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킨슨의 법칙 #야근 #딜버트의 법칙
“완수하는데 필요한 시간에 맞게 작업이 늘어난다” - 파킨슨의 법칙
경영계획을 세우면서 알게 된 것은 마감시한이 있으면 모두들 그 때가 되어서야 자료를 낸다는 것이다. 오후 3시까지 계획을 받으면 2시 50분 전후로 메일이 집중적으로 온다. 그건 그나마 좀 낫다. 3시가 넘어서 메신저로 말을 걸면서 다시 수정해서 제출하겠다고 한다. 무엇이 그들을 이렇게 촉박하게 만드는 것일까?
“비슷비슷한 내용의 자료들을 왜 다들 마감기한에 다 되어서야 제출하고 심지어 제출하고 나서도 계속 수정을 할까요?”
“그러니까… 이게 상대적인 거더라고요. 옆 팀과 우리 팀, 우리 팀 안에서도 같은 내용을 만드는 사람들끼리. 마치 대학교 때 레포트로 평가한 중간고사 점수처럼 상대평가 같은 거라서 끝없이 서로 눈치를 보는 거 같아요. 심지어 서식 고치는 것도 잘하는 사람이 한 거 보고 따라하느라 야근하기도 해요.”
회사의 본질적인 업무와는 무관한 것임에도 이런 식으로 진행되는 일들이 적잖이 있는 것 같다. 각 팀마다 경영계획을 수립한 기념으로 워크샵을 가는데 그것도 서로 눈치게임이 있었다.
“팀장님, 그거 들으셨어요? 영업팀은 이번에 교외에 새로 생긴 리조트로 간데요. 타임 테이블도 봤는데 내용이 엄청 꽉 차 있더라고요.”
“역시 영업팀은 그런 걸 잘한다니까. 내일 10시까지 각 팀별로 대표님께 워크샵 가는 거 보고하는데 다들 영업팀 내용 알고 싶어서 스파이 게임 하는 거알지?”
다음 날이 되었고 9시까지 어떤 팀에서도 워크샵 계획을 보내주지 않았다.
“워크샵 계획이 중요한 건가 봐요.”
“어차피 주제는 정해져 있고 세부계획도 상당 부분 나왔고 그저 잘해보자는 단합대회 같은 건데… 비용이 들어가는거니까 대표님 눈치도 보이고 이런 걸로 팀장을 평가한다고 느낄 수 있으니까 그런 거 같아요. 이거만 거의 일주일 준비하고 수정하는 팀이 있다고 들은 적도 있어요.”
그리고 9시 30분에 첫 메일이 왔다. 취합해서 살펴보니 몇몇 팀은 비슷한 양식에 내용을 작성했고 심지어 어떤 팀들은 장소만 다를 뿐 내용은 매우 비슷했다. 다 정리했는데, 뒤늦게 한우브랜드에서 취지와 목적을 다시 써서 보내겠다고 메신저로 연락해왔다.
‘아마 지금 그거 수정한다고 거기 직원들 몇 명은 일 안하고 컴퓨터에 앉아 작성하고 있겠지?’
아무튼 11시가 되어서야 한우 브랜드의 워크샵 계획이 다시 와서 최종정리를 할 수 있었다.
“전략기획 팀장님 말로는 대표님께서 직원들이 일만 하기에도 바쁜데 워크샵까지 정성스럽게 준비하는 모습 보고 감동 받았다고, 회사가 잘되어 가는 분위기가 느껴지신다고 하셨대요. 완전 이상하죠?”
“네, 보고서만 보면 뭐 엄청 공을 들였으니까요.”
커피를 마시고 돌아오니 팀장이 최종 경영계획 파일을 달라고 했다.
“공유 폴더에 있는 거는 아는데, 거기는 워낙 파일이 많아서 뭐가 최신 버전인지 모르겠더라고. 맨 마지막 걸로 하나 보내줘요.”
공유 폴더에 지금까지 경영계획을 하면서 만든 많은 파일이 정리되어 있지만 워낙 많아서 그것을 만든 나도 헛갈릴 지경이었다. 분명 이 파일이 최종인 거 같은데 확신이 없다.
“중간에 수정된 내용이 워낙 많아서 파일이 엄청 많네요. 이것들도 실무자들이 한참 수정해서 보낸 것들일 텐데. 실무자가 초안을 잡고 팀장의 조언을 받아 수정하고 팀장이 또 다시 수정해서 공유 폴더에 올린 후에도 계속 수정사항을 보내오고… 회사 전체가 이 보고서들 작성에 쏟는 시간을 합하면 정말 어마어마하겠네요.”
다들 마지막 종료 휘슬이 울리기를 기다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봤다. 어차피 일은 그 때까지는 끝없이 이어지니까. 차라리 계획이 좀 어설프더라도 시간이 많이 들일 일과 적게 들여도 되는 일을 처음부터 구분해서 모두 잘하려고 하지 않는 게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