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의 탈 직장인 방법
우리는 그런 구분을 많이 합니다. 하길 좋아합니다. 모더니즘적 사고가 만든 구분의 방법. 여러가지 복합적인 속성을 갖고 있으나 굳이 뭔가 하나로 규정해야만 하는 버릇. 그것은 오히려 다양한 성격을 설명해주지 못하고 하나의 속성만 '편하자고' 말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하지만 세상 일이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습니다.
아티스트 '자이언티'처럼요. 웹진 '힙합플레이야'와의 인터뷰(2013-05-03)에서 자이언티는 스스로 보컬리스트도 가수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봐도 그렇지 않나요?) 단지 뿌리를 힙합에 두고 있다고 했죠. 처음에 랩을 하다가 멜로디를 만들기 시작했고 멜로디를 만들면서 여러 아티스트들과 작업을 하고 프로듀싱을 하고 결국 힙합 R&B 중심의 그냥 '아티스트'가 되었습니다. 스스로를 기능적으로 '무엇'이라고 규정했다면 지금처럼 기존 음악씬의 클리쉐를 깨는 독특한 시도를 하는 아티스트가 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일전에 쓴 칼럼이 기억납니다. 문을 열기 전에 방에 무엇이 있는지 실제로는 잘 모를 수 밖에 없을 때 단지 방에서 새어나오는 이야기들로 '이 방에 무엇이 있겠구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해 제 생각을 쓴 적이 있습니다. '커리어에 좋은 커리어 패스'라는 제목으로 자리가 아닌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정의하는 게 중요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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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직장 생활을 하다보면 자신의 정체성은 규정 했으나 그것이 오히려 스스로의 성장을 막는 정의로 그치는 동료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자신이 할 일은 할 역할은 여기까지라고 스스로 정한 것입니다. 스스로는 자신의 정의가 전문성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이라고 생각하고 이것에 대해 상사나 동료들과 맞지 않을 때 파열음을 내고 조직을 떠나 버리기도 합니다. 물론 노동법을 어기길 강요하는 범주의 성격으로 직원을 몰아부치는 그런 일에 동조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런 상식적으로 일어나는 비상식적인 일을 제외하고 자신이 무엇이 되고자 하는지에 대한 정의를 내릴 때 조금 더 손을 내밀면 더 경력에 화려한 이력을 남길 수 있고 조직도 성장할 수 있는데 그 '조금 더'를 하지 않는 경우를 말하는 것입니다.
'조금 더'는 참 애매한 단어이기도 합니다. 보통 결과물이 끝이 없는 기획 업무가 항상 '조금 더'라는 말로 야근과 특근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래서 듣기 싫기도 합니다. 특히 회사의 규모가 작아서 다 해야 하거나 상대적으로 '갑'이 아닌 을이나 병,정의 입장에 있다면은 하기 싫어도 조금 더 해야 합니다. 그런 이유들이 한 몫해서 그런 회사를 나가게 됩니다. 물론 못 버티면 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나가기 전에 생각해 볼 것은 있습니다.
자신을 무엇으로 규정한다는 것은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비전을 정의하는 것이지 자신의 기능을 규정짓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전 칼럼에서 '작은 것이라도 전체를 맡아본 경험이 중요하다'는 말은 이것과 궤를 같이 합니다. 자신을 기능으로 정의하면 자신은 기능의 역할이 다하거나 컨텐츠의 변화에 따라 기능의 역할이 시장에서 조정될 수 밖에 없을 때 쓸모없는 일이 되어 버립니다. 기능은 비전을 이루기 위한 개인적, 회사적 도구인 것이지 기능을 잘 한다고 인정받는 일은 세상에 많지 않고 이미 존재하는 것 마저도 보통의 독점적인 기존 지위를 시장 원리에 따라 빼앗기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런 일은 신입 사원이나 기능이 중심이 된 전공을 했거나 기능적 라이센스를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서 많이 나타납니다. 하나의 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주도적인 역할을 맡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게 팀장이고 프로젝트 매니저이길 바라지만 그런 게 모호한 일일 때는 부서와 부서, 회사와 회사 사이의 윤활유 혹은 전달자 혹은 오지라퍼가 일이 되기 위해서는 부득이 필요합니다. 선악을 떠나 현실이 그러니까요. 하지만 인생에서 한 번 승부수를 걸 때는 이런 것을 하느니 마느니에 대한 손익 계산은 필요 없습니다. 보이면 하는 게 맞습니다. 스타트업에서 나는 기획자라서 기획만 하면 좋겠지만 여건이 그렇지 못하니까요.
