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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기 May 31. 2016

여덟 번째 편지

불안감과 서사적인 욕망에 관하여

폭염주의보가 발령되었던 며칠이 지나고는 약을 올리듯 선선한 날씨가 계속되었습니다. 계절이 시작될 때 드린 편지가 마지막이었는데, 계절이 끝날 때쯤에서야 새 편지를 적는 것을 용서하세요. 잘 지내고 계시지요? 편지가 뜸했던 데엔 그만한 이유가 있었는데, 사실 지금도 형께 드릴 말씀을 떠올리고 그것을 적어내려가는 마음이 편치가 않습니다. 생각해 보면 형께 편지를 적을 때는 언제나 제 삶이 순조로울 때였던 것 같아요. 순조롭다는 게 꼭 기쁜 일이 생겼다거나 어떤 깨달음을 얻어 그것을 형과 나누고 싶을 때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에요. 아픔이나 외로움마저도 계획 속에 있던 것이라면 저는 순조롭다고 느낍니다. 그러니까, 제 삶이 어떤 방향으로든 ‘나아가고만’ 있다면, 그 과정에서 암초를 만나든 거센 바람을 만나든 저는 안정감을 느꼈고 그 안정적인 고통을 글로 풀고 싶다는 욕망을 품었지요.

그런데 요즘은 줄곧 불안감을 안고 살았습니다. 어디로든 나아가지 못하고 멈춰있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저는 이런 상태가 불안해요. 지금껏 제가 살아 온 방식이 그랬습니다. 공적이든 사적이든 스스로에게 과제를 부여해 그것을 성취하는 데서 자존감을 키웠어요. 그런데 제게 어떤 과제를 부여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됐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 자신이 불쾌해졌어요. 어디까지나 제가 삶에 대한 긍정 위에서 글을 써왔다는 것을 이번에 알았어요. 어쩐지 글을 쓰는 일이 지금의 제가 누려선 안되는 ‘사치’로 느껴지더란 말씀입니다. 언젠가 형께 글이 어떤 고통도 구원해 주지 못한다는 무용론을 고백한 적이 있지요. 지금은 되려 저의 고통에 문장으로 남길 만한 가치가 없다 느낀다는 이유로 글을 쓰지 못하겠다 말씀드리는 중입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자신에 대해 글을 쓴다면 그 글은 결국 자기 위로가 될 것인데, 저는 이 정체감이 위로받을 만한 것이라 느껴지지 않아요. 정확히 말하면 수식할 만한 가치가 없다 느끼는 것이고 제 고통에 대한 ‘수사’가 사치로 느껴지는 것입니다.

형, 제 몸은 아름답지 않습니다. 그리고 아름답지 못한 몸에 난 상처가 아름다울 리 없습니다. 그런 제 몸이 아름다운 것을 가질 수 있다면 그것은 흉터라 믿습니다. 상처가 쓰라려 자꾸만 만지다 덧나게 된 흉터가 아니라, 관심을 기울여 그것의 종류를 이해하고 치료해 주변의 살결과 흡사한 결을 갖게 된 흉터. 저는 그런 흉터를 동경했고 그런 흉터가 갖고 싶었습니다. 그런 흉터를 갖기 위해선 상처를 무턱대고 만지려 하지말고 먼저 들여다 봐야 하겠지요. 상처를 건드리기만 하는 글이 있는가 하면 거리를 두어 그것을 이해하려는 글이 있습니다. 그런데 자꾸만 상처를 만지려는 글이 나올 것 같아 저를 두고 쓰는 일이 부끄러웠습니다.

형, 저는 언제나 이해하고 싶었어요. “상식적이지 않다면 자세히 보아야 한다.”라는 문장을 남몰래 간직하고 “내막”이란 단어에 흥분하던 저였지요. 제가 궁금했던 것은 언제나 눈이 볼 수 없는, 보이는 것 너머에서 들려오는 사연이었습니다. 보이는 것이 난해할 수록 그랬습니다. 이 서사적인 욕망이 저를 추동해 이름모를 곳에 다다르게 했을 때, 틀린 길이라 해도 짜릿했습니다. 그곳에 닿기까지 언어의 땅을 더듬는 감각이 사랑스러웠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그 내막을 품은 이에게 ‘누군가 알아준다는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제가 그 느낌을 받고 싶었던 딱 그만큼 주고 싶었지요. 그런 저에게 상처를 덧나게 하는 글은 절망이고 치욕인지라 그 동안 제 글을 쓰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이 글이 통증에 겨워하는 고백이 아니라는 안심을 시켜드리고 싶어요 형. 시간의 힘을 믿는다는 말은 결국 자기 자신의 생명력을 믿는다는 말과 같습니다. 죽지 않은 이상은 죽을 것 같은 고통도 곧 아물 운명이라는 것을 믿어요. 저의 생명이 하는 일이지요. 그러니 죽지 않은 이상 전 살 것이고, 사는 이상 전 글을 쓸 겁니다. 어떻게 모든 상처 앞에 이성적일 수 있겠어요. 덧나지 않은 흉터보다 덧난 흉터가 더 많을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니 이 편지는 저의 정리된 근황인 한편 앞으로의 다짐이라 생각해 주세요. 그래도 다음엔 보다 더 건강한 문장으로 형께 인사드리고 싶네요. 답장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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