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게 성과인 사람
최근에 기획 관련 책이 서점에 많이 나와 있습니다. 기획은 사실 영업 등 다른 업무보다 일의 마감이란 게 명확하지 않은 분야라 무한한 자원이라는 가정 하에서는 일이 끝나지 않는 분야입니다. 디테일 할 수록 정밀하게 계획하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하지만 기획자 스스로도 알듯이 어느 정도 이상의 디테일한 계획은 실제에서 어떤 의미도 주지 못하는 보고서 놀음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 이상을 요구하는 사람이나 요구받는 사람이나 모두 고통스럽죠. 하지만 최근 많은 기획 관련 서적인 기획이 '빡세다', '프레임을 많이 준비해야 한다' 등 새로운 무언가가 있듯이 많은 도구를 말하고 있습니다. 기획이 디테일이 높을수록 연관 실행부서가 일을 명쾌하게 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현장에서 나온 인사이트를 토대로 일정 수준의 권한과 주도권을 주기가 어렵고 왜곡된 결정을 부추길 우려가 있습니다.
생각할 것인가, 반응할 것인가
기획 실무를 하면 기획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요구받는 부서라는 생각이 듭니다. 경영진이 만드는 경영 이슈부터 조직 내 관계 정리, 외부와의 교류에서도 역할이 있기 때문에 늘 긴장해야 하는 상태가 됩니다. 이런 상태라면 '생각한다'라기 보다는 '반응한다'로 설명하는 게 더 나을 수 있습니다. 뭔가를 생각하기에는 너무 일이 많고 요구기간이 타이트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기획이 '반응한다'는 수준으로 일해야 할 자리인가 자문하게 됩니다. 기획이 생각하지 않으면 조직 내에서 큰 방향에 대해서 누가 생각할 수 있을까요? 영업이나 연구직은 각자 맡은 분야에서 무언가 그 다음단계를 내다볼 수 있지만, 사업 전체적인 구조를 흔드는 것은 기획에서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기획이 단순히 숫자 계산하고 취합받는 조직이 아니라는 것이죠.
기획은 종일 어슬렁거리다 한 번 일합니다
이같이 기획은 너무 디테일해서도 안되고 너무 체계가 없어도 안됩니다. 그리고 '반응' 이상의 '생각'이 필요한 조직이죠. 기획자의 시간에서 너무 많은 일을 하고 있다면 기획자가 제대로 된 일을 할 수 없습니다. 특히 오퍼레이팅 업무가 많다면 기획이 기획다운 일을 하지 못하고 소모되는 것이죠. 기획은 '사자 놀음'이어야 합니다.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어슬렁 거리면서 사냥감을 찾다가 결정적 순간에만 움직여서 '일'을 하는 직무여야 합니다. 얼마 없는 시간을 사용해야 한다면 역시 그것도 사자 같이 써야 합니다. 시간이 없을수록 더 일을 바로 하지 말아야 하는 게 기획입니다.
특히 기획은 보고서부터 잡고 있으면 제대로 된 기획을 할 수 없습니다. 항상 결과물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은 좋으나 결과물 자체를 가지고 씨름을 하면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기획자에게 필요한 것은 모르는 영역을 초반에 정확히 찾고 관련된 정보를 취득하고 인터뷰 하는 습관입니다. 문제 그 자체를 생각하면 해결되지 않지만 많은 모델을 알고 있다면 그것을 통해 답을 얻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주일의 시간을 쓸 수 있다면, 5일 이상은 생각만 하는데 시간을 써야 합니다. 아예 하루 이틀은 완전히 머리를 비워두고 자유로운 아이디어를 낼 수 있게 하는 것이 기획에 도움이 됩니다. 기획이야말로 영업보다 더 자리에 앉아서 일할 직무가 아닌 것입니다. 심지어 재무 관련 일을 하는 기획도 책상에 오래 앉아 있을 필요가 없는 게 정상입니다. 모든 기획은 조직의 시스템을 바꾸는 것을 외부 기회로부터 해야하므로 오퍼레이팅은 엄밀히 말하면 기획의 본질적인 역할은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본적으로 기획은 외부의 우수사례를 누구보다 많이 알고 있어야 하고 내부의 일도 직접해 본적은 없더라도 어떻게 하는 것인지는 다 알고 있어야 합니다.
