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량을 만들지 못하는 다섯 가지 모습들
코로나 이후 많은 기업들이 위기를 말하지만 대부분의 기업들은 사실 코로나 이전부터 경쟁력이 없었습니다. 경쟁력이란 기업의 역량을 말하는 것으로 21세기 경영학의 주요 주제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경쟁력을 눈에 보이는 최종적인 재화나 서비스를 말하기도 하지만 보통은 그걸 만들 수 있는 인프라와 시스템, 자본, 그리고 그 너머에 항상 그것을 끌어낼 수 있는 엔진과 같은 인재와 기업 문화를 일컬을 때가 많습니다. 코로나로 기업이 어려워졌다는 것은 미리 위기를 준비하지 못한 경영의 실패라고 봐야겠습니다.
사실 코로나 19 몇 달은 이전 몇 년보다 더 빠른 사회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통신과 데이터 활용이 가속화되는 상황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전혀 새로운 것은 없었습니다. 단지 몇 년 뒤에 될 일이 이번 달에 되어 버린 것이니까요. 언택트와 모바일, 인공지능은 전혀 새로운 단어가 아닙니다. 준비할 시간이 있었고 그걸 미리 준비했냐는 경쟁력의 발현이 차이를 만든 셈이죠. 실제 나스닥의 시가총액은 코로나 19 이전과 이후로 크게 양상이 달라졌습니다. 전기차, 클라우드, 구독 경제 등 많은 사람들이 도래할 미래라고 생각하는 것을 하고 있는 기업들은 이미 코로나 19 이전의 시가총액을 최근 넘어선 기업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전통적인 산업이라고 불리는 산업에서 대장주라고 일컬어졌던 회사들은 아직도 이전 시가총액 고점의 근처도 가지 못하고 오히려 아직도 서서히 줄어드는 모습을 보입니다. 미래는 분명 그릴 수 있는데 왜 준비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주식이 아닙니다. 근로 소득자라면 내가 다니는 회사가 어느 산업에 속해 있는지, 우리 회사는 이런 준비가 된 경쟁력 있는 회사인가가 언제까지 근로 소득을 만들 수 있을지를 결정할 수 있습니다. 물론 대부분 구성원이 이런 고민이 없는 회사라면 당연히 서서히 소멸해 갈 것입니다.
2016년 제가 올린 글 하나는 뜨거운 사랑을 받았습니다. 단일 아티클로 약 30만 가까운 조회가 되었고 공유도 2만 건을 훌쩍 넘겼었습니다. 바로 '브랜드가 망가지는 9단계'였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 글을 퍼 나르던 채널들이었습니다. 한국의 주요 대기업 인트라넷이나 메일 계정은 물론이고 소비재 브랜드를 취급하는 투자자나 대리점주의 카페 같은 곳에서 조회되고 많은 댓글이 달렸습니다. 몇 년이 지나고 실제로 그렇게 많이 보고 공감했던 기업이나 브랜드 중에서 지금 없어진 브랜드가 적지 않습니다. 위기도 예상할 수 있는 미래처럼 시간의 문제일 뿐 결국 실체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경쟁력 없는 기업은 공통적인 특징이 있는 것 같습니다. 역량을 준비하지 않는 다양한 방법들을 알고 있는 것이죠.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역량을 준비하는 게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걸 중요하게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사람을 갈아서 이전에 하던 방식보다 더 잔혹하게 톱니바퀴를 굴릴 뿐이죠.
의사결정자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은 양 극단의 경우입니다. 너무 탁월하거나 너무 탁월했거나. 전자는 스스로 시장의 변화를 능동적으로 학습하면서 다음 파도를 준비하는 부류이며 후자는 과거 탁월한 솜씨로 투자자의 눈을 멀게 만든 다음 지금까지 자리를 독차지한 경우입니다. 사실상 후자는 운이 좋아 그 자리에 있어서 전임자가 깔아 놓은 인프라나 시스템 위에서 실적만 가져가서 거기 앉아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영세한 기업일수록 투자자는 적어지고 전문성이 없는 경우가 많기에 경영진에 대한 견제가 잘 나타나지 않습니다. 최악의 경우에는 이사회가 전혀 전문적이지 않고 전문성 없는 회전문 인사인 곳도 많습니다.
