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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우리 딸들이 애를 낳지 않았으면 좋겠다

왜 달리는지도 모른 채 달린다, 남들이 달리니까

by 루나리

저번주엔 발표 때문에 글을 쓸 수 없었다. 잠시의 여유도 주어지지 않았다. 아이들은 깨어있는 시간 내내 나와 살을 맞대고 나를 불렀다. 엄마, 엄마, 엄마 하루 500번은 들은 것 같다. 아이들은 나의 빈자리를 주말에 모두 찾고 말겠다는 일념으로 나를 찾았다.

상황이 이러했지만 발표준비는 부담됐다. 마냥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어 남편의 푸념과 불만을 뒤로하고 발표준비를 하러 갔다. 4시간의 시간이 겨우 주어졌다.


내 생에 마음껏 봄날을 즐긴 적이 몇이나 될까?

창 밖으로 보이는 봄날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의도하지 않게 반수를 하고, 학교를 다녔기에 봄이 온다는 것은 곧 중간고사가 다가온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래서 마음 편히 봄을 만끽한 적이 거의 없었다. 회사원인 된 지금은 업무 때문에, 이제 아이들이 크면 아이들의 시험을 준비하느라 봄을 또 느끼지 못하겠지.


내 삶이 문제일까,

삶에 임하는 나의 태도가 문제일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월요일을 맞이했고 헐레벌떡 발표를 겨우 끝마쳤다.


1월 발표와 달라진 점은 하나. 고뇌의 깊이, 고민의 흔적이다. 실력 있는 팀장님이 봐주신 덕에, 1월 발표는 무난히 넘어갔는데 이번엔 팀장님이 봐주실 수가 없었다. 내 준비가 너무 늦었기 때문이다. 발표에 할애한 시간은 도합 4시간이었다. 이런데 무슨 깊이와 고민을 논하겠는가.


나 스스로 납득할 만큼 잘했는가가 기준이었다. 대답은 ‘놉’.


그런데 정말 어쩔 수가 없었다. 단 5분도 쉬는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 집에 오면 6시 30분. 애들이 잠자리에 드는 시간인 10시까지 애들보다 먼저 잠자리에 들기 일쑤인 나날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발표를 끝마치고 한숨 돌리고 앉았다. 아쉬웠다. 다음 발표엔 잘해야지 속으로 생각했다.


워킹맘 복직 100일 차, 나의 하루는 이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전화가 왔다, 어린이집에서.

어? 불안하다.




“(무거운 목소리)ㅇㅇ어머니, 안녕하세요. 어린이집입니다 “

“(불안함 감지) 네, 안녕하세요. 그런데 무슨 일로… “

“(10초 뜸 들이다) 어머니, 사실은 상담할 때 말씀드리려 했는데요….”


이야기인즉슨, 아이의 사회성이 걱정된다는 말이었다.


우리 아이는 연말생이다. 그것도 아주 극 연말생이다. 그리고 빠르지 않은 아이이다. 그래서 복직을 빨리 할 수가 없었다. 빠른 아이들에게 치이는 모습을 볼 자신이 없었다. 조금 더 키우면 낫지 않을까 싶어 최대한 있는 휴직, 없는 휴직을 당겨서 썼다. 키가 크고 힘이 세면 덜 치인다는 말에 삼시세끼 이유식을 해 먹였다. 미련할 만큼 아이에게 소고기를 먹였다. 때리는 것도 싫지만, 맞고 오는 것은 더 싫었다. 대근육을 발달시키기 위해 매일매일 밖에 나가 뛰어았고고, 시장 도서관 백화점 공원 여기저기 다니며 아이와 추억을 쌓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데 아이는 내 마음만큼 빨리 자라지 않았다. 아이는 순딩이도 이런 순딩이가 없었다. 아이들에게 매일 뺏기고 눈물을 흘렸다. 성대가 갈라져라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고 아이에게 이런저런 성장을 유도했지만 결국 아이는 언어치료를 시작했다. 마음이 찢어질 듯 속상했다. 역시 사람을 하나 키우는 것은 엄청나게 힘든 일이다. 나는 그 깨달음 하나 얻고 복직했다.




통화가 끝났다.


머리가 새하얘진 나는 여기저기 조언을 구하기 시작했다. 어린이집 선생님, 언어치료 선생님, 어린이집 원장님 두 분 모두 ‘또래와의 의사소통’을 얘기했다. 역시, 전문가는 달랐다.


