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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음 Dec 08. 2021

치타가 매일 안 보이니 불안하다.

우아하고 아름답게 나이 들고 싶다.

2021.12.02
새끼 랭이에게 자리를 내준 것인지, 이틀에 한 번 삼일에 한 번 꼴로 보인다.
(그러는 사이에 랭이가 사라졌다.)

잔뜩 굶다가 나타가 허겁지겁 사료를 먹는다.


치타를 데려가 볼까 하고 준비해둔 이동장에 먹이를 넣고 기다려 봤는데, 빙빙 돌기만 하고 절대 들어가지 않는다.


밥을 먹고 어디론가 가길래 따라가 보았다. 주택가 사람은 다니지 않는 채광을 위해 떨어뜨린 공간으로 들어갔다. 잡초를 헤치고 조심스럽게 따라가 봤다. 작은 동물을 키웠다가 내놓았는지 녹이 슨 철장이 달린 나무상자도 있었다.

두려움이 많은 치타에게 인적이 닿지 않는 공간이라 안성맞춤인 것 같았다.

그런데 처마가 없으니 비를 피할 공간이 없는 게 흠이었다.

비가 오면 아마도 바로 옆 건물 필로티 주차장에 차 밑으로 숨는 것 같았다.


'나에게 공간을 보여주기 위해 온 것인가?' 생각하고 있는 사이에, 순간 치타가 시멘트 바닥에 고인 물을 핥아먹는다.


 ‘헉! 이러다 병이라도 걸려서 갑자기 죽으면 어떡하지!’하는 생각이 들어 너무 걱정이 되었다. 안절부절못하며 알아듣든지 못 알아듣든지 말려본다.


길고양이 평균 수명이 3년이라는데, 더러운 물도 그 요인 중에 하나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하니 치타가 오래오래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

 



노화를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닌 질병으로 인식하고 연구하는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러나 나는 늙지 않고 죽지 않는 헛된 꿈은 꾸고 싶지 않다.


잘 관리할 수는 있겠지만, 우리는 유한한 세계에 살고 있고 언젠가는 죽어야 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한계가 있는 육신의 삶인데도 불구하고 신은 왜 인간을 창조하셨을까?

내가 신이라면, 약 100년 동안 인간들끼리 잘 먹고 잘 살라고 그 엄청난 창조의 힘을 쏟아붓지는 않았을 것 같다.

노년기에 들어가면 인생무상을 말하는 것을 자주 보게 된다.
반면, 젊은이들은 태어난 목적과 배경 때문에 시험에 빠지는 일도 자주 본다.

조금 적극적이고 열정을 가진 자들은 대부분 돈이나, 지위, 명예, 인기 등의 목표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을 본다.


하지만 나는 그 어떤 것도 흥미가 없었던 것 같다. 늘 진리를 찾고 진정한 자유를 찾으며, 아주 어릴 적부터 인생을 가르쳐 줄 자를 찾았던 것 같다. 초등학교, 중학교 때 생각한 내용들이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누가 가르쳐 줘서가 아니라 그냥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유일신, 창조주로 믿었던 것 같다.


많은 자들이 자기 주변의 하나님을 믿는 자들 중에 좋지 않은 예를 접하거나 관계가 어긋나면서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경우도 있는데 참으로 안타깝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에는 누구나 공평한 조건으로 태어났고, 하나님과 나 자신의 관계는 1:1로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최고로 여기고 살고 싶다.


많은 사람들이 미래를 점치며 예언하지만,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삶 가운데 모시고 사는 삶에 기쁨을 누리는 시대가 오기를 바란다. 이것만이 희망이며 영원한 행복을 보장하는 길임을 믿는다.


인생의 모든 가치의 기준이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바로 설 때 우리가 원하는 이상의 세계를 이룰 수 있음을 믿는다.


요즘 창세기를 다시 읽고 있는데, 6000천 년도 전에 살던 원시 부족들은 어떻게 살았을지 생각해봤다.

조선시대만 해도 기대 수명이 4-50대였고 어릴 적 나의 조부모는 환갑잔치를 했으니(60만 넘어도 축하해주는 시대가 있었다.) 그 전전 시대는 더 짧았다는 걸 짐작해 볼 수 있다.

아담과 하와가 살던 시대는 기대 수명이 몇 살이었을까?


 살에 아기를 낳고 몇 살까지 살았다는 걸 기록한 걸 보면 몇 살까지 사는 것이 아주 중요한 시대였던 것 같다.

그야말로 길고양이처럼 외부환경과 질병과 싸우며 생존을 위해 살아가야 하는 시대였을 테니 말이다.


그중에 가장 강한 것이 종족 번식의 욕구와 의무가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하지만 인류는 원시인 같은 삶에서 머무르지 않고 진화와 성장을 거듭하며 그 생각의 차원이 더욱 높아져 문화와 예술과 과학을 발전시켰고, 문명을 누리고 살고 있다.
인간이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하나님의 허락과 생각의 축복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래 사는 것이 자랑이 시대에서 벗어나 성장한 것 같다가, 어찌 된 영문인지 경제적 부를 누리는 것이 자랑인 시대로 가고 있으니, 시대의 정신과 민족의 정신이 조금은 아쉽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인간으로서의 도리와 인생을 깨닫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나라다.
그래서 민족 고유의 혼이 발달한 문화가 지금은 전 세계를 휩쓸고 있다.


사랑하니 고양이 한 마리도 떠나보내기 힘든데, 생명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이시랴~!!
영원히 존재하는 영을 위해 육도 창조하셨음을...
하나님과 같이 '온전하라'하셨는데, 동물도 인간과 가까이 지내는 동물이 지능이 높고 잘 통하듯이, 하나님을 사랑해야 가장 많이 닮고, 가까이 살 수 있음을 생각해 본다.

벌써 중년의 시간이 지나가고 있다.
나의 인생도 조금은 성숙해져 있기를 바라본다.  


치타와 랭이


산책에 늘 함께해 준 고마운 치타




웬일로 애교를... 기분 좋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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