하지만 비교적 대기업의 신입사원일수록 자신의 영역을 제한 시킵니다. 팀장이 그렇게 하라고 합니다. 일을 배우기 보다는 경영놀음을 배우고 대기업병을 욕하면서 그 중 하나의 역할을 하고 있게 됩니다. 그런 문화에 찌든 조직에서 맞춰 살아가기 위해 저절로 그렇게 되어버립니다. 조각을 보지만 온전한 것을 알고 싶어하는 갈망이 늘 있죠. 조각을 해봤자 전문성이란 건 그런 조직에 처음부터 없었다는 것도 곧 알게 됩니다.
기능 중심적 전공은 보통 라이센스와 많이 연결됩니다. 어떤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자격증이나 어떤 어학에 대한 자격, 재무 기술이나 공학적 지식에 대한 자격들입니다. 이것은 취득 당시에는 그 기능 하나만으로도 시장에서 충분한 가치를 제공해 줄 수 있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자격의 필요를 만들었던 초기 환경에서 시장이 변화되면서 곧 다른 것으로 대체 되거나 그 자체가 필요없는 것으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라이센스를 보유했다는 것만으로 스스로와 주변의 신망 속에 보이지 않는 자신의 바운더리를 만듭니다. 그리고 그냥 그렇게 남게 됩니다. 기능이 주변 컨텐츠와 교류하지 못할 때 점진적으로 가치가 사라집니다.
반대로 라이센스를 가지고 있어도 해당 분야에 새로운 지식이 나오면 50대 부장이라도 배우러 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떤 프로그램을 사용할 줄 알아도 수요자 중심의 프로젝트 수행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수요자의 필요가 계속 바뀌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변화에 적응하는 것인지 알고 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시장도 기존의 기득권을 늘 무너뜨리는 데 최선을 다합니다. 어려운 프로그래밍 언어나 통계 프로그램은 다른 조직 혹은 스스로 상용화 하여 만든 쉬운 버전이 나와서 늘 진입 장벽이 낮아집니다. 예전에 큰 장벽이었던 언어도 기술에 의해 해결되어 나가고 있습니다. 기능은 다른 기능으로 늘 진입 장벽이 낮아지고 있기에 스스로 정한 바운더리는 오히려 자신에게 족쇄가 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기능적 관점으로 스스로의 영역을 제한하는 순간 거기서 성장은 멈춘다는 것입니다. 어디까지나 나의 캐릭터, 캐릭터가 필연적으로 만나는 비전에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고 애착을 갖는 것이 성장을 이루는 좋은 방법입니다.
현재 위치에서 어디로 다음 손을 뻗겠습니까? 그 모습은 지금 하는 일에서 새로운 기술을 배운다든지 연관 업무를 더 알게 되든지 등 기능적인 자신의 한계를 스스로 무너뜨릴 때 가능합니다. 희소성을 가진 사람은 그렇게 만들어집니다. '자이언티'도 인터뷰에서 스스로 희소성이 자신을 키운 방법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시장은 늘 다음을 누군가가 준비함으로써 활력을 얻고 시작 시점에는 희소성을 가진 사람이 주목 받게 되어 있습니다.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라는 책의 교훈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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