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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음 Nov 23. 2021

나를 따르는 고양이들

사랑의 사연

주변 사람들에게 길고양이 밥을 주고 있다고 얘기하거나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고 있을 때 상가 분들이 오셔서

‘고양이를 한 마리 사서 기르지 그러세요?’한다.


나는 치타라서 치타 새끼라서 좋은 거다.

이유는 '어쩌다' 시작되었지만 ‘정이 들어서’, ‘같이 한 시간 동안 사연이 생겨서’, 그리고 ‘치타, 젖소, 호랭이가 나를 따르기 때문’이다.


젖소는 아직도 경계를 많이 하지만, 굉장히 애교 있는 성격이다. 먹이를 주기 전에 내 다리에 바짝 붙어 목의 페로몬을 묻히고 엉덩이를 들이민다. 충분히 두드려 주고 애정을 표현해줘야 먹이를 먹는다.

먹다가도 다른 고양이에게만 애정을 표현하면 다시 와서 들이민다.

치타는 여전히 콧대 높은 아가씨다.

만지는 걸 굉장히 싫어한다. 그나마 밥 먹을 때는 가능하다.


호랭이는 그동안 많이 커서 이제는 ‘야옹, 야옹’하면서  요구사항이 많다.

사냥놀이가 부족하면 내 다리에 매달리기도 하고, 건물 현관까지 쫓아온다.

‘빨리 놀아주고 들어가야지!’하는 마음으로 장난감을 세게 빨리 흔들면 ‘획’ 잡아 물고 차 밑으로 들어간다.

자기를 무력으로 대하는 것에 동의하지 못하는 느낌이다.


사냥도 잘해서 새끼 쥐를 잡아먹기도 하고(머리부터 오도독 씹어먹는 모습을 보는 게 좀 힘들었는데, 꾹 참았다.) 혼자서도 집도 잘 지킨다.


지금은 치타, 젖소와 함께 산책길에 따라다닌다.

산책길에 따라나서더니 자기들끼리 신났다


치타가 영원히 나와 함께 했으면 좋겠는데, 묘생이 짧으니 그 새끼를 통해서라도 제2의 치타를 계속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내가 너의 후대에 복을 주고 밤하늘의 별처럼 많아지게 하리라’하신 그 말씀이 생각나면서 그 마음이 이해가 갔다.

사랑스러우니 그 유전자를 통해 제2의 아브라함을 보고 싶은 게 아녔을까?


치타가 낳은 새끼들이 다 사라지고 한 마리만 남으니 너무 아쉽다. 또 낳아줬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 물론 마음만 그렇다.


치타는 가을 내내 수컷을 피해 다니는 건지, 추워서 그러는 건지 혼자 건물 지하실에 몰래 들어와서 내가 집에서 내려올 때만 지하에서 올라와서 대기하고 있다가 나랑 같이 상가 쪽으로 가곤 했다.


어떻게 여우 같이 알고, 내가 외출했다가 집으로 올라갈 때는 안 나온다. 발소만 듣고도 내가 내려오는 걸 알고 1층에서 대기하고 있다.


내 발소리에도 반응하는 이 작은 동물이 어찌 사랑스럽지 않을 수가 있으랴.


'하나님도 자신을 알아보고 그 말씀에 순종하며 늘 부르고 찾는 아브라함이 사랑스럽지 않으셨을까?' 생각해 본다.


상가 캣대디 분이 준 사료가 그릇에 남아있어도, 내가 주는 걸 꼭 먹는다.

사료를 주는 순서도, 젖소보다 먼저 줘야 된다는 걸 나중에 알아차렸다.


치타 영역이니만큼 치타 우선이다.

나도 하나님께 그런 존재가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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