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랜드에서 살아남기
예전에 입사 면접을 본 적이 있었습니다. 1차 면접의 삼엄한 분위기 속에서 저를 포함한 네 명의 대졸 예정 지원자들이 면접장에 들어섰습니다. 면접관은 초로의 남자 세 명. 첫 질문은 "우리 회사에 왜 지원했습니까". 아주 익숙하고 흔한 레퍼토리에 준비한 지원자들의 말 못할 안도가 오고갈 때쯤 첫 번째 지원자의 대답이 정적을 깨트렸습니다. "망하지 않을 것 같아서입니다. 아버지를 평소 존경하는데 아버지께서 이 회사는 앞으로도 망할 확률이 적다고 하신 것에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안타깝지만 실화입니다. 이 솔직한 친구는 2차 면접장에서는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지나치게 솔직한 친구의 말이 맞았을까요? 아닌 것 같습니다. 사회생활 6~8년 정도의 제 동기들은 믿을만한 직장에 들어간 후 지금은 대부분 위기의 시간을 지나고 있습니다. 해당 산업이 기울기도 하고 혁신이 되지 않은 기업은 자리를 경쟁사에 내어주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감원과 구조조정은 상시로 이루어지는, 30대 중반에도 자리에 대한 위기감이 늘 있는 그런 상황이 된 거죠. 물론 앞서 면접이 이루어진 직장도 요즘 거센 감원 중입니다.
샐러리맨으로 살아간다면 있는 회사가 잘 되어야 합니다. 굳이 결과론으로 이야기 하면 '기업생존율'이 높아야 정말 오래 다닐 수 있는 거죠.(물론 오래 다닐만큼 개인의 기여가 있어야겠죠) 그러나 기업 생존율이 최근 극심히 낮은 것이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창업한 회사가 3년 뒤에 살아남을 확률이 41%라면(한국무역협회 15년 'IT벤처기업의 데스밸리 극복과 시사점' 보고서) 59%의 기업에 있는 직장인은 자의든 타의든 직장을 옮길 수 밖에 없습니다. 망할 회사에서 미리 안 망할 회사로 갈아타기를 잘하는 것도 직장인의 능력이죠. 물론 계속 직장을 갈아타는 그 사람이 문제의 원인일 수 있습니다. 직장을 옮기는 빈도가 높고 옮긴 회사들의 실적이 대부분 좋지 않았다면 그럴 확률은 더 높아지겠죠. 그렇다해도 59%의 직장이 모두 개인의 잘못으로 망할리는 없습니다. 조직의 문화, 주주의 잘못된 결정 등 개인 차원에서 할 수 없는 일이 너무나도 많고 그런 것들의 파급효과가 너무 커져버렸죠.
그러기에 절반 이상의 직장은 '좀비랜드'일 가능성이 큽니다. 이미 오염된 문화에 찌든 좀비들이 바이러스를 퍼뜨리고 괴롭히는 좀비랜드. 방심하면 감염되는 그런 곳이 된 것이죠. 어느 순간 좀비가 된 직원이 선량한 직원들을 압박할 때 감염되지 않은 직원들은 외롭게 됩니다. 정상인 직원이 소수자로서 비정상으로 대우 받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른 일을 하는 직원이 비정상 대우를 받더라도 그것은 좀비가 아닌 것의 증거니 이상한 게 아닙니다. 최근 몇 년간 혁신이 정체되어 고객이 떠나고 실적이 추락하는 기업에서 내가 누가봐도 소수자고 반항아라면 그것은 아직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았다는 반가운 소식입니다. 이 조직 밖에는 아직 정상적인 사람들을 원하는 기업이 많이 있고 자의든 아니든 그곳에서 기회를 곧 얻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정상인도 좀비랜드에서 '승부'는 봐야겠죠. '승부'를 보지 않는다는 것은 정상인도 방관자가 되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그게 의무이진 않습니다. 피터 드러커 말처럼 지식 근로자의 이동은 자유롭고 기업과 개별적인 거니까요. 태업만 있는 동안 하지 않으면 됩니다.