경쟁력 없는 경영진은 스스로도 자기가 실력이 없음을 알고 있습니다. 심지어 업계 관계자 중에서 실력이 있는 사람도 알고 있습니다. 작은 기업을 어느 수준까지는 키우는데 탁월해도 그 이상의 눈이나 머리가 없는 경영진은 가끔 이런 부류를 추종하기도 하지만요. 실력이 없는 경영자는 숫자에만 매몰되어 있습니다. 운을 유지하려고 재무적 성과만 닦달하죠. 비용을 짜내는 게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투자를 해서 돈을 버는 방법을 모르니까 눈에 보이는 비용을 잡아서 연구 개발 예산 개념은 아예 없는 것이죠.
기업은 협력과 경쟁 중 하나를 경영의 메인 테마로 잡습니다. 기업의 미션, 인재상 이런 수사를 제거하면 이면에 이런 단어가 있는 것이죠. 협력은 연결, 소통, 비정형 조직, 공유, 절대평가, 수시평가, 외부지향 등의 단어와 가까이 있습니다. 반면 경쟁은 적자생존, 개인주의, 정반합, 인재 판별 등의 키워드가 더 가까이 있죠. 현실적으로 둘의 보이는 차이는 손익 관리를 어느 수준으로 할 것이냐와 평가 시스템을 어떻게 할 것이냐로 알 수 있습니다.
협력은 손익 관리의 조직 규모가 경쟁보다는 커서 단위 조직 내부는 물론 외부와도 우열을 가리는 게 아닌 자원을 모두 모아 시너지가 나는 방향을 모색하도록 만듭니다. 평가도 줄 세우기가 아닌 잘되면 모두 잘 되고 안 되면 모두 안 되는 구조를 갖고 있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반면 경쟁은 평가 단위가 작습니다. 개인까지 손익을 따지는 곳도 있으며 철저히 줄 세우기로 상위와 하위 백분위 일부를 관리합니다.
경쟁은 숫자로 말하기에 단기 성과가 되는 KPI 달성에 혈안이 됩니다. 일부 스타트업에서 KPI에 질린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경력직을 뽑아서 아는 걸 다 뽑아먹은 다음 단기 성과가 안 나면 가차 없이 버린다는 이야기도 들었는데 이런 상황은 경쟁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단기 실적을 달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평가는 그 비중이 어느 정도냐로 실제적인 역량 구축의 시간을 가져갈 수 있는지, 예산을 집행할 수 있는지가 나뉩니다. 마치 개인 단위나 작은 조직 단위로 자율권을 주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돈을 짜내는 기계 정도로 대하면 기업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을 사람만 바꿔가면서 계속하는 모습으로 변질됩니다. 그걸 잘하는 경쟁에서 살아남은 사람만 의사결정을 하는 자리에 오르겠죠.
보스가 되는 기준이 무엇인지에 따라 역량을 준비하는 회사인지 알 수 있습니다. 기획력이 좋고 숫자에 밝고 인사 관리를 잘하는 사람을 보스로 앉히는 회사는 역량과는 거리가 먼 회사입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을 더 꼼꼼히 잘 쪼면서 하는 사람을 앉힌 것이죠. 역량을 준비하는 조직은 실무를 잘하는 사람을 더 잘할 수 있는 자리에 놓고 대우해 주는 회사입니다. '테크 리드(Tech Lead)'라 부르는 기술을 리딩 하는 전문가를 꼭 IT 조직이 아니라도 만들 수 있죠. 미래는 기획을 잘하는 사람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실무에서 더 미래 기술과 방향으로 만들어 가는 사람을 통해 구체화됩니다. 컨설팅 기업이 이제는 기획이 아닌 버티컬 한 실체를 만드는 것까지 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죠. 실체를 잘 아는 사람을 컨설팅 회사에서 수급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그만큼 이런 인재가 귀하죠. 역량이 없는 조직에서는 몇 년간 음지에서 이렇게 길러 온 실무 전문가를 관리자의 조건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타 기업으로 유출이 되어도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개념이 아닌 실체를 가져와서 말하는 사람을 테크 리드로 정하면 됩니다. 보고서에 그릴 수 있는 미래가 아닌 어설프지만 비슷한 실제 결과를 가져오는 사람을 일단 따라가면 됩니다. 