맞다. 나는 극 내향형의 사람으로 관계를 맺는 게 쉽지 않은 사람이다. 그래서 엄마들과의 관계를 맺지 않았다. 아이가 잘 해낼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내가 친구들을 만들어주지 못해 우리 아이는 아이들이 무리 지어 놀 때 혼자서 겉돌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마음이 아팠고 미안했다. 다 나 때문인 것만 같았다.


통화를 하고 자리에 앉았는데 문득 일을 하고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휴직기간에 이런 일이 있었으면 모두 내 탓인 것처럼 힘들어하고, 가슴을 쿵쿵 치며 속상해했을 것이다. 그러기엔 시간이 너무 모자랐다. 일단 오늘 해야 하는 일을 해치워야 했다. 고민을 뒤로한 채 퇴근을 했다.


그날 밤 나는 남편과 12시까지 끝기지 않는 무한정의 대화를 했다. 힘들다, 어떡하지, 어렵다, 어떡하지, 미치겠다, 어떡하지 무한정의 대화를.

맥주 한 잔에 오고 가는 삶의 무게와 육아의 어려움이 오롯이 느껴지는 밤이었다.




다음날부터 나는 급히 내 주변의 또래 아이들과 약속을 잡기 시작했다. 또래와의 경험이 중요하긴 하지만, 고요한 어린이집 단톡방에 ‘같이 놀아요’ 카톡을 남기기엔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내 친구들, 그리고 동료들에게 만나자고 했다. 두 건의 약속이 잡혔다. 벚꽃이 다 떨어지고 나면 음악 축제와, 공원 산책을 할 예정이다. 동료 자녀와 우리 아이와 함께.


그리고 유튜브를 뒤지기 시작했다. 역할놀이, 엄마들과 관계 등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나는 어떻게든 아이의 사회성을 끌어올려야 하는 미션을 받았다. 일단 동네 놀이터부터 시작할 예정이다. 그곳에서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과자를 건내자. 어떻게든 아이의 사회성을 끌어올려야 한다.


아 그런데 생각만 해도 너무 피곤하다, 벌써부터.


놀이치료도 받는다. 놀이치료는 40분에 6만 원이다. 6만 원이면 내 시급을 훨씬 뛰어넘는 금액이다. 돈 벌어서 육아에 쓴다. 공부도 아니고 이젠 노는 것도 배워야 하는 세상이 된 것이다. 워킹맘이니 돈으로 바른다 치지만 아까운 것은 어쩔 수가 없다. 하지만 나에겐 시간과 에너지가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되, 안 되는 것은 돈을 쓰자.


월급통장이 나를 보며 외치고 있었다.

’ 너 돈 그렇게 쓰면 안 돼!!‘라고.


언제쯤 이런 생활이 끝날까? 겨우 100일 했을 뿐인데 10년은 한 것 같이 지친다. 남들이 ‘벌써 4월이에요 “라고 할 때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제 겨우 4월이라고. 무려 3분기나 남았다고, 지긋지긋하다고.




나는 우리 딸들이 아이를 낳지 않았으면 좋겠다.

시대가 지날수록 부모가 해야 하는 일이 점점 많아진다. 휴직 때는 어찌어찌해 나갔는데, 지금은 자신이 없다. 무엇보다 아이에게 쏟을 에너지가 없다. 육아가 즐겁다고 외치던 나는 없다. 애들이 울 때도 머릿속으로는 회사일을 걱정하는 회사원이 있을 뿐이다.

이젠 아이의 인간관계까지 엄마가 만들어줘야 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어린이집 원장님이 그랬다. 120%를 쏟아야 한다고. 그것도 엄마 주도 하에 말이다. 걸으면 뒤쳐진다. 다른 아이들은 달려가고 있다. 엄마아빠의 손을 꼭 붙잡고.


또래와의 노출빈도를 늘리자는 단기 목표를 잡았으니, 몇 달간 주말에도 사회생활을 하며 지낼 예정이다. 그리고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면 다시 나로 돌아갈 것이다. 안 그럼 살 수가 없을 것 같다, 벌써부터 긴장된다. 놀이터에 애를 데리고 가는 것이. 주말에 회사사람을 만나는 것이.


‘육각형 사람’을 키우고자 하는 것은 아니고, 그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길 바라는데 갈 길이 멀다. 삶은 점점 풍족해지고 편리해졌는데 더 살기 팍팍하고 퍽퍽해졌을까, 마치 퍽퍽 마른 닭고기 살처럼 말이다.


육아란 고된 고난의 행군같다. 육아로 인해 행복의 깊이가 달라진 만큼, 삶의 고뇌도 깊어졌다. 우리 아이들의 어린 시절을 온전히 즐기지 못하고 허덕이고 있다.


언제쯤 이 생활이 끝날까, 오늘도 서울역에 내리며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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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