기획은 경제학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업무에 도움이 됩니다. '제한된 자원'이라는 개념으로 '선택한다 = 포기한다'라는 경제학의 기본문제는 기획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자원을 명확하게 정의하는 것부터 어떤 것을 연속선상에서 해야할지 중단해야 할지를 고민하는 것이 기본적인 기획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경제학에서 많이 다루는 수요와 공급 차원의 사고도 시장분석과 STP를 정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그 중에서도 '나비효과'에 대해 연결시키는 게 특히 도움이 됩니다.
예를 들면, 고시생이 증가하면 고시학원과 함께 고시생들이 사용하는 재화와 서비스가 증가됩니다. 노량진의 '컵밥'이나 '고시식당'은 고시의 문이 넓어질수록 더 활성화되는 것입니다. 마치 서부 개척시대에 최고 활황은 금보다 청바지라는 말처럼 어떤 모멘텀이 불러오는 그 다음의 효과들이 있습니다. 이런 것을 화살표로 자유롭게 연결시켜 보는 것이죠. 보통 국가제도 변화 지정학적 변화, 재난과 분쟁이나 문화적 작품(영화,드라마,책 등)이 이런 현상의 발단/촉매가 됩니다. 재화의 수요보다 공급이 큰 아이템이라면 이것에 대한 개인의 과다 수량 확보에 대한 보관 서비스의 증가나 혹은 폐기량의 증가에 따른 재사용 및 활용 방안에 대한 새로운 사업의 기회가 도래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고객 가치를 창조하는 전략은 이런 사회학적인 변화를 어떤 나비효과를 불러 일으킬지 자유롭게 연상하고 연결시키면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일을 해야하는데 단순히 어떤 이슈를 '반응'하는 수준에서 일을 그칠 수는 없습니다.
최근 기획이 서비스 기획이나 빅데이터 분석 등으로 가는 것은 이런 기획의 특성과 닿아 있습니다. 외부의 기회, 즉 고객의 변화를 누구보다 먼저 아는 조직이 기존 기업에서도 IT부서와 함께 회사 내부의 시스템을 구축하는 역할을 주로 했다면, 아예 아이템 자체가 IT 기반에서 풀어내는 채널에 있다면 기존의 복잡한 밸류체인이 간소화되고 서비스를 즉각 기획하는 서비스/상품 MD의 역할을 자연스레 맡게 되는 것이죠. 빅데이터도 고객의 니즈를 찾는 방법의 선상에서 닿아 있구요. 그래서 영업기획이든 전략기획이든 최근 통계 프로그램을 배우는 기획자가 많이 늘고 있습니다.
기획이 유의해야 할 사항이라면 '목적'과 '도구'를 혼동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조직이 초조할 수록 도구를 목적과 같이 다루어서 본질을 잃고 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항상 지금 회사에서 이슈가 되고 추진에 대해 최고 수준의 조직에서 요구해도 이것이 실무에 적용되는 방법과 측정 KPI가 목적을 향해 있는지 계속 살펴봐야 합니다. 도구를 하는 척, 많이 하고 있는 척하는 정치인들을 피해 기획자는 본질적인 고객 니즈라는 목적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여러 KPI가 이야기되는 상황에서도 근원적으로 나머지 KPI에 영향을 주는 것은 무엇인지 찾아 회사 내의 어젠다 수립에서 도구를 목적화 하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이것은 최근 '화두 경영'이 많은 국내 기업에서는 꽤 중요한 내용입니다.
기획의 효과는 직접 알기 어려울 때가 많지만 장기적으로 전체 판을 바꾸는 '사자'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기획은 누구보다 먼저 고민하고 멀리 내다보는 '사자놀음'입니다. 그만큼 책임감 있게 많이 보고 느끼고 정리하고 나누어야 합니다.
작가의 다른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