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탄 비행기가 착륙 직전 연료가 부족하다면

막다른 골목에 마주 선 자아

by 맑음


얼마 전 베트남에서 아시아나 비행기가 착륙 허가를 받지 못하고 회항(다시 돌아오는 것)했다는 기사를 듣고, 비슷한 경험이 생각났다.


중국 도착 20분 전 모든 착륙 준비를 하고 승무원들도 승무원 자리(Jump seat)에 앉았다.


그런데 비행기 고도가 낮아지지 않고 계속 선회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상하다.



“손님 여러분 저는 기장입니다.

우리 비행기는 현지 시각 1시 20분에 상하이 국제공항에 도착 예정이었습니다만 이착륙하는 비행기가 많아 착륙이 지연되고 있습니다. 우리 비행기의 착륙 순서는 00번째이며, 00분 내에 착륙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여러분의 안전을 위해 최선을....


Ladies and gentelman, This is captain speaking.

...”




한국어 방송 도중부터 승객들의 수군거림이 시작되고,

웅성거리는 승객들의 불만의 목소리들이 한 데 뭉쳐 들려온다.


아~!!, 뭐야~!!, 어떻게~!! 등등

손목시계를 쳐다보는 비즈니스 맨들...


그나마 다행인 건 착륙 지연이라 00 항공 왜 이래?라는 얘기는 들려오지 않는다.


이륙 지연이었다면, 타 항공사 이륙 여부를 핸드폰으로 조회해 보고 비교하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는 “**항공은 이륙했다는데, 00 항공은 왜 이래?” 하는 얘기가 반드시 나온다.


상하이 출장을 많이 다니는 비즈니스 맨들이라면 중국 공항에서의 이착륙 지연이 흔한 일임을 알 것이다. 중국 공항에서 이륙 시에 한 시간 지연은 기본일 때가 많았다. 그래서인지 승무원을 호출해 불만을 얘기하는 승객은 없었다.


기장님들에게 들은 바로는 이착륙 순서에 중국 항공기를 우선 배치한다고 한다. 게다가 중국식 영어 발음(물론 한국식 영어 발음이 있겠지만)이 잘 안 들릴 때도 많아 커뮤니케이션에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고 한다.


비행기가 계속해서 공항 상공을 원을 그리며 선회하느라 동체가 한쪽으로 심하게 기울어진 상태다. 웬만해서는 멀미를 하지 않는 나도 약간의 메슥거림이 느껴진다.


몇 분 후 다시 기장님의 안내 방송.


“우리 비행기는 00번째 착륙을 기다리고 있었으나

연료가 부족한 관계로 인근 군사 공항으로 회항해 착륙을 시도할 예정입니다.


상황이 정해지는 대로 다시 한번 알려드리겠습니다.”


상황을 인지한 승객들, 이번에는 그 누구도 말을 입 밖으로 꺼내는 자가 없다.


놀람과 당황과 침묵...


관제탑에서 착륙 허가가 나지 않고, 연료가 부족해서 타공항으로 가야 할 정도라는 게 납득이 되지 않는다.

절차상 위험에 대비해 미리 대체 공항에 착륙을 하겠다는 얘기이지만, 이 역시 위험에 직면해 있는 상태인 것 같아 불안하게 느껴지고, 과연 안전하게 착륙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과 이후에 이동할 교통편의 어려움 등 여러 가지 생각이 동시에 떠오른다.


기장들도 착륙할 공항의 활주로 길이, 노면 상태 등을 처음으로 접하게 되고, 기류의 정보와 함께 맨몸으로 느끼며 부딪혀야 하는 상황에 부담감이 클 수밖에 없다.


안전만을 생각해야 하는 짧은 시간에 착륙 후에 지상 이동과의 연결 문제로 회사와 연락하는 등의 업무들이 연달아 있게 되면, 정말 곤혹스러울 것이다.



승무원들도 이미 자신의 자리 (비상구 옆 접히는 의자)에 앉아 안전벨트를 매고 착륙을 기다리고 있는 시점이라,

착륙 이후의 구체적인 절차에 대해 물어보려고 호출 버튼을 누르는 사람은 없었다.

사실 갑작스러운 변경이라 승무원들이 안내해 줄 수 있는 구체적인 내용은 없다.


모두들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첫 번째 방송 후와 대조적인 모습에 놀랍기도 했지만, 필자 역시 숨을 죽이고 현재 상황에 초집중 상태가 되었다.


누구나 비상이라는 표현에 이 비행기의 운명과 함께 놓인 자신의 운명을 놓고 내가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물론 승무원은 비상시 외쳐야 할 샤우팅(발목 잡아! 자세 낮춰! 머리 숙여!_또는 충격방지 자세!)과 기장과의 커뮤니케이션, 내&외부 상황 판단, 비상구 확보, 항공기 도어 작동법, 탈출 지휘 방법 등을 생각해야 한다.


1년에 한 번 이루어지는 안전 교육이 머리에서 빠르게 스쳐간다. 상황이 닥치면 그에 맞게 자동으로 몸을 움직이게 할 것이다.


’과연 이 비행기가 안전하게 착륙할 것인가?’

다행히도 불안한 느낌은 들지 않는다.


조그마한 불편함에도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던 많은 사람들이 극한의 상황이 되니 신을 믿는 자이던 모르는 자이던, 일상에서는 죽어있던 4차원의 감각이 최고치가 되어 처한 상황에 대한 기류를 읽어 내느라 안테나를 강하게 뿜어내고 있는 듯하다.


적막한 기내 안, 숙연함마저 느껴진다.

인간은 누구나 죽음 앞에서는 절대자 혹은 신을 찾을 수밖에 없구나 깨달아진다.


그 어떤 불만도 상황도 생각나지 않는다.

오로지 발가벗은 자신의 자아와 마주한 기분이 이러할까?


다행히 이날 비행은 중국 공항의 긴급 착륙 허가로

무사히 착륙할 수 있었다.


비행기에서 내릴 때에도 그 누구도 불만의 목소리를 내지 않고 조용히 내렸다.


기억에 남는 비행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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