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만능주의 #조직개편 #공감 #JAL회생
“그거 보셨어요?”
제인이 뭔가 불만스런 표정으로 말한다.
“인사팀에서 전체 공지를 했는데 점포개발팀을 없애고 담당자들을 재무팀에 넣는다고 하네요.”
“왜 없애는 거예요?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거에요?”
자리에 있던 팀장이 일어나서 대화에 끼어든다.
“그건 말이지, 점포개발팀이 요즘 큰 건물을 임차하자고 제안을 여러번 했는데 회사에서 부담이 되잖아. 그래서 아예 재무팀에 합쳐서 일을 간결하게 끝내자는 거야. 인사팀장 만났는데 업무 프로세스를 단축시키는 게 이번 개편의 핵심이라던데.”
“그런데 그런 내용이 게시판에 없고 단순히 발령 내역만 나와 있어서 직원들이 오해할 거 같은데요.”
“그치, 정치적인 이유가 있을 수도 있겠다 생각할 수도 있겠지. 인사팀은 이런 거 공유를 잘 안 해준단 말이야.”
오후에는 재무팀과 우리 전략기획팀이 경영계획 관련한 미팅을 가졌다.
“팀장님, 그런데 직영점을 10개나 더 늘리는데 전체적인 임차료 비중은 올해와 비슷한 수준으로 추산하셨네요. 임차료가 많아져서 더 높게 나와야 상식적인 거 같은데…”
“이거는 아무래도 점포개발팀이 저희팀과 합쳐지면서 기존에 적정한 사이트에 오픈하지 못하고 임차료가 높은 곳에 입점했던 문제를 개선하는 효과가 반영된 겁니다. 이제 물건에 대해서 저희가 최초 검토 단계부터 같이 수익성 검토를 하니까요.”
“아… 그런 거군요. 뭐 내년 오픈 예정 지역이 다 임차료가 높은지역이기는 하지만 잘하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얼핏 들으면 구체적이고 정량적인 것 같으면서도 근거가 없는 대화가 오간다. ‘혁신’이라는 말이 사업의 기대 효과를 높이는 자유이용권처럼 떠다닌다.
[피터의 생각 : 제대로 바꿔보자 VS 빨리 바꿔야 한다]
적지 않은 규모의 한 브랜드에서는 최근 조직 개편이 이루어졌다. 몇 년째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매출을 만회하기 위해 디자인 조직과 상품기획 조직을 하나로 통합하여 ‘MD(Merchandiser)’라고 명명한 것이다. 디자인 하는 사람의 생각과 상품기획 하는 사람의 생각이 다를 수 있으므로 통합한 직무로 한 명이 오롯이 책임을 지고 모든 결정을 주도하는 구조를 만들자는 것이다. 맞는 말 같다.
현장에는 어떤 변화가 일어났을까? 당장 디자인만 하던 사람과 수익성에만 베팅하던 사람이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하지만 제품을 만드는 전체 방식도, 작게는 작업을 위한 ERP 메뉴도 기존과 달라지지 않았다. 기존에 두 명이서 하던 일을 MD라는 이름으로 혼자 다 해야 한다. 자연스럽게 두 조직이 한 조직으로 통합되었으니 사람 수도 남아돌게 되었다. 20% 정도의 인원은 다른 직무로 발령받아 사실상 정리되었다고 한다. 디자인과 상품기획 두 조직의 의사소통과 정보 공유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면서 인위적으로 두 조직을 하나로 합쳤다. 시스템을 만들고 정보를 공유해서 전문적으로 해결할 일을 시스템에 돈 들이지 않고 사람이 모두 하는 것으로 바꾸어 조직의 문제를 해결했다고 정신승리 하는 것이다. 실무자들은 과중한 책임과 업무량으로 나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런 혁신은 허상이다. 사람에게 일을 더 던져서 실은 비용 절감해서 단기적으로 수익을 낸다. 혁신은 모든 경영진의 숙제다. 하지만 혁신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공감이다. 경영진과 직원들이 회사의 전략에 공감할 때 전사적인 실행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