그렇다면 평생 직장은 결국 '직장'의 이름 자체가 아닌, '승부를 볼 곳'이 됩니다. 내가 인생에 한 번은 샐러리맨이지만 승부를 보고 레코드를 만들 곳. 그런 최적의 환경은 선거에 나오는 정당들처럼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지만 적어도 차선은 있습니다.
장기간 있을 회사의 기준 말이죠
개인적으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직원에 대한 경영진의 철학은 어려운 시기에 드러납니다. 평소에 말하는 것들은 모두 중요하지 않습니다. 직원의 전문성을 높이고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고 급여를 성과주의로 하고 등등의 내용은 전혀 본질이 아닙니다. 역대 구조조정 사례와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결정한 기준들을 보면 직원들을 '인건비'로 보는지 회사가 가진 고유한 '역량'으로 보는지 알 수 있습니다. 서로를 믿을 수 없는 사이에 어떻게 목숨을 걸고 일할 수 있을까요? '주인 정신'은 주인이 누군지도 모를만큼 서로간의 신뢰가 있을 때 생기는 겁니다.
이것은 롱런의 기본입니다. 많이들 이야기 합니다. 기본적으로 체력이 달리고 일하고 싶어도 에너지 레벨이 떨어져 승부를 보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또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죠. 이 정도는 넘어설 수 있다면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한 때 출근만 2시간 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 때는정말 힘들더군요. 정신의 문제를 넘어섭니다.
일을 잘하기 위해서는 기업 문화가 중요합니다. 특히 서로 대화로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수평적이고 긍정적인 문화가 필요합니다. 보고서나 회의는 없고 실제 일하는 것은 집단 지성으로 문제보다는 기회를 보고 해결하는 마인드가 중요합니다. 군대 문화나 스마트하지 않은 리더들이 실무진의 시간을 끄는 여러가지 커뮤니케이션은 일을 하려고 해도 할 수 없습니다. 아래 직원들의 신선한 아이디어들이 위로 바로 올라오지 못하는 것도 큰 문제죠. 적어도 들어주고 토론하는 문화가 있다면 일은 할만한 곳입니다.
내부 조직의 복잡성을 설득하는 시간에 외부 사업 기회를 보고 결정하는 게 많은 조직이 성장할 수 있는 조직입니다. 시스템이 좀 없어도 괜찮습니다. 모든 글로벌 기업의 초창기에는 시스템이 있지 않은 게 대부분이었습니다. 서로 모여 이야기하는 주제가 내부 정리에 대한 것이라면 대부분은 필요없는 일을 할 가능성이 큽니다. 대부분의 주제는 외부의 변화와 기회에 뿌리를 두어야 하고 이런 것이 비록 실패해도 기다려준다면 그 중 한 두개로 기업은 다시 영속할 수 있습니다.
문화라는 것은 원래 누가 만든 게 아니라 그렇게 살게 된 것을 그렇게 부르는 것이죠. 강제적이고 인위적으로 무언가 하면은 항상 부작용이 있습니다. 기업 문화도 주요한 일을 하다가 필요상 발생하는 것을 통칭하는 말이지 산악회나 잦은 회식 등 고위층이 좋아하는 유희를 즐기는 게 문화가 아니고 억지로 무슨 날 정해서 하는 것도 직원이 일하면서 필요한 문화적 니즈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대로 두고 정리하는 게 문화죠. 자연스러운 회사가 좋은 것입니다.
급여나 직급은 잠깐입니다. 기업은 항상 주는 만큼 그 사람의 이용가치를 따지고 회수하려 합니다. 그러기에 외적인 조건이 아닌 내적인 문화가 좋은 기업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항상 헤드헌터들이나 기업의 인사 담당자, 경영자는 내적인 문화 개선을 먼저 이야기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외적인 것을 먼저 제시하려들죠. 좀비랜드는 외적인 것을 좋아하는 좀비들이 가득찬 곳입니다. 엄밀히 사업이 잘되는 것에는 별 관심이 없죠. 자신만 잘 살면 그만인 좀비들이니까요. 따라서 아직 감염되지 않았다면 타협하지 말아야 합니다. 외로워도 거기를 바꾸든지 아니면 살려고 이런 회사를 찾든지 해야겠죠. 어느 상황에서든 가장 안 좋은 선택은 스스로 좀비가 되는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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