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혼을 염두에 두다 보니 자연스럽게 고독사를 생각하곤 한다. 비혼을 결심한다 해서 주변에 아무도 없는 삶까지 결심한 것은 아니지만 공간을 공유하는 반려인이 없다면, 죽음과 직면한 위태로운 순간 나를 삶으로 끌어당겨줄 존재가 없다면 불시에 고독사하기 딱 좋겠지. 고독사를 내가 감당할 운명으로 생각했다. 다만 지금 당장의 일은 아닐 것이라 노후를 대비해야 한다는 정도의 먼 리스크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랬는데 『고독사 워크숍』이 말한다. 고독사에 대비해야 하는 것은 ‘고독사에 대한 불안을 안은 채 구체적인 대안도 없이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긍정 혹은 자기 부정의 상태에 있는 30~40대 남녀들’이라고.
저마다가 품고 있는 고독을 서로에게 드러내어 개인의 고독사 연대기(年代記)를 공동체의 고독사 연대기(連帶記 )로 만들 수 있다는 상상력이 반가웠다. 나도 일찍이 고독을 맞대어 쉬이 미끄러지지 않을 마찰력을 갖고 싶었으니까. 나의 고독으로 우리의 연대를 이룬다는 설정이 반가웠다. 고독의 마찰력을 상상하던 때는 글이 쓰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을 때였다. 그리고 2025년 올해의 가능한 불가능으로 글쓰기를 선택했다. 첫번째 불가능의 소재로 이 책을 읽을 수 있었던 건 사적인서점 정지혜 대표님이 선물해 주신 행운일 수 있겠다.
여러 명의 등장인물이 자신만의 서사로 워크숍에 참여해야 하는 이유를 밝히지만 그들을 전지적 시점에서 관찰하는 독자는 그들의 고독이 이미 자신도 모르게 타인의 고독과 공명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소비를 넘어 공유 행위로 경제가 창출되는 시대, 인물들은 고독 플랫폼의 초대 QR을 공유하며 고독의 크리에이터이자 컨슈머가 된다. 타인의 부고에 댓글을 다는 활동으로 포인트를 얻고 그것으로 타인이 올린 고독사 유품을 구매할 수 있다는 설정은 나의 고독이 타인의 고독에 참여하는 화폐로 기능할 수 있다는 희망을 암시한다. 그런 세계에서 나의 고독은 나를 좀먹는 부채가 아니라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재산이 될 것이다.
“하지만 오멜라스 사람들의 눈물, 분노, 자비를 베풀려는 시도 그리고 자신들의 무력함을 인정하는 태도야말로 오멜라스 사람들이 풍요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진정한 근원이리라.” 340쪽
모든 등장인물들은 크게 두 인물의 고독에 공명한다. 도정우와 조문남. 도정우는 심야코인세탁소가 생기기 전 타인의 고독과 공명하려 한 인물이다. 소년시절부터 라이프가드 역할을 한 도정우는 성인이 되어서도 골목을 감시하는 자경단이 되거나 우는 판다가 되어 타인의 생명을 지키려 했다. 그리고 이 소설에 나오는 등장인물 중 절반은 그런 도정우의 죽음에 지분을 나눠 가진 인물들이다. 은영은 우는 판다의 존재를 제일 먼저 트위터에 올려 세상에 알린 인물이고, 오대리와 서PD(서이경)는 SNS 상에서 유명해진 우는 판다를 취재하여 지상파의 영역으로 끌어 올린 인물이었다. 조부장(정우성)은 도정우가 우는 판다가 되는 계기를 제공한 인물이었다. 도영우는 둘째이자 셋째 동생으로서 도정우로 하여금 뺄셈의 삶을 끊임없이 떠올리게 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그들은 형이자 동생이자 제자이자 피사체였던 도정우의 죽음을 계기로 심야코인세탁소의 운영자, 참여자가 되었다.
도정우의 죽음(과거)이 세계관에서 인물들이 고독을 나누는 계기가 되었다면 조문남의 삶은 그들이 형성한 고독사 경제를 크게 활성화시키는 계기를 제공한다. 자신의 실수로 사랑하는 손녀를 죽게 하고(했다고 생각하고) 손녀 대신 손녀의 은유로서 묘비에 잠든 옛 아이스크림을 부활시켜 달라는 청원을 쉬지않고 아이스크림 제조사에 보내는 인물. 문남의 사연을 접한 워크숍 참여자들은 자신의 고독이 구원 받길 바라는 열망의 은유인 듯 문남의 고독이 구원받기를 열망하고 친애의 형태로 이를 전달한다.
저는 제가 고독하게 살다 고독하게 죽을 것을 압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독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더 귀 기울일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평생에 걸쳐 오래오래 쓸 것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립니다. 당신이 어디선가 부활 버튼을 누르면 제게 그랬듯 그 에너지가 고독한 누군가의 등을 떠밀어 줄 것을 저는 압니다. 309쪽
심야코인세탁소에 업로드하는 부고는 배설이 아니다. 그들이 사연과 부고를 올리는 곳은 해우소가 아닌 세탁소. 워크숍은 끝이 날 것이고 자신의 고독이 타인의 고독과 공명할 수 있음을 체험한 참여자들은 세탁된 자신의 고독을 다시 주섬주섬 챙겨 삶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떠난 고독만큼 새로운 고독이 플랫폼에 입장할 것이다. 플랫폼에 어딘가가 비워지면 다른 어딘가가 채워지며, 피리처럼 항상 새로운 음률이 연주될 것이다.
피리를 손에 쥐고 어떤 구멍은 손가락으로 막고 어떤 구멍은 열어 주면서 세게, 너무 세지 않게 피리를 불 거였다. 어떤 구멍은 막고 어떤 구멍은 열어 주는 것으로 다른 소리가 난다니. 심지어 아름다운 화음이! 347쪽
그리하여 이 12주간의 기묘한 워크숍이 끊이지 않기를 바란다. 은밀히 전해지되 분명히 이어지기를. 11번째 워크숍의 다음 이야기가 48번째 워크숍인 것 처럼.