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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ter Jan 11. 2021

80년대생, 끼인세대

늘 우리는 무언가에서 끼인 세대가 된다

제법 큰 스타트업을 다니는 예전 동료가 현재 직장에서 어려운 점을 이야기한 적이 있었습니다. 모두와 수평적 관계이다 보니 한 사람씩 설득하는 과정이 너무 피곤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수평적인 것은 좋은데 일을 하나 하는 데 시간이 더 들어가니 스타트업의 장점이 속도인지 정말 모르겠다는 것이죠. 예전에 함께 일했을 때만 해도 수평적 기업 문화를 부르짖던 친구가 그런 이야기를 하니까 좀 의아하면서도 속으로는 재미있었습니다. 보고에 보고를 거듭하던 회사에서 설득과 토론을 하는 환경 변화가 처음에는 적응이 어려운 것일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사람마다 서 있는 위치도 달라집니다. 팀원일 때 부조리하게 보였던 것 중에서 팀장이 되면 부조리와 현실을 타협하며 그런 일을 반복하는 사람이 되어 있기도 하죠. 회사는 늘 과거의 관행과 새로운 의문과의 충돌로 더 나을지 안나을지는 모르는 새로운 방향으로 향해 갑니다.



'끼인 세대'라는 말을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굳이 회사가 아니더라도 끼인 세대가 되는 상황을 마주합니다. 부동산부터 제사 문화, 전통 직업 등 사회에서 어쩌면 이것을 하는 마지막 세대가 되기도 합니다. 직장 문화도 마찬가지죠. 새로운 세대가 보았을 때는 굳이 할 필요 없는 낡은 문화를 하고 있는 마지막 세대가 되곤 합니다. 하지만 직장 선배들이 보았을 때는 새로운 세대의 질문이 맘에 안 드는 것이 많죠. '라떼'와의 충돌이죠. 연차를 눈치 보며 쓰는 것부터 전체 회식, 보여주기 식 행사 등은 어쩌면 지금 회사의 허리급 세대가 하고 있을 마지막 문화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위와 아래 세대의 갈등을 중간에서 받아주는 완충재 역할을 하고 있죠. 그래서 피곤한 일도 많죠.



몇 년만 더 문제없이 회사를 다니면 안정된 고소득을 받을 수 있는 선배들은 리스크 한 개인 브랜딩과 개인화 문화가 조직을 와해시킬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합니다. 성장의 사다리에 오르지 못한 후배들은 미래가 보이지 않은 회사보다는 미래가 보이는 업계나 직무에서 개인 브랜딩을 생각합니다. 당연히 보장된 권리를 통해 나를 위한 투자를 선호합니다. 서 있는 위치가 다 다르니까 당연히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죠.





큰 전제는 있습니다.
더 나은 기업 문화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죠. 



과거에 불합리하게 생각했던 것들을 지금 당장 나의 이익을 위해 얼마 더 유지하는 것은 결국 나의 이익을 앗아갈 거란 생각이 필요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와 함께 일하고 있는 사람들의 수준을 높이려면 결국 좋은 기업 문화를 만들고 발전시켜야 하기 때문이죠. 고인물만으로 일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세대니까요.



하지만 적응은 힘듭니다. 조정자로서 역할은 정말 힘에 부칩니다. 누구와 밥 먹을까 고민을 회사 점심시간에 할 줄은 몰랐었죠. 결국 도시락을 먹는 팀원들과 함께 밥을 먹기 위해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사서 먹으면서 같이 밥 먹는 문화를 잠시라도 변형해서라도 맞추려고 한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건 의미 없었죠. 몇 주 동안 편의점 도시락을 사 먹으면서 입에 질려 갔고 그렇다고 이게 꼭 모두가 원하는 커뮤니케이션 방식은 아니었으니까요. 



부조리한 것도 막았습니다. 저는 당하지만 팀원들에게 시키지는 않았죠. 눈치 보면서 하는 것을 물려주고 싶지 않았기에 눈치는 저만 보았죠. 하지만 이게 좋은 거지만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후배들에게는 뭐 이야기 나눌 것은 못 되었습니다. 그저 할 일은 한 것뿐이니까요. 



외형적인 것에 집중하고 맞출수록 끼인 역할에서 벗어나기는커녕 스스로 더 힘든 상황만 되는 것을 곧 알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신뢰인데 말이죠. 굳이 같이 밥을 안 먹더라도, 눈치 보기 야근과 연차를 안 하더라도 이게 신뢰의 충분조건은 될 수 없었죠. 단지 신뢰의 전제를 서로 마련해주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먼저 정보 공유를 넘칠 정도로 했습니다. 회사 상황이 이렇고 지금 중요한 것은 무엇이고 이걸 했을 때 이렇게 바라볼 수 있고 실제 실적과 연결이 이렇게 될 것 같다는 회사 정황에 대해 아무래도 제가 더 많이 알고 있으니까 되도록 많이 이야기했습니다. 위에서 보면 싫은 장면도 있었겠지만 다른 조직보다 훨씬 많이 배경을 알려주려고 했습니다. 물론 업무 지식도 더 많이 주었죠. 누군가는 '회사가 학교도 아닌데 스스로 살아남으면 되지 뭐 그런 것까지 알려주느냐'라고 했지만 제가 가진 실력을 다 공유하는 게 필요했습니다. 그러면 오히려 제가 할 일이 한정되고 조금 지나면 오히려 할 일이 줄어들기도 했습니다. 저는 다른 것을 더 하면 되니까요. 스스로 반복하는 일만을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런 방식은 의미 있었습니다. 모두가 다 따라오는 것은 아니었지만 후배들의 성장은 최근 가장 잘한 일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각자가 원하는 커리어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을 함께 했습니다. 사람마다 꿈이 다르니 지금 이 자리는 모두에게 잠시 어떤 점으로 찍히지만 우연히 만난 것이라는 생각이 필요했습니다. 모두가 이 회사에서 CFO가 되고 CEO가 되는 시대는 지나갔으니까요. 이제 이런 이야기 하면 실소가 나오는 게 당연한 시대가 되었으니까요. 대신 우리가 일하는 것의 의미를 각자 커리어에서 찾아야 했죠. 나는 어떤 모습이 되는 것을 원하니까 이것과 관련된 이런 일을 하고 싶다는 것을 같이 설계해 주어야 했습니다. 그나마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누가 무슨 일을 할 것인가를 만들고 가는 것이니까요. 신뢰의 실질적인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일을 던지고 피드백도 제대로 하지 않는 제가 되지 않아야 했죠. 매우 피곤한 일입니다. 하지만 저는 후배들보다 높은 연봉을 받고 있으니 당연히 해야 하는 역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많이 받는 사람이 많은 일을 하는 게 맞으니까요. 선배들에게 발언권은 제가 잘하면 따라올 일이었습니다. 제가 후배들에게 더 나은 문화를 주는 보상은 후배들이 저게 주는 신뢰라고 저 혼자 정리했습니다.





끼였다고 감정적으로 표류할 수는 있습니다. 



어디 말도 못 하는 일이 분명 있죠. 하지만 나를 지키기 위해서는 스스로 어디에선가 짧은 표류를 마치고 뭍으로 나가야 하죠. 결국 모여 사는 세상이니까요. 표류하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짧게 만들어 주기 위해 제가 선택했던 방법도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더 좋은 방법이 많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낀대' 혹은 '젊꼰'이 되지 않는 생각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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