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eter Aug 14. 2020

메일 읽기의 기술

쓰는 것보다 읽는 게 더 많다

어디 가면 메일을 쓰는 것에 대한 이야기는 많습니다. 심지어 이메일 쓰는 법의 강좌도 있었습니다.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하는 친구들에게 인사말은 어떻게 써야 하는지부터 두괄식의 중요한 말은 어떻게 라벨링을 해서 한눈에 읽기 쉽고 간단하게 요약할지 첨부 파일은 어떻게 붙이고 민감한 참조자는 어떻게 넣어야 할지 정말 중요하지만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 회사 메일은 언제나 인기 많은 주제입니다. 그룹웨어를 써도 메일은 사라지지 않으니 생각보다 미래에도 회사 내 조직 간 메일을 보내는 것이나 회사 대 회사로 보내는 메일을 쓰는 법은 여전히 필요한 잔기술로 살아남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메일을 읽는 것은 어디서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사람에 따라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겠지만 사실 하루에 쓰는 메일보다 받는 메일이 훨씬 많습니다. 메일을 쓰는 것은 물론 중요한 이슈이지만 읽는 것은 중요성도 다양하고 일단 너무 많습니다. 잘 읽지 못하면 분명히 누군가는 다 공유했다고 했는데 우리 팀만 모르거나 일이 먹혀 있거나 갑자기 회의에 누군가가 안 오는 일이 벌어집니다. 메일은 보내는 사람 특유의 뉘앙스까지 텍스트 이면에 자리 잡고 있어서 읽는 것은 생각보다 고도의 스킬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핵심만 잘 읽는 스피디한 메일 읽기에 대한 제 생각을 공유합니다.






1. 동사를 파악하자


메일을 받으면 일단 본문의 의도를 파악하는 게 중요합니다. 뭘 보내 달라는 건지, 보자는 건지, 답신을 달라는 건지 몇 가지 선택지 중에서 보낸 사람이 얻고 싶은 게 무엇인지 확인부터 합니다. 메일의 결론은 상사와 부하 사이가 아니라면 두괄식으로 나오기 생각보다 어렵기에 어딘가에 있는 동사를 먼저 파악해서 메일을 처음부터 읽으면서 두근두근하는 스트레스를 받지 말고 미리 답을 보고 머릿속에 핵심을 잡아 놓습니다.



2. 받는 사람과 참조자를 파악하자


메일은 정치적입니다. 회사 내부 조직이나 회사 사이의 메일에서도 누구까지 이 메일을 받는지, 받는다면 참조자로 걸려 있는지, 어떤 기업은 참조자의 순서는 어떻게 되어 있는지까지 봅니다. 무시무시한 관례입니다. 하지만 대면하지 않는 상태에서 핵심 메시지가 나가는 일이기에 정치적인 장치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보낸 사람이 권위를 이용하려 하거나 아니면 누구에게 함께 알리려고 할 때, 혹은 잘 모르는 조직에서 보낸 사람의 동료와 팀원, 더 상급자가 누구인지 메일의 받는 사람과 참조자로 파악합니다. 나중에 메일을 더 주고받으면서 이 사람들에게 다 보내야 할지, 실무자 몇 명으로만 좁혀서 진행할지, 그렇게 수신인 리스트를 바꾼다면 어떤 계기로 조정하면 좋을 지도 미리 구상하고 시작합니다. 나중에 프로젝트의 범위나 조직 내 파급력이 이에 결정되기도 합니다.



3. 볼드와 컬러는 한 번 더 읽자


장황한 메일은 어떤 식으로든 눈에 안 들어옵니다. 논리가 여러 가지이기도 하고 잘 못 쓴 메일은 서로 메시지가 충돌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메일 내 메시지 중에서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정리하는 게 읽는 사람이 찾아야 하는 퍼즐이 됩니다. 그럴 때는 강조의 형식을 더 봅니다. 어떤 메일은 1,2,3으로 구분을 하기도 하고 어떤 메일은 거기에 컬러를 따로 긋고 밑줄까지 써가면서 더 중요한 것을 보여주려고 합니다. 한 번 메일을 쭈욱 읽고 한 번 더 강조된 말만 읽고 되짚어 봅니다. 복잡한 메일이 간단한 문장으로 정리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4. 캡처 이미지가 모든 것을 말할 때도 있다


첨부 파일의 보고서는 대부분 분량이 깁니다. 메일을 읽고 그것까지 열어서 읽기는 너무 피곤합니다. 그래서 누군가는 보고서의 중요한 페이지만 메일 본문에 싣는 배려를 하기도 합니다. 사실 그 페이지만 있어도 되는 건데 그걸 보충하기 위해 다른 보고서 페이지가 존재하기도 하죠. 캡처 이미지의 도식화된 내용을 이해하는 게 메일의 전부를 이해한 것일 때도 있습니다. 본문에 있는 이미지를 그냥 첨가된 내용 정도로 생각하지 말고 꼼꼼하게 봐야 하는 이유입니다.



