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레이에서 바톤을 놓친다면
좋은 직장과 안 좋은 직장을 알 수 있는 기준은 참 많지만, 하나를 골라보라면 '인수인계'를 고를 것입니다. 전임자가 회사를 도망치듯 나오거나 회사 자체가 인수인계의 중요성을 모르거나 후임자가 적응하는 것을 당연히 여기면서 벙쪄있는 모습을 관행으로 여긴다면 좋은 회사일리 없습니다. 조직이 아닌 개인 사업자의 연합에 가깝겠죠. 가뜩이나 빈번하게 조직이 바뀌는 지금의 조직에서는 인수인계를 잘하는 것이 기업의 경쟁력 중에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인수인계야말로 업무의 총아이자 엑기스이니까요. 앞서 일을 맡은 사람이 긴 시간동안 보고 듣고 느낀 내용 중 가장 중요한 것만 전달할 수 있는 학습의 장이자, 업무의 질을 한 단계 올릴 수 있는 시간으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물론 나가는 사람이 도망치듯 나갈 수 밖에 없는 기업문화라면 이런 것 다 필요없을지 모르겠습니다.
저도 인수인계를 몇 번 했고, 다른 사람 인수인계(특히 상사)를 도와준 적도 많습니다. 어떤 인수인계를 경험했는가 생각해보면, 그냥 인계자가 자기 쓰던 파일만 서버에 놓고 가버린다거나, 파일목록을 만들어서 디테일하게 인수인계를 했다고 말하거나 하는 등 인수인계를 '데이터 전달'로 아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또 인수인계를 하기 직전에 자기 조직의 개편을 인계자와의 상의 없이 다 해버리고 가서 새로 업무를 받은 인계자는 조직의 안정을 위해 자기 철학과 다른 조직을 맡아야 하는 경우도 보았습니다. 심지어는 전임자가 에이스들을 다 데리고 조직 이동을 하는 일도 많이 있었습니다. 혹은 인수인계를 잘하는 것처럼 생각하고 모든 일을 일일이 디테일하게 다 알려주고 다 해야한다고 뭐가 중요한지 모르게 만드는 일도 있었습니다. 사람은 어떤가요? 팀장끼리 인수인계하면서 팀원의 약점과 다루는 방법만 알려주고 무얼 잘하는지는 전혀 공유하지 않는 '흉보기'식 인수인계도 있죠. 이런 식의 인수인계는 업무를 이어받아 진행할 인계자가 무엇을 먼저할지도 모르고 언제 어디서 떨어질 리스크에 무방비하게 노출되는 결과를 낳습니다. 대부분 이렇지 않을까요? 다들 새로운 자리에만 관심이 있고 기존에 하던 것은 당장 맘에서 지우니까요.
좋은 인수인계 방법은 무엇일까요? 비지니스란 릴레이에서 바톤을 땅에 떨어뜨리지 않고 오히려 바톤터치 구간에서 더 속도를 내는 인수인계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저도 전문가는 아니지만 경험했던 몇 안되는 좋은 사례들을 보면 이런 인수인계가 업무의 공백을 막고 더 나은 업무 프로세스를 만드는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전임자의 파일은 기본적으로 받습니다. 그러나 전임자의 경험을 같이 받지 않으면 파일은 이해하는데 시간을 더 쓰게 됩니다. 전임자가 지난 시간 진행하면서 돌아본 스토리를 후임자에게 할 수 있다면 그것은 좋은 인수인계일 것입니다. 특히, 무엇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판단했고 그 근거는 무엇인지, 지금 다시 예전 처음으로 돌아간다면 무엇을 하지 말았을지, 혹은 무엇을 했을지. 진행하면서 알게 된 이 비지니스의 어려운 점은 무엇인지의 내용은 어디에서도 구할 수 없는 이 세상에 전임자만이 알 수 있는 소중한 정보입니다. 긴박하지 않게 시간을 잡고 토론을 통해 서로가 정리되어 떠나는 사람도 깨달은 내용을 다음 조직에서 활용할 수 있고, 새로 오는 사람도 혁신의 단초로 삼을 수 있다면 이것은 좋은 인수인계일 것입니다.
아랫 직원의 약점과 히스테리 리스트를 알려달라는 게 아닙니다. 물론 건드리지 말아야 할 것은 알아야겠죠. 중요한 것은 이 직원이 무엇을 잘하는지, 어떤 식으로 일하면 과거처럼 성과를 올릴 수 있는지를 아는 것입니다. 이왕이면 사례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게 도움이 됩니다. 직원의 신변에 대한 내용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공유하는 게 말은 직접하지 않아도 도움될 때도 많습니다. 조직은 조직으로 일하는 거니까요.
당장 놓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해 공유하는 게 중요합니다. 업무를 인수받고 갑자기 들이닥치는 일에 무방비로 있지 않으려면 조직 내에서 현재 진행하고 있는 일에 대해 주요 이슈별로 정리해서 현재 진척 상황을 공유해야 합니다. 그리고 각 이슈에 대해 전에 다루었던 패턴(특히 외부조직과의 관계)에 대해 알려주어 지금까지 처리했던 철학이 맞는지 검토한 후 되도록 일관성을 잃지 않는 방향에서 인수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갑작스런 의사결정을 요구받는 것 만큼 당혹스러운 일도 없으니까요.
지금 일을 잘했든 못했든 당사자만큼 고민한 사람은 드뭅니다. 특히 해당 비지니스에 대해 시장 변화를 알아야 하는 중요하지만 특수한 내용은 당사자의 도움이 많이 필요합니다. 환경에 앞서서 비지니스를 바꾸려면 외부 환경의 변화를 잘 알아야 하는데 일반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정보 출처에는 그런 게 흔치 않습니다. 전임자가 네트워킹으로 아는 게 더 많을 수 있습니다. 최근 시장 변화 중 핫이슈에 대해서는 인수인계 할 동안 놓치지 말아야겠습니다.
조직의 핵심 역량을 아는 것은 중요합니다. 외부 시장의 변화와 함께 우리의 핵심 역량은 현재 어느 수준이고 무엇이 더 필요한지, 혹은 하지 말아야할 것은 무엇인지 아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동안 도전했던 내용 중에서 무엇을 못했는지, 무엇을 잘하는지 알려주는 것은 후임자에게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쓰고보니 이것을 평균적으로 잘 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탁월한 노력도 필요하지만, 기업 인사파트에서 이것이 될 수 있는 시간과 방법의 시스템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이 정도 디테일을 잘 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스킬만으로는 어렵고 복잡하기 때문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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