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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음 Oct 23. 2021

 생명은 그 자체로 존엄받아야 마땅합니다.

추석 명절 연휴 중에 있었던 일이다.

내가 애정 하는 길고양이 치타와 새끼 라니, 랭이 그리고 아빠 고양이 젖소에게 먹이를 주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기분이 좋았는지 젖소가 나를 따라왔다.

평소 같지 않은 젖소의 행보에 왠지 불안한 마음이 들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건물 1층 현관에서 처음 보는 모녀와 맞닥뜨렸다.

사실 몇몇 집을 제외하고는 서로 얼굴을 잘 모른다. 아마도 이사온지 1여 년 정도 되는 것 같다. 다짜고짜 나에게 다가오더니  “고양이 밥 주세요?”하고 묻는다. 나는 질문의 의도가 좋지 않음을 직감했지만, “네-”하고 조금은 수줍게 대답했다. 그랬더니, 이어지는 반응이 가관이다.


“흐규!(이 의성어를 어떻게 표현하기가 어렵다.) 여기서 고양이 밥 주지 마세요!”

신경질적인 반응에 적잖이 놀랬다.

그동안 건물 내에서 불만이나 불평을 표시하시는 걸 몰랐다가, 직접 맞닥뜨리니, ‘아!,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하는 생각과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그런데 자기 의견을 표현하는 거침없고 예의 없는 태도에 화가 났다. 나도 공손하게 대답하고 양해를 구할 마음이 사라졌다.


나 : “여기서 안주거든요?!”

여자 : “아니, 얘(젖소)가 자꾸 여기 와서 운단 말이에요!”

나 : “여기는 얘가 지나가는 길이에요!”

여자 어머니 : “얘! 말이 안 통한다야. 가자!”


그러고는 둘이서 합세해서 나를 대화가 안 통하는 사람을 만들고서 자리를 떠났다.


정말 하나도 가감 없이 딱 이렇게 대화가 오갔다.


시골 같은 환경의 산동네라 밤에는 정말 고요하니 고양이 한 마리가 울어도 굉장히 신경에 거슬린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길고양이 밥 주는 것에 대한 서로의 의견이 다르다는 것을 기본적으로 알고 접근해야 하지 않을까?


하라, 하지 마라는 그 누구도 강요할 수 없는 문제다.

주택 건물 입구 반대편 상가 쪽에서 급식을 하고 있는데, 적극적인 젖소가 가끔 주택 쪽에 와서 울어댄다.

차 밑에 숨어 있다가 내가 퇴근했을 때 시야에 보이면 울어댄다.


거주민들에게 폐를 끼칠세라 가슴을 졸이며 급히 옷을 갈아입고 먹이 가방을 챙겨 나가는데, 이때 나를 보면 다시 울어댄다. 이렇게 의사 표시를 해댄 것도 몇 달 되지 않는다.
그동안은 사람을 경계하며 피해 다녔다. 그렇다고 시끄러운 원인이 먹이를 주기 때문일까?
오히려 제때 아무도 챙겨주지 않기 때문이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쓰레기를 뒤져가며, 먹이 영역을 지키기 위해 동네 고양이들과 싸우느라 시끄러웠을 것이다.


게다가 젖소가 우는 시간은 정말 수분도 아닌 나에게 의사를 표시하기 위한 잠깐의 시간이라고 말하고 싶다.
통역을 하자면 "밥 줘"이다.

바로 옆에 카-정비센터에는 묶여 키우는 큰 개 두 마리가 있다.

밤에 작은 소리만 나도 짖어대는데 온 산이 울릴 정도다.

그 개 주인에게 찾아가서 키우지 말라고 한 적이 있는지 묻고 싶다.

주인이 없는 동물은 울지도 못한 다는 말인가?

그리고 아래층에 사시는 분 중에 사람이 먹는 참치캔을 가끔 주시는 분이 계신다. 아마 젖소가 울어대니 입막음용으로 현관에서 주시는 것 같았다. 궁여지책이라 주고 나서 캔을 치우지 않는데, 이 여자분은 이걸 내가 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이 동네는 근처 절에서 가끔 시주를 하라고 찾아오는 분이 계시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집에 아무도 없는 척하고 반응을 하지 않는다. 혹여 핸드폰 벨소리가 들릴 새라 얼른 무음 모드로 바꾸고 숨을 죽이고 있는 시간이 여간 힘든 게 아니다.


그래서 무언가를 요구하는 소리에 반응하지 못하는 게 스트레스의 요인 중 하나라는 것도 안다.

그러나 자기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다고, 길고양이가 해코지를 할리가 없다.
길고양이가 의도하지 않더라도 그 존재 자체로 인해 해로운 점을 이야기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해가 있을 수 있다. 그런데 바로 그 점을 관리해야 할 주체가 사람이지 않는가?


사랑받고 싶은 것도 당연하고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살아있는 생명이라는 걸 부디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산책길 질투 많은 젖소, 치타를 경계하고 있다
벚꽃이 흩날리는 어느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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