5. 일의 추진 여부는 전제에 달려있다


조직과 조직 사이의 메일은 상당히 미묘한 경우가 많습니다. 뭔가 착착 이뤄지는 논조의 문장은 드물기만 합니다. 속내를 먼저 밝힐 경우 영업적으로 향후 파장을 누가 책임지고 더 많은 분량을 지는지 서류가 증거가 되기에 시원하게 메일에 기록하지 못합니다. 특히 간을 보는 경우는 더 하죠. 아쉬운 이야기를 들어주기 싫다거나 정말 여건이 안되거나 싫은데 어쩔 수 없이 예의상 응대를 하는 메일은 더 그렇습니다. 메일 내용 안에 미리 많은 전제들이 깔려 있죠. 어떤 조건이 충족될 경우, 상황이 이렇게 변할 경우, 누군가의 승낙이 이렇게 날 경우 등 이미 많이 깔아 놓은 전제가 터지느냐의 여부를 미리 깔고 그것을 자신의 일과 결부시킵니다. 사실 대부분은 처음부터 희박한 가능성만 갖고 있는 것들이죠. 전제는 문장 중간중간에 지나가듯 적혀 있지만 나중에는 이런 서술들이 일을 결정짓는 근거가 됩니다.



6. 논리 검증은 기본이다


상대방이 수식을 걸어서 뭔가 시뮬레이션을 했거나 알고리즘을 써서 예측을 한다든지 연역적으로 어떤 전제를 기본에 두고 지금 일을 적용하는 일이 메일에는 많습니다. 그냥 메일에 써진 결론을 읽고 이해하기보다는 이 과정을 한 번 곱씹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앞뒤가 맞지 않는 과정을 보낸 사람은 드물겠지만 기본적으로 그것도 체크를 해 봅니다. 그리고 상대방의 모델링에서 생각, 세계관을 읽을 수 있습니다. 현상을 어떤 흐름 위에서 바라보는지가 논리의 전제, 수식의 변수들, 알고리즘의 성격에 반영되어 있습니다. 메일에 적힌 몇 마디의 문장보다 상대를 더 잘 알 수 있는 조각들입니다.



7. 관례적인 말에 의미를 두지 말자


어떤 사람들은 상대의 메일 태도에 대해 필요 이상으로 집착합니다. 맺음말 앞에 몇 마디 쓰는 말을 보고 보낸 사람을 판단하기도 합니다. 세상에 얼마나 많은 말만 해서 먹고사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걸 그렇게 받아들이면 상대가 누구인지 혼란스럽기만 합니다. 메일은 기본적으로 만나서 말하는 것보다 더 예의 있게 작성됩니다. 보이지 않고 잔상이 남는 도구이기에 어지간하면 더 높게 대우해줍니다. 그러니 메일을 예의 없게 쓰는 사람은 정말 상종하면 안 되는 사람이 맞습니다. 관례적인 단어와 표현에 너무 많은 의미를 두지 맙시다.



8. 메일의 타임라인을 잘 따라가자


누군가는 메일의 원문을 살려두고 답신을 보내고 그게 모여 하나의 타임라인이 됩니다. 이슈 중심으로 소통하는 기업 애플리케이션처럼 쓰는 것이죠. 처음 온 메일에 당황하지 말고 이 일이 어떤 배경에서 생긴 것이고 초기 의도가 중간에 어떻게 변질되었는지도 메일을 타고 올라가면서 찾아봅니다. 메일이 길에 이어진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몇 가지 포인트만 주변에서 생각나는 사례를 떠올리면서 써 보았습니다. 아웃룩에 태그를 건다든지 폴더를 어떻게 정리하는 것도 중요한 메일 관리의 기술이지만 일단 온 메일을 잘 읽는 게 중요합니다. 갈수록 메일을 줄이려는 기업들의 노력은 많지만 줄이는 것이지 없애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혹시 메일에 파묻혀 스트레스를 받고 있거나 사회생활 처음에 메일에 대한 가이드가 필요하다면 틈틈이 위 내용들을 잘 떠올려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작가의 다른 콘텐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