너무 역량 구축을 하는 방법을 모르는 조직은 일단 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만들어 나가는 과정을 어설프지만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훌륭한 경력직을 뽑아서 맡길 수도 있지만 역량 구축에 인색한 조직은 이 투자도 아까워하므로 현실적인 접근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이런 기업들 중에서 신기술에 관심이 많은 기업이 많다는 것입니다. 컨설팅 회사를 불러서 디지털 변화에 대한 방향도 들어보고 대학 교수를 초빙해서 임원들이 주말에 나와 강의도 듣고 심지어 작은 기업들을 찾아 투자도 합니다. 의외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경쟁력 없는 기업들이 필연적으로 쫒을 수밖에 없는 극단적인 선택입니다. 당장 역량 차이를 따라잡을 수 없으니 뭔가 과감한 결정이 변화를 만들어 줄 거라는 것이죠. 하지만 생각해 봐야 할 것은 당장 손에 잡히는 기본기가 향상되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물류나 소싱 등 잘 보이지 않지만 중요한 프로세스가 실제적으로 변화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프로세스 한 부분을 덧대거나 새로운 것으로 바꿔도 전체적인 실적은 개선되기 어렵습니다. 마치 애플리케이션 하나 바꾸었다고 모든 모바일 서비스를 석권하리라고 착각하는 것과 같죠. 그런 일은 없습니다.
고객이 느끼기에 피부에 와 닿는 기본기의 개선이 없다면 부정적 이미지는 시장에서 전혀 개선되지 않을 것입니다. 빨리 하고 저렴하게 하는 것도 좋지만 그게 전부가 아닐 수 있다는 말입니다. 새벽에 과일을 갖다 줘도 함께 포장돼 온 얼음이 과일을 둘러싸고 몇 시간 동안 문 밖에 기다리면서 껍데기가 매 번 얼어 버린다면 기술이 아닌 기본기를 봐야 합니다. 애플리케이션을 새로 만들어서 기능을 추가해도 검색어가 한없이 부족하면 매출로 이어지는 데는 한계가 있고 고객 경험은 더 나빠집니다. 데이터 분석을 통해 고객 성향을 예측해도 갖다 줄 상품을 구하지 못하면 허사로 끝납니다. 대부분의 일이 이렇습니다. 기본기는 역량을 구축하는 출발점입니다. 여기 투자를 먼저 해야 합니다. 두 지점 사이에 새로 나온 빠른 자동차로 물건을 나르는 게 답이 아니라 두 지점 거리 자체를 없애는 게 기본기입니다.
업무 시간의 대부분을 관리 문서 작성이나 내부 조직의 이해관계 정리에 보내고 있다면 역량은 없습니다. 기본기를 중요하게 말씀드렸지만 기본기가 조직 내부에 잘하는지 보는 것만 아니라 그것을 잘하기 위한 새로운 방법론과 프로덕트를 설정하는 데 있습니다. 새로운 방법론은 당연히 외부에 있습니다. 논문에 있고 해외에 있고 이미 내 가방 속에 있기도 합니다. 말로는 역량을 이야기하면서 실제 일하는 시간의 대부분은 내부 행정적 처리와 미팅에서 중언부언하는데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정말 봐야 할 조직 외부를 향한 눈은 가질 수 없습니다. 때로는 엑셀의 셀 하나를 어떻게 수정할지 논의를 몇 시간 하는 게 도움될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그 시간에 더 나은 방법을 찾거나 실제 해 보면서 다시 바로 잡는 편이 더 낫습니다.
너무 크고 구조적인 문제는 매일 그 속에 놓여 있어도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직이나 조직 이동을 하고 나서 몇 년 전을 돌아보면 당시 상황이 이해되지 않거나 나의 결정에 후회하게 되는 일이 많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도저히 회사 내부를 봐도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면 예를 든 다섯 가지 중에서 하나라도 우선 바꾸는 시도를 한다면 변화는 서서히 시작될 수 있습니다. 물론 내가 할 수 있는 범위의 한계는 있습니다. 너무 크고 근원적인 내용이라면 변화는 과연 가능할지 생각해 보고 아니라면 그렇지 않은 곳으로 선택하는 것도 나쁜 결정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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