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 상담까지 받고 나서 한바탕 감정의 소용돌이에 휩싸였다가, (아이가 아니라) 나 자신을 돌아보기 위해 사실 어떻게 기록해야 할지 꺼내놓기 쉽지 않지만, 어렵게 글로 적어보려고 한다.
영재원 수업을 듣기 위해서는 지능지수 상위 3% 안에 들어야 하는데, 내 문제는 가기 전부터 사실 이걸 당연히 통과할 거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모든 괴로움이 시작된다.
당연히 통과할 거라고 생각했던 이유는,
1. 나와 남편이 공부를 잘했기 때문이다. (ㅋㅋㅋ) 2. 아이가 언어적으로 탁월했고, 생활에서 보이는 여러 면들도 영민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은 2보다는 1의 이유로, ‘너도 당연히 그래야 되지 않니?’가 내 마음을 가득 채웠었다.
나는 학령기에 늘 공부를 잘했고, 소위 영재였고, 가장 좋다는 대학을 나왔고 그런 내가 엄마가 되어서, 아이에게 많은 신경과 정성으로 아이를 키웠는데, 당연히 너는 이러이러한 탁월한 아이여야 하지 않니? 가 내 마음속에 가득 차 있다는 걸 어제 몸져눕고 나서야 깨달았다.
인터넷에서, 아니면 주변에서 그 집이 그랬다더라라고 들리는 아이 잡는 엄마의 새싹이 바로 거울 속에 있었음을 보게 된 것이다.
사실 어제는 힘이 쭉 빠져서 시들시들 시든 이파리같이 잠들었고, 오늘 새벽에 일어나 옆에 180도 돌아 누워 내 얼굴 쪽에 양발이 와있는 아들을 물끄러미 보면서 생각했다.
언제나 자기 전 “제이든은 하나님이 엄마아빠에게 보내주신 귀한 선물, 엄마아빠는 제이든을 세상에서 제일 사랑해, 엄마아빠는 언제나 네 편이야”라고 말해주는데,
사실은 내 마음은 아들이 자랑스러울 때만, 남들에게 자랑할 수 있을 때만 귀하고 소중하다고 생각했나 보다. 바로 그게 내가 성장기에 마음 붙일 곳 없이 힘들었던 이유였음에도 내가 그걸 되풀이하려고 잔뜩 드릉드릉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고작 만 4세 4개월, 한국나이 갓 6살.
언어가 탁월했던 아들은 가르치지 않아도 알아서 한글을 뗐고, 네이티브도 아닌 엄마의 부족한 영어로 엄마표 영어를 해도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정도였다. 그래서 언제나 기쁨이고 자랑이었던 아들.
(실제로 언어이해는 0.5%가 나왔다 - 내 안의 여러 “나” 중에서 “아이 잡는 엄마”는 이것만 붙들고 있다 ㅋㅋㅋㅋ)
아이가 더 크기 전에, 한번 이렇게 여러 가지를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어 검사비에도 불구하고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검사별 각 항목 중 아이가 높지 않은 평가를 받은 부분에서도 생각이 많은 지점들이 있는데 그건 별도 글로...
오늘 새벽 자고 있는 통통하고 예쁜 아이를 물끄러미 보다가 서재에 와서 밀리의 서재 연간구독권을 사고 (소개해 주신 티몬 어쩌고 할인으로 7만 원대!)
새벽달님의 “아이 마음을 읽는 단어”를 다시 읽었다.
아이에 대한 욕심이, 존재만으로도 충분히 사랑스럽고 고맙고 예쁜 내 아이를 제대로 볼 수 없게 만들었다. 수시로 실망했고, 판단했고, 단정 지었다. 아이가 내 뜻대로 따라오지 않는 것이 나의 무능 때문이라고 자책했다. <아이 마음을 읽는 단어>, 새벽달(남수진)
‘엄마 됨’에 필요한 것은 자격이 아니라 사랑임을. ‘내 새끼 귀엽다, 예쁘다, 애쓴다.’ 해주는 그 마음이면 족하다는 것을. <아이 마음을 읽는 단어>, 새벽달(남수진)
내가 원하는 결과를 받아오지 않았다고 내 아이를 세모눈으로 보거나, 한심하게 생각하거나, 뭘 어떻게 바짝 시켜서(굴려서) 만들어야겠다거나 하는 그 마음부터 버리기.
아이가 더 편안하게 마음을 먹고 본인의 역량을 마음껏 보여줄 수 있도록 내가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지는 한참 다음에 생각하기. 그저 오늘도 예쁘고 귀엽고 애쓰는 아이가 내 눈앞에 있음에 감사하기.
이번 검사는 아이의 지능검사가 아니라 엄마의 마음이 돌밭에 있는지 꽃밭에 있는지 검사하는 엄마마음 검사였나 보다. 주어야 할 것은 사랑일 뿐. 조건 없이 사랑하리라, 언제나 아이 편이리라, 아이의 성과만 칭찬하지 않으리라 엄마가 되면서 그렇게 여러 번 마음먹었지만 어느새 지키지 않았던 내 마음을 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