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eter Sep 18. 2017

"원점에서 이야기 해 봅시다"

올해 것을 복사하면 내년 것이 되는 마술

#아젠다 #GEBeliefs #혁신


“진정한 혁신가는 절대 그 대안이 무엇인지에 얽매이지 않는다. 대신 그런 대안이 될 수 있는 것을 만들려고 꿈꾼다.”

- 게리 해멀 Gary Hamel, 『경영의 미래』





다시 자리에 올라왔을 때는 제인만 자리에 있었다. 팀장은 또 어디에 있는 걸까?


“이럴 줄 알았어요. 제가 대충 준비하라고 했죠? 결국 또 팀장님 말발로 끝내버렸다니깐.”


“그러게요. 팀장님은 어떻게 대표님 마음을 그렇게 잘 꿰뚫고 있어요? 전략 목표가 작년과 같은데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어요. 대표님이 처음부터 그런 걸 원하는 타입이세요?”


“아뇨. 대표님은 진정성 있는 분이죠. 대표님은 외식사업이 작은 규모일 때부터 지금의 규모까지 키워놓으신 분이거든요. 요새 좀 그런 거지….”


다들 외근이 있는지 우리 부서가 있는 20층 경영지원본부에는 사람이 없다. 제인은 주변을 잠깐 돌아보고는 말을 이어나갔다.


“팀장님이 대표님 어록을 정리했다가 분석하시거든요. 대표님의 평소 생각을 주제별로 모아서 필요할 때 쓰시는 거죠. 대표님이 요새는 어젠다 제안을 잘 안 하세요. 기존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자기 생각보다는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들으려고 하시거든요. 그런데 팀장님이 평소 대표님이 하시는 말을 다 정리해서, 되도록 그 방향에 맞추니까 어젠다가 없어도 있는 것처럼 되어버리는 거죠.”


“그러면 대표님이 알지 않나요? 너무 자기 생각과 같으면 거부감이 들 수도 있고.”


“글쎄요, 그런데 보통은 그렇지 않은 것 같더라고요.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누가 대신 해주면 그게 더 마음이 가는 거랄까. 저희 팀장님이 일은 쉽게 하시는데, 요새는 매년 전략이 비슷해서 회사가 안 되는 건가 싶기도 해요.”


“이번 건도 그래요?”


“그렇죠. 제가 뭘 준비했든 마찬가지였을 거예요. 그리고 이번 건은 대표님이 예전에 돈 안 된다고 이야기하셨던 거예요. 대표님 직관과 맞지 않으면 아무래도 의심을 받으니까.”


“계속 예전 전략만 반복하는 상황이네요.”


“아무래도 그렇게 되죠. 대표님은 새로운 걸 원하시는데 잘 모르니까 주변 사람들한테 의지하고, 저희는 새로운 걸 알고 있더라도 아직 서로 신뢰가 쌓이지 않아 바로 말할 루트도 딱히 없고요. 팀장님께 밉보일 수도 있고 평가는 팀장님이 하시는데, 대표님이 팀장님을 신뢰하시니까요.”


회사가 작을 때는, 다들 좀 젊을 때는 이런 걸 모른다. 신뢰… 이런 것보다 새로운 시도, 도전, 모험 이런 단어에 마음이 간다. 하지만 회사가 커지고, 지킬 게 많고, 또 내 것이 아니고, 상보다 벌이 확실할수록 소극적이 되어간다. 예전에 하던 것이 맞고, 그게 안 되면 엉뚱한 데서 이유를 찾고, 성과를 낼 때까지 그게 맞다고 우기기도 한다. 새로운 걸 찾는다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새로운 것을 원하지 않는 것일까. 아니면 새로운 걸 찾는 노력을 누군가가 계속 막는 것일까.





이전 08화 “관계사와 협업을 해야죠”– 나를 잘 아는 적과의 동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