디였던 분한테 전화가 왔다. 회의 중이니 한 시간 뒤에 전화드리겠다고 문자를 했는데, 참지 못했는지 카톡으로 사진을 보내왔다.


'고양이 새끼들이 죽어있네요.' 이 한 줄과 적나라한 사체가 보이는 사진을 말이다.


사진을 본 순간 심장이 콩닥거리고, 머리는 정지된 듯했다.


박스 위 두 마리 중 한 마리는 말라비틀어진 옆얼굴이 보였고, 입 주변에 젖었다가 말라 붙어있는 털이 자세히 보였다.


그 옆에는 코를 박고 죽어있는 듯 보이는 고양이(조이다.)가 있었고, 또 한 마리는 조금 떨어진 바닥에 있었는데, 박스가 젖어있어서  '왜 저기에 누워있지?'라는 의문을 품게 만들었다. 

3마리였다.


며칠 전 어미 치타가 가까이 못 오게 막아서 마리 머리를 보고 마리 이상이구나 짐작만 했는데, 마리였나 보다.


출산 2개월 만에 발정이 나서 탈출한 치타가 기어이 교미를 하고 임신을 해서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좀 닫혔었다. "야생성이 강한 너를 내 어찌하리...' 하는 마음이었다. 그래도 그냥 두면 안 된다는 생각이었지만 당장 내가 어찌해 줄 수 있는 공간도 땅도 없어, 가만히 두고 볼 수밖에 없었다. 가장 중요한 건 치타가 원하지 않는다는 것.


그러던 어느 날 출근길에 날씬한 모습을 하고 나타났길래, 어딘가에서 조용히 출산을 했는데, 이번에도 집주인이 새끼들을 동물 보호 센터 등에 신고해서 혼자 나타났나? 하는 생각에, 치타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이고 불쌍한 것, 여기 근처에서 낳았으면 내가 도와주기라도 했지. 사람들이 새끼 데려가 버렸잖아."


그리고 차를 타고 나오는데, 치타가 웬일로 멍 때리고 가만히 앉아 생각을 하는 것 같은 뒷모습이 백미러로 보였다.


보통은 허겁지겁 먹이를 먹는데 말이다.


그리고선 새끼들을 내가 사는 건물 지하로 옮긴 것 같다.

마치 나에게 보여주려는 듯이 말이다.


늦은 장마철, 비가 오는 날들이 계속되고, 계단 창문을 통해 빗물이 지하까지 흘러갔는지 바닥이 젖어버렸나 보다.


건물 현관은 늘 기본적으로 닫아 놓기에 화장실을 갔다가 혹은 사냥을 갔다가 다시 새끼들이 있는 곳으로 못 들어간 것  같다.


체온이 떨어져서 죽었을까...?


지하상가 캣 대디분은 내가 그곳에서 새끼들과 어미를 기르는 줄 알고, 나에게 항의를 한 것이었다.


쉬는 시간에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얘기했더니, 일단 알았다고 끊었다.


퇴근이 늦어져, 방 2개로 이사하기 전 잠시 머물던 오피스텔에 있다가 이틀 뒤에 가보았더니, 시체들이 그대로 있었다.


헐... 그 전화의 의미는 '먹이를 주는 네 책임이니 네가 치워라.'라는 뜻이었던 거였다.


그런데 이상하다. 2마리만 있다.


일단 이미 굳어서 썩기 시작한 시체를 치웠다.

예전 같으면 생각지도 못할 일이다.


끔찍하고 무섭기도 한 죽음의 모습  앞에 용기와 인내가 필요했다.


그럼 한 마리는 어디로 갔지? 어미가 데려갔나?

집에 와서 재택근무를 하는데, (사실은 휴가ㅜ) 계속 의문이 끊기질 않고 지하 계단으로 다시 내려가 봐야겠다는 감동이 들었다.


움직임이 없으면 자동으로 꺼지는 조명 아래 핸드폰 손전등을 켜고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뭔가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난다.


'그래! 여기 살아 숨어있었구나~!!'


나는 보물을 발견한  듯 무거운 박스를 살짝 움직여 소리 나는 쪽 구석을 뒤지기 시작했다.


조명을 비취니 반대 방향으로 숨는 꼬리가 보인다.


주택 인테리어 공사 후 남은 자재들과 상가 판매품 박스들과 벽 사이에 숨어서 요리조리 나를 피해 다녔다.


퇴로를 차단하고 접근성이 좋게 약간 재배치를 하고 나서 한 손에 잡을 수가 있었다.

'요놈! 잡았다!'


집에 오자마자 욕실에서 씻겼다. 수건으로 털을 닦아주고

혹여나 전염병이 있을 수도 있어서 다른 오피스텔로 급히 옮겨왔다.


(이때 다다와 보보가 삐진 것 같다.)

조이는 내가 회사에 가면 집에 혼자 있는데도 숨어서 안 나오고, 먹이도 거의 안 먹는 것 같았다.

그냥 숨는 게 아니고  공간에서 가장 체온을 아낄 수 있는 공간에 들어가 있다. 바로 공간 중앙 책상 밑 구석에 놓아둔  박스 위다.


혼자 살아남은 조이가 기특하기도 하고 안쓰러워서 신경 써서 놀아주는데, 금방 쾌활해졌다.

2룸으로 이사하고 다시 만난 다다와 보보는 조이를 보고 하악거리고 때리기까지 했다.


출근하면서 혹여나 조이가 죽을까 봐 걱정했는데, 일주일이 지나니 조이가 오빠들을 평정했다.


기우가 지나쳤다. ㅎㅎㅎ


배 위에 올라가 자다 찰칵 소리에 깼다.


막내 자리 뺏겨 힘든 다다, 옆구리를 차지했다


다리 베고 누운 보보


사이가 좋아진 조이와 다다


보보 다리 베고 누운 조이



잘 때만